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한국형 좀비 아이디어는 지겹다

2021. 1. 5.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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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은 '좀비 아이디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좀비 아이디어가 살아남는 건 사람들에게 이것을 열심히 전파하면서 이득을 얻는 집단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딱히 생산적이라는 근거도 없는데 명분이 그럴듯해서 끈질기게 살아남는 한국형 좀비 아이디어가 제법 있다.

'내로남불'은 도덕적 정당성이 있는 주장이지만 그 실제를 보면 대표적 한국형 좀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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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민 (한양대 교수·경영학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은 ‘좀비 아이디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이미 틀렸다고 검증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살아남아 사람들의 생각을 잠식하는 것이다. 좀비 아이디어가 살아남는 건 사람들에게 이것을 열심히 전파하면서 이득을 얻는 집단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전문가라 불리는 데 창피한 것도 없다. 정치인들은 지지율에라도 민감한데 말이다. 미국의 대표적 좀비가 성장의 마법이라 불리는 부자 감세다. 이득을 얻는 집단은 월가 금융자본이다. 한국은? 딱히 생산적이라는 근거도 없는데 명분이 그럴듯해서 끈질기게 살아남는 한국형 좀비 아이디어가 제법 있다. 세 가지만 짚자.

우선 ‘국민화합’이다. 최근 여당 대표의 사면론이 등장했다. 정치공학은 필자의 영역이 아니기에 불만이지만 말을 접는다. 다만, 화합이란 명분으로 필요한 정책을 덮지 말자. 정권 말기로 오면 그만 싸우라는 황희 정승이 많아진다. 선의로 해석하면 갈등의 중재다. 기성세대는 돌아갈 수 없는 고도성장기의 향수에 젖어 있고, 젊은 세대는 자산가격 급등과 계층 고착화에 좌절해 있다. 그러나 결국 황희 정승은 양립 불가능한 말잔치를 벌인다. 화합 같은, 누구에게나 듣기 좋은 말은 실체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런 두리뭉실함에서 생산적인 정책이 나올 순 없다. 국민화합 외치는 보수정당의 서울시장 잠재 후보들 말을 봐라. ‘월급 모아 집 사는 서울’ ‘서민에게 세금폭탄’ 등 가관이다. 그리고 잘 생각해보자. 지난 30년 동안 반복된 이 수사가 한국 사회의 통합에 무슨 기여를 했나? 차라리 정치 양극화, 강성 팬덤정치에 대한 해법을 내라.

‘내로남불’은 도덕적 정당성이 있는 주장이지만 그 실제를 보면 대표적 한국형 좀비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역사가 증명한다. 어느 정권에서도 이걸 극복하기 위해 제대로 된 논의가 진행된 적은 없다. 상대방을 베어내기 위한 칼로 쓰다가 그 칼에 자기가 베인다. 결정적 순간에는 죄 없는 자 돌을 던지라며 입에 재갈을 물리는 비장의 무기일 뿐이다. 이걸 ‘저생산 균형’이라고 부른다. 더 나은 미래는 있지만 내가 먼저 나설 이유가 없어 현재의 상태에 머무는 것이다. 바른말 하고 욕먹고 싶은 사람은 없다. 자, 민주당 586의 독선에 대한 비판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게 개혁을 중단해야 할 이유는 아니다.

마지막은 ‘한국형 시장주의’다. 이건 각자 자기 이익을 추구하고 정부는 찌그러져 있으면 사회가 효율적으로 돌아간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항상 따라붙는 게 나라 걱정, 재벌 걱정, 부자 걱정이다. 그래서 한국형이다. 원론적 논쟁은 접자. 필자가 진짜 이상하게 생각하는 건 왜 한국에 시장주의자가 이렇게 많으며, 왜 그렇게 확신에 차 있는가이다. 우리는 관치경제였다. 지금도 공공부문 비중이 선진국 어디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거다. 한 번도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뭘 근거로 그렇게 자신 있게 주장하는지 모르겠다. 시장질서가 잘 잡혀 있다는 미국 전문가들도 이리 자신감이 넘치지는 않을 거다.

이 시장좀비는 적어도 올해는 막아야 한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20세기 초 스페인독감과 유사한 사망자를 낼 거라 예상된 코로나19는 사망자 수는 훨씬 적었지만 경제 타격은 오히려 예상보다 컸다. 지금 세계 경제는 불확실성에 둘러싸여 쓰러지지는 않았지만 비틀거리면서 걷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계, 기업 등의 태도는 관망이다. 누구도 먼저 나서서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 결국 이런 것이 모이면 거시적으로 경제 회복은 더뎌지고, 성장 능력은 떨어진다. 욕을 먹더라도 정부가 앞장서서 투자도 하고, 취약계층도 적극 보듬어야 한다. 경제팀은 쫄지 말아야 한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경영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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