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업하는 구멍가게, 중고마켓 어플에 소개했다 생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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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작년 일이 되어 버린 이야기다.
대형 프렌차이즈 마트들에 치이는 구멍가게의 갑갑한 현실을 탓하면서도, 정작 그 부조리한 시스템의 일부가 되었던 나 자신을 돌이켜보니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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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수 기자]
벌써 작년 일이 되어 버린 이야기다.
평소 알고 지내는 1분 거리 구멍가게가 문을 닫는다고 했다. 진열대에 잔뜩 쌓여 있는 물건들을 보며 앉아 있는 주인 아주머니의 표정을 보니 좀 어두워 보였다. 매대 곳곳에 세일문구가 적힌 골판지 팻말들이 멀뚱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간판 내리는 날짜를 12월 말로 잡으셨다는데 과연 저것들이 원만하게 팔릴 수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한 가지 고백을 하자면 사실 이 슈퍼는 그저 나에게, 부재중 온 택배를 맡기기 좋은 곳일 뿐이었다. 부탁만 하기 뭐해서 가끔 쓰레기 봉투같은 생필품이 급하면, 이 곳을 찾아가 단골손님인 척 생색을 내는 게 전부였다.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고 이 슈퍼 앞을 지날 때면 종종, 배가 불룩해진 장바구니를 들킬까 봐 소심하게 발걸음을 재촉하곤 했다.
대형 프렌차이즈 마트들에 치이는 구멍가게의 갑갑한 현실을 탓하면서도, 정작 그 부조리한 시스템의 일부가 되었던 나 자신을 돌이켜보니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은혜도 갚을 겸 수를 하나 짰다.
평소 자주 이용하는 중고마켓 어플에 가게 약도랑 점포정리 사연을 올렸다. 그런데 막상 쓰고 보니 그냥 허접한 광고 같았다. 개인간 물건을 주고받는 곳인데 뜬금없는 내 홍보글이 과연 읽힐까 싶었다.
며칠이 지나 성탄절 휴일에 방바닥을 긁고 있다가 목이 칼칼해서 캔맥주와 안주 쪼가리 한 봉지를 사러 그 슈퍼에 갔다. 가게 진열대는 이전보다 제법 많이 비어 있었다. 계산을 하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게 정리는 잘 되어 가시냐고 물었다.
주인 아주머니가 갑자기 환한 표정을 지으시며 큰소리를 내셨다. 어떤 사람이 인터넷에 가게 홍보글을 올려줘서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다는 것이다. 아주머니는 스마트폰 하고는 거리가 먼 분이신데 어떻게 아셨는지 궁금증이 생겼다.
그래서 그 홍보글을 올린 '어떤 사람'이 바로 '나'라고 밝히고, 어떻게 그 일을 알게 되셨는지 물었다. 아주머니는 중고마켓 어플에서 가게 홍보 글을 발견한 아들이 전화로 알려주었다고 했다.
▲ '성탄절 선물' |
ⓒ 김진수 |
집으로 돌아와 아이스크림 한 입을 들이키며, 중고마켓 어플에 올린 글을 다시 확인해 봤다. 몇 백명의 조회수가 찍혀 있었다.
5년간 이 동네에 지내면서 숨어 있는 맛집이나 산책 장소 등 주요 포인트들을 모두 섭렵해서 더 이상 탐구할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뜻밖의 훈훈한 인심들을 발견하니 다시금 이 동네가 새로워 보였다.
코로나19로 최고로 썰렁한 성탄절을 보내는가 싶었는데, 의외의 선물을 받아서 최고로 뜻 깊은 성탄절이 된 것 같다. 때때로 이런 소소한 반전이 인생의 묘미이자 행복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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