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천 마스크 만들어 썼다"..이렇게 살아난 광주교도소
지자체·보건소 초기부터 적극 나서
음성환자 옮기고 플라스틱벽 설치
의사는 염습..간호사는 용변 수발
당국 대처따라 교정시설 운명 갈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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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확산 막은 병원과 교도소 비결
지난 1일 오전 11시 50분쯤 충북 제천 명지병원 32병동 앞에 김용호 원장과 강기혁·방창윤 부원장을 비롯한 간부들이 모였다. 동일집단(코호트) 격리 해제를 기다리기 위해서다. 낮 12시가 되자 병동 문이 열리며 의료진과 환자들이 2주간의 격리에서 풀려났다. 환자 최모(70·여)씨가 천천히 걸어 나오며 “목욕탕에 가야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한 간호사가 “대중탕엔 가시면 안 돼요”라고 웃으며 주의를 준다. 뒤이어 병실을 나선 화교 근택서(61)씨는 “집에 가서 된장찌개를 먹고 싶다”고 말했다.
반복된 검사와 소독으로 안전이 확보된 격리 해제 병동에 들어가 봤다. 병실에 들어서니 침실 사이를 비닐 커튼으로 차단한 모습이 눈에 띈다. 비말을 막기 위해 천 커튼을 비닐로 바꿨다.
400명 넘는 직원과 환자가 생활하던 이 병원에서 확진자가 나오며 코호트 격리에 들어간 상황은 참변을 당한 요양병원들과 흡사하다. 그러나 이곳은 코호트 격리 이후 안정을 되찾았다. 요양병원들과 무엇이 달랐을까.
신속한 환자 분산 vs 무대책 방치
이 병원의 연쇄감염은 간병인에서 시작했다. 그의 도움을 받던 환자 세 명이 양성 판정을 받았다. 간호사도 전염됐다. 보건 당국이 코호트 격리를 결정했다. 여기까진 요양병원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코호트 격리 이후가 확 달랐다. 제천시와 보건소가 발 벗고 환자 분산에 나섰다. 확진 환자 일부를 다른 병원으로 옮기고, 음성 밀접접촉자를 빼냈다. 치료가 필요한 환자 27명은 당국이 마련해둔 생활치료센터로 옮겼다. 강기혁 부원장은 “환자의 밀집도를 빨리 낮추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초기에 분산을 못하면 재앙을 피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대조적으로 서울 구로구 미소들요양병원과 경기도 부천 효플러스요양병원은 환자 보낼 곳을 배정받지 못해 확진자와 비확진자가 상당 기간 공존했다. 감염이 급격히 는 건 예정된 수순이었다. 한 보건 당국 전문가는 “코호트 격리를 하면서 환자를 안 빼주면 안에 있는 사람들을 차근차근 확진시키라는 얘기”라고 꼬집었다.
방역당국·지자체 지휘 vs 병원 자구책 의존
위기를 넘긴 병원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보건소와 시청이 아니었으면 심각해졌을 것”이라고 말한다. 격리 초기부터 보건소와 제천시가 계속 병원과 소통했다. 의료기관을 수소문해 환자를 분산시켰다. 시에서 예산을 들여 국민건강보험공단 인재개발원에 57명 수용 공간을 마련한 선제조치가 주효했다. 윤용권 제천시보건소장은 “박달재휴양림을 생활치료센터로 써왔는데 팬데믹에 대비해 시에 추가 시설 마련을 제안했고, 시장이 호응해 인재개발원을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미소들요양병원의 경우 참다못한 의료진이 청와대에 ‘일본 유람선처럼 모두 죽어가고 있다’는 글을 올린 직후에야 상황이 급변했다. 병원 관계자는 “보도가 나가고 나니 갑자기 관련 당국에서 연락이 오고, 환자 이송과 인력지원이 빨라졌다”고 했다. 그는 “만약 초기에 당국이 이랬으면 20여명 확진으로 끝났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요양병원 확진자는 지금 200명을 넘어섰다.
감염병 전문가 지원 vs 병원 인력 자체 해결
이 병원은 같은 재단의 명지병원 본원이 코로나19 거점병원이라는 사실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메르스 등 대응 경험이 풍부한 이왕준 이사장이 격리 첫날 병원에 달려왔다. 보건소와 충청북도 역학조사관도 적극 개입했다. 다인실에 플라스틱 격벽과 비닐 커튼 설치 등을 도왔다. 이들은 사실상 ‘긴급대응팀’으로 움직였다. 격리 병실에 갇힐 의료진의 피로도를 고려해 근무 방식을 조정했다.
코호트 격리가 시작되면 간호사는 간병사가 하던 환자 대소변 수발까지 맡는다. 한 간호사는 “체중이 5㎏ 빠졌다”고 말했다. 의사가 장의사 일을 하는 경우도 생긴다. 격리 병동에서 근무한 천승환 응급의학과장은 난생처음 염습을 했다. 그는 “음성인 환자가 사망해도 사후 검사에서 양성이 나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외부 장례지도사에게 맡길 수 없었다”며 “관련 지침을 읽고 인터넷도 찾아보면서 고인의 시신을 소독액으로 닦고, 분비물로 인한 주변 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귀·코·입·항문을 솜으로 막은 뒤 몸을 감싸는 과정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과 맞닥뜨리는 상황에서 인력 지원 없이는 전투를 지속하기 어렵다.
그러나 요양병원들은 탈진상태가 돼서도 한동안 도움을 받지 못했다. 효플러스요양병원 김모 원장은 “초기에 병상 배정만 잘 됐어도 사망자 27명 중 80%는 살렸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교도소 차단 협력 vs 수용자도 직원도 막막
1000명 넘는 확진자를 쏟아낸 서울동부구치소처럼 직원·수용자가 양성 판정을 받으며 코로나19 확산 위기를 맞았던 광주교도소는 보건소와 지자체가 지혜를 모아 참변을 막았다. 확진자가 나온 직후 바로 전수조사를 실시했다. 교도소 관계자는 “확진에 당황했지만 북구 보건소와 시청에서 CCTV를 분석하고 지속적으로 조언해 안정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향 광주시 보건건강국장은 “교도소 측과 시, 구청, 보건소, 질병관리청 대응센터가 공동 대응에 나서 교도소 도면을 펴놓고 확진자 분리 방안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교도소 내부 환경은 낯설었다고 한다. CCTV에 안 잡히는 작업장이 있고 남녀 수용자를 나눠야 한다. 확진 수용자를 외부 시설로 이송하려 할 땐 중범죄자 문제가 불거졌다. 병실에 잠금장치를 설치해야 한다는 검찰 의견이 당황스러웠다는 것이다. 돌발 상황에 관련자들이 힘들어할 때마다 “수용자도 일반 시민과 똑같은 사람이다. 감염을 막아야 한다”고 얘기했다고 한다.
마스크 착용 등에서도 차이가 컸다. 서울동부구치소는 수용자들에게 마스크를 주지 않아 문제를 키웠다. 동부구치소 접견 경험이 많은 한 변호사는 “변호인 접견을 가면 수용자가 마스크를 쓰고 나왔다”며 “접견 도중 마스크를 내리면 교도관이 즉시 시정을 요구했고, 접견 후 복귀할 땐 마스크를 버리고 들어가길래 안에서도 철저한 줄 알았다”고 말했다. 그는 “수용자들이 내부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번에야 알았다”고 했다.
광주교도소 수용자는 일찌감치 마스크를 착용했다. 예산이 부족한 건 마찬가지였지만 교도소 측이 천을 구해 봉제공장에서 수용자들이 직접 만들게 했다. 한 사람당 두 장의 천마스크를 교대로 빨아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교도소 관계자는 “대비 과정에서 북구 보건소의 도움이 컸다”며 “보건 당국에서 수시로 전화하고 방문해 세밀한 부분까지 알려준 덕분”이라고 말했다.
“화 자초한 당국, 근본 대책 내놔야”
전문가들은 안이한 당국의 대처가 요양병원과 구치소의 화를 키웠다고 말한다. 뒤늦게 요양병원에 긴급대응팀을 보내고 확진자와 비확진자를 분리하는 방침도 발표했다. 감염병 전문가들이 계속 주문해온 내용들이다.
명지병원 이왕준 이사장은 "우리는 메르스 사태를 겪어 초반에 다른 나라보다 훨씬 앞선 상태에서 출발한 셈”이라며 "하지만 이후에 여러 조언에도 불구하고 겨울철 팬데믹에 필요한 대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이런 사태가 빚어졌다”고 말한다. 그는 "메르스 때도 이미 가동했던 신속대응팀을 요양병원 사태가 악화가 된 뒤에야 꾸린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교정시설의 경우 수용인원을 포함한 장기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박향 광주시 국장은 “광주교도소 대처 경험에 비춰보면 전국의 교정시설 전체를 놓고 종합적으로 분석해 수용자 분류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병찬 파트너스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구치소 과밀수용을 초래한 것이 문제의 본질인만큼 불구속재판 원칙 등 억제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주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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