역사와 관련한 글을 쓸 때, 사실인지 꼭 확인하세요

김희태 2021. 1. 5.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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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과 경주 능지탑지(경상북도 기념물 제34호)를 방문했던 적이 있었다.

능지탑(陵只塔)은 문무왕의 화장터로 추정되는데, 특히 능지탑지에 새겨진 십이지신상이 주요 관심사였다.

그런데 실상을 알고 보니 문무왕릉비의 상단은 빨랫돌로 쓴 적이 없었다.

이에 해당 언론에서도 이를 정정하는 기사를 올렸지만, 그런데도 정정 기사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고, 지금도 많은 이들이 '문무왕릉비=빨랫돌'로 인식하고 있고, 잘못된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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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매체나 유튜브 등 정보의 홍수 시대, 팩트체크 반드시 필요

[김희태 기자]

지인과 경주 능지탑지(경상북도 기념물 제34호)를 방문했던 적이 있었다. 능지탑(陵只塔)은 문무왕의 화장터로 추정되는데, 특히 능지탑지에 새겨진 십이지신상이 주요 관심사였다.

그런데 능지탑지의 십이지신상을 보면 쥐(子)가 새겨진 부분이 다른 십이지신상의 형태와 서로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 그때 동행했던 지인으로부터 능지탑지 십이지신상 중 쥐상이 황복사지에서 옮겨온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 경주 능지탑지 경주 능지탑지, 문무왕의 화장터로 추정되는 곳으로, 능지탑의 둘레에 십이지신상이 새겨진 탱석이 있다.
ⓒ 김희태
  
▲ 경주 능지탑지 십이지신상 쥐(子) 능지탑지의 십이지신상 중 쥐(子)
ⓒ 김희태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게 알고 있었고, 쥐상의 크기와 복식 역시 유사하기에 나 역시 이제까지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 반전은 황복사지의 지표조사를 통해 이미 황복사지에 쥐상이 있는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반면 이 쥐상을 인(寅)상으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실제 황복사지에서 출토된 십이지신상 중 인상은 없기에 이 경우 황복사지에서 옮겨 왔다는 설명이 틀린 것은 아니게 된다. 어느 것이 맞는지는 명확하게 말할 수 없지만, 분명한 건 두 견해 중 하나는 잘못된 해석인 것이다.
 
▲ 연천 유촌리 태실 연천 유촌리 태실, 태실비의 명문을 통해 화억옹주가 아닌 영조와 영빈 이씨 소생의 4왕녀 태실로 확인되었다.
ⓒ 김희태
 
이런 사례는 또 있다.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 유촌리 산127번지에는 연천 유촌리 태실이 있다. 그간 연천 유촌리 태실은 영조의 장녀인 화억옹주의 태실로 알려졌다. 그런데 화억옹주는 1717년(숙종 43)에 출생했기에 태실비에 기록된 옹정 6년(1728년, 영조 4)와는 맞지 않다.
실제 <승정원일기>를 보면 영조는 효장세자의 누나인 1녀에 대해 화억옹주로 추증할 것을 명한 기록이 있다(승정원일기, 영조 49년 10월 7일, 備忘記, 贈封肅愼, 昨祝知焉, 一翁主卽孝章兄妹, 贈和憶翁主官敎書入). 따라서 연천 유촌리 태실의 태주는 화억옹주가 될 수 없고, <태봉등록>과 <선원계보도> 등을 통해 영조와 영빈 이씨 소생인 제4왕녀의 태실인 것을 알 수 있다.
 
▲ 문무왕릉비 상단 지난 2009년 발견된 문무왕릉비의 상단
ⓒ 김희태
한편 지난 2009년 문무왕릉비의 상단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당시 뉴스 기사의 내용 중 문무왕릉비를 빨랫돌로 썼다는 것이 내용이 인상적이었는데, 이 기사를 접한 뒤 나 역시도 은연중에 빨랫돌로 썼다는 것과 가스 검침원에 의해 발견된 이야기가 뇌리에 깊게 남았었다. 이를 기사로 쓰기도 했다. 

[관련기사 : 행방이 묘연했던 문무왕릉비의 발견 이후]

그런데 실상을 알고 보니 문무왕릉비의 상단은 빨랫돌로 쓴 적이 없었다. 즉 없는 사실이 기사로 잘못 알려진 것이다. 이에 해당 언론에서도 이를 정정하는 기사를 올렸지만, 그런데도 정정 기사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고, 지금도 많은 이들이 '문무왕릉비=빨랫돌'로 인식하고 있고, 잘못된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나 역시 뒤늦게 이를 알고 기사를 수정해야 했다.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말이 있다. 세 사람이면 없던 호랑이도 만든다는 말로, 잘못 알려진 사실이 확대 재생산되며 없던 사실이 진실처럼 포장되기도 한다. 앞에서 언급한 사례처럼 한번 잘못 알려진 이야기는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바로 잡기 쉽지 않게 된다. 따라서 글을 쓰는 데 있어 신중히 처리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글을 쓰는 나 역시 여기에서 자유롭지 않다. 부끄러운 일이다. 그렇기에 내가 잘못 알고 있었고, 잘못 전한 사실들을 바로잡는 것 역시 중요한 것이다. 지금도 역사와 관련한 수많은 내용이 전통적인 언론매체는 물론 유튜브 등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정보의 홍수라는 말이 실감 난다.

이러한 시대에 글을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비록 당연하게 생각했던 내용이라 할지라도, 글이나 영상을 가공하기 전 반드시 사실관계를 확인해야 한다. 관련 사실이 한번 잘못 알려지면 다시 바로잡기가 쉽지 않기에 반드시 팩트체크가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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