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세상 읽기] '퀸스 갬빗'의 교훈
영화·게임 등의 미디어 산업에서는 오래도록 여성 주인공 만들기를 꺼려왔다. 여성 관객들은 남자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데 익숙하지만, 남성 관객들은 여자 주인공을 자신과 동일시하지 않고, 그래서 흥행에 방해가 된다는 주장이다. 그 결과 영화 속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주인공들은 대부분 남성이 되었고, 그런 콘텐츠를 접하고 자라나는 아이들은 잘못된 성 역할을 배우고, 세상의 주인공은 남성이라는 왜곡된 인식을 하게 된다. 미디어가 묘사하는 허구가 현실 세상의 차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지난해 말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퀸스 갬빗’은 넷플릭스 자체 제작 시리즈 중에서 최단기 최다 시청 기록을 갈아치웠을 만큼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첫 한 달 동안 무려 6200만 가구에서 이 시리즈를 시청했다. 여성 체스 선수의 이야기를 다룬 이 드라마의 인기는 체스에 대한 관심으로도 이어져서 온라인 체스 사이트인 Chess.com에는 신규 가입자가 폭증했다고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과거에는 이 사이트 회원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22%였지만 ‘퀸스 갬빗’ 이후 가입한 사람 중 여성 비율은 27%라는 것이다. 물론 5%는 큰 숫자는 아니지만 한 편의 드라마가 이뤄낸 결과로는 결코 작지 않다.
‘퀸스 갬빗’을 본 시청자들은 이 드라마가 페미니즘 영화라고 인식하지 않는다. 이 드라마 속 여성은 그저 남성과 똑같은 자리에서 재능을 발휘하는 주인공일 뿐이다. 하지만 “똑똑한 여성은 매력적이지 않다”는 할리우드의 보수적이고 그릇된 시각이 이 드라마에는 없다. 미디어 업계는 이런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박상현 (사)코드 미디어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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