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구 칼럼] 전직 대통령 사면의 정치

2021. 1. 5.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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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대표의 사면론은 두 전 대통령 용서란 문제뿐 아니라
국정운영 방향과도 관련돼

97년 DJ "반성하지 않는다고 똑같이 대응할 수 없다"면서
전두환·노태우 사면 지지해

사면은 대통령의 헌법상 특권
정치 상황과 국가 미래 등을 총체적으로 보고 판단할 사안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신년 인터뷰에서 제기했던 이명박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 사면 문제가 봉합되는 모양새다. 논란이 뜨거웠던 데 비하면 이틀 만에 회군하는 모양새가 싱겁게 느껴진다. 이 대표가 이슈의 폭발성을 몰랐을 리 만무하고, 특유의 신중한 태도에 비춰볼 때도 신속히 논란을 정리하는 모습은 낯설다.

하지만 이 대표는 민주당 최고위 간담회를 마친 후에도 “반목과 대결의 진영 정치를 뛰어넘어 국민 통합을 이루는 정치로 발전해가야 한다고 믿는다는 충정에서 말씀을 드린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는 14일 예정된 박 전 대통령의 재상고심 판결을 기다려보겠다며 여지를 남기기도 했다. 두 전직 대통령 사면 문제는 질풍 같은 논란 한 번으로 정리될 정도로 간단한 사안은 아니다. 야권에서 계속 제기하고 있고 특히 차기 대선을 앞두고 언제든 첨예한 논쟁거리가 될 수 있는 사안이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 문제는 1997년 15대 대선을 앞두고도 정치권의 핫이슈였다. 당시 여당이던 신한국당에서는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대법원 판결이 내려지기도 전에 사면론이 제기됐다. 그해 4월 17일 대법원이 두 사람에 대해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17년 형을 확정한 뒤에는 대선전과 맞물리며 본격적으로 논란이 벌어졌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이회창 여당 후보의 사면론 제기에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며 거부했지만 주요 대권 후보들이 앞다퉈 사면을 공약으로 내세우자 입장을 선회했다. 군사정권의 최대 정치적 피해자였던 김대중 당시 야당 후보도 “동서화합의 길이 열리도록 하겠다”며 전향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김 후보는 “그들이 잘못을 반성하지 않는다고 우리도 똑같이 대응할 수는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해 10월 김 후보 대신 국회 연설에 나섰던 새정치국민회의 박정수 부총재는 전제조건을 달지 않은 사면을 촉구했다. 김 후보가 당선된 나흘 뒤인 12월 22일 국무회의에서 특별사면이 의결됐다. 김 당선인의 의견을 김영삼 대통령이 수용하는 형식이었다.

당시와 현재의 정치 상황은 같지 않다. 전직 대통령들이 지은 죄의 성격이 다르고 국민의 법 감정이나 정치의식도 당시와 판이하다. 전 전 대통령을 당시 사면했지만 5·18을 부인하는 행위가 계속되고 있어 사면에 부정적 여론도 적지 않다.

그러나 특별사면이 대통령에게 부여된 정치적 특권이라는 메커니즘에는 큰 변화가 없다. 정치적 반대자를 포용함으로써 국민 화합을 도모하고 통합 정치의 길을 여는 것이다. 법 앞의 평등이란 가치와 충돌하고 행형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지만 대통령이 국정 전반을 보고 국가이익을 고려해 종합적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허용한 헌법상 제도라는 점은 그대로다.

사면을 결정할 때 국민 정서를 감안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현재 민주당 내부의 강경 여론처럼 당사자들의 사과와 반성을 전제조건으로 다는 것은 사면을 하지 말자는 것과 같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사과가 사면의 충분조건은 아니듯 두 전직 대통령의 직접 사과가 사면을 위한 필요조건인 것도 아니다. 전제를 달면 달수록 대통령의 특별사면권을 제한하는 격이 된다.

다소 성급해 보이는 사면론을 이 대표가 제기한 데는 자신의 당내 입지에 대한 고려도 있었겠지만 4월 재보궐 지방선거와 내년 대선을 앞두고 당을 이끌어야 하는 고민이 묻어난다. 그저 두 전직 대통령을 용서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윤석열 검찰총장 사태나 21대 국회 첫해를 지나며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을 지속해도 좋은지 등에 대한 정치적 고심이 드러난다. 고령의 두 전직 대통령을 언제까지 수감 상태로 둘 것인지, 혹여 행형의 정의를 고수하다 더 큰 정치적 부담을 지게 될 수 있다는 등등의 현실적 판단도 했을 것이다. 이런 고민은 문재인 대통령도 함께하고 있을 공산이 크다.

사면 문제는 결국 문 대통령이 결단할 문제다. 여당 내부엔 강경한 목소리가 높을 수밖에 없지만 정치 상황을 냉정히 보고 자신의 책임 아래 판단할 사안이다. 상황이 무르익지 않았다고 본다면 일축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장 4월 재보선 결과에 따라서는 이 문제가 주요 현안으로 다시 부상할 수도 있다.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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