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존재 태아.. 강한 자들 이해관계에 희생돼선 안돼

2021. 1. 5.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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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아는 사람 낙태는 살인이다 <17>
김지연 한국가족보건협회 대표(왼쪽)가 2019년 12월 경북 포항 여성소망센터에서 고은애 상담팀장에게 태아살리기 캠페인 성금을 전달하고 있다.


낙태죄와 살인죄는 형법상 생명보호의 양대 축이다. 헌법재판소는 부녀의 자기낙태죄(형법 제269조 제1항)와 업무상동의낙태죄(형법 제270조 제1항)의 행위 주체 중 ‘의사’인 경우에 한해 해당 규정이 과잉금지원칙 등의 사유로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지난해 말까지 이 규정을 개정하지 않으면 그 효력이 상실된다며 일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자연법적으로 각 사람이 누리는 인간의 존엄성은 각자에게 고유한 절대성을 갖기 때문에 상호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존엄성의 실존적인 토대가 되는 각 사람의 생명도 상호 비교형량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갓난아이의 생명과 청장년의 생명의 가치 경중을 가릴 수 없는 것처럼 건강한 사람의 생명과 노약자의 생명이나 사기(死期)에 임박한 사람의 생명 사이의 가치 경중도 가릴 수 없다.

극단적인 예로, 태아의 생명과 산모의 생명도 가치적 경중으로 차별할 수는 없다. 꺼져가는 등불 같은 암 말기 환자의 생명과 기관차처럼 활력 넘치는 청년의 생명을 저울질해 어느 생명의 가치가 더 우월하다고 판단할 수 없다. 만약 생명의 경중을 판단한다면 헌법을 비롯한 모든 법질서는 이미 정당한 법질서이기를 포기한 불법질서에 불과할 뿐이다.

형법의 모든 법익 중 최상위의 법익, 즉 법익 중의 법익이 인간의 생명이다. 인간의 생명이 전제되지 않은 신체의 완전성, 각종 자유, 명예, 사생활의 평온, 재산 등은 공허할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 생명은 법익 피라미드의 정점에 놓여있다. 인간 생명의 기원과 그 신비에 관한 설명은 단순히 생물학적·의학적 차원에만 머물지 않는다. 형이상학과 신학 및 모든 고등종교의 영역에까지 이른다.

그것은 또한 선과 가치의 경중을 가리는 최종적인 준거점이 되기도 한다. 인간의 생명은 유일성과 신성성을 지니는 것으로서 절대적 평등성, 불가교량성, 불가처분성 등의 특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생명은 최대한 보호돼야 한다. ‘의심스러울 때는 생명에 유리하게’라는 원칙은 모든 정당한 법 윤리의 출발점이다. 그러므로 법의 숭고성은 한 사람의 생명을 다른 사람의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삼지 않고, 목적 그 자체로서 존중하는 데 있다. 인간의 생명은 창조주로부터 부여받은 바, 각 사람에게 고유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살려둘 가치가 없는 생명’이니 ‘보호할 가치가 없는 생명’이라는 말이 어떤 경우에도 천박한 포퓰리즘적 사회정책이나 야만적인 이데올로기의 빌미가 되게 해서는 안 된다. 생명의 박탈은 오직 정당 방위나 방어 전쟁과 같은 정당화 사정이 있을 때만 극히 예외적으로 인정된다.

이러한 인간 생명을 직접적인 최상위의 보호법익으로 삼는 죄형법규로서 형법은 ‘살인의 죄’(형법 제24장)와 ‘낙태의 죄’(형법 제27장)를 두 주축으로 삼고 있다.

인간의 생명은 수정된 순간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형법상 낙태의 죄의 객체인 태아는 수정 후 13일이 경과할 즈음 수정란이 자궁에 착상한 때부터 시작해서 태아 배출을 위한 진통이 개시된 때까지로 본다.

낙태죄의 주된 보호법익은 임부의 자궁에 있는 태아의 ‘생성 중에 있는 생명’이다. 살인은 분만개시(진통 시)에서 시작해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인간생명을 보호법익으로 삼는다. 낙태죄와 살인죄가 형법상 생명보호의 양축이다.

낙태죄 규정이 결국 헌법재판소가 정한 시한 내에 개정되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6개의 법안이 제출돼 있음에도 국회가 이 논의를 회피하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일부 의원은 앞장서서 낙태죄가 폐지됐음을 선언하고 있다. 몹시 마음이 아픈 상황이다.

거듭 말하지만, 인간 존재 중 가장 약한 존재자는 태아다. 낙태는 강한 자들이 자기 이해관계에 얽혀 가장 약한 자의 무고한 생명 싹을 싹둑 잘라내는 잔인한 살해행위다.

강한 자들이 자기결정권과 같은 그럴듯한 논증 도구를 내세워 태아를 살해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 소리 없는 영혼의 아우성은 낙태 가담자들 마음에 씻기 어려운 악독으로 남아 그들의 정신마저도 황폐함 속으로 몰아넣을 것이다.

우리는 기독교의 정통 생명윤리관에 기초해 인간의 생명은 수정 시부터 신성하다는 가치관에 확고히 서 있다. 이것이 헌법적 가치관과도 일치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 방어할 힘이 없는 이 가장 연약한 인간 생명을 위한 사회운동과 이를 위태롭게 하는 법의 비판 운동에 나서고 있다. 국가의 어떤 기관도 이 고귀한 생명을 마치 처분할 수 있는 물건이나 대상처럼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우리는 ‘프로 초이스(pro-choice)’ 이데올로기에 치우쳐 낙태 자유화의 길로 치닫는 헌재의 기울어진 시각에 동의하기 어렵다. 우리들의 작은 목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태아의 생명을 목적 그 자체로 존대하는 낙태 관련법 개정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김일수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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