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의 정치 읽기] 진영 갈등 사라진 대한민국을 희망한다

2021. 1. 4.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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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에는 진영 논리가 사라지고, 사회와 관련된 모든 단
“윤석열 검찰총장을 탄핵하지 않으면 제도 개혁에 탄력이 붙기 힘들다.”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말이다.

이에 대해 적지 않은 수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결국 당 지도부는 탄핵 요구를 현시점에서는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이유가 뭘까? 크게 세 가지다.

무엇보다 탄핵을 추진했다 일만 더 크게 벌이고 다시 한 번 밀리는 모습을 보여줄 가능성이 있다. 검찰총장을 탄핵하기 위해서는 국회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 발의가 있어야 하고, 재적의원 과반 이상 찬성으로 탄핵 소추안이 의결돼야 한다. 이후 헌법재판소 심판을 받는다. 그런데 법무부 감찰위원회가 이미 윤 총장에 대한 감찰, 징계 절차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고 법원이 직무 정지를 정지하라는 가처분과 징계 집행 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때문에 헌법재판소도 탄핵을 결정하기는 힘들 것이라 추론할 수 있다. 당연히 여권도 탄핵 추진에 상당한 부담을 가질 테다.

두 번째, 민주당은 과거 故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추진이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에 엄청난 역풍을 가져왔다는 사실을 잘 기억한다. 정권에 대항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비정치인 공무원에 대한 탄핵을 추진했다 똑같이 상당한 역풍을 맞을 수 있다. 더구나 지금은 정권 말기고 지지율은 하락세다. 이런 역풍에 대한 두려움이 더욱 클 수 있다.

셋째 현재 윤석열 대 여권 전체 대립 구도가 새해 4월까지 이어지면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여권이 불리해질 가능성이 있다. 이런 적나라한 대립 구도가 보궐선거까지 이어지면 중도층 지지를 얻기 힘들어진다. 따라서 어느 정도 선에서 ‘윤석열 문제’는 일단 매듭짓는 것이 좋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윤 총장 징계 효력 정지 판결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크리스마스인 2020년 12월 25일 “결과적으로 국민들께 불편과 혼란을 초래한 것에 대해, 인사권자로서 사과 말씀을 드린다. 법원 결정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대국민 사과를 한 것이다. 이번 대통령 사과는 그 내용이 어찌 됐건 자신들 정치 행위에 대해서 사과한, 보기 드문 경우다. 문재인 정권의 사과는 과거에는 이전 보수 정권의 행위에 대한 것이 주를 이뤘다.

이와 관련 흥미로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대통령이 분명 “법원 결정을 존중한다”고 했건만 여당 일부 인사는 사법부를 원색적으로 비난한다. 대통령 언급에 반하는 행위다. 이런 식의 정치적 주장은 법과 제도의 안정성을 현격히 해친다. 또한 대통령제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근간 중 하나인 삼권분립을 해칠 수 있다. 입법부 구성원이 대통령 결정 사안에 대한 법원 판결에 시비를 거는 듯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자. 여권 한쪽에서는 대통령이 재가한 윤 총장 징계를 사법부가 효력 정지한 것을 두고, 사법부의 과잉 지배, 삼권분립 위반이라는 논지를 편다. 이는 입법부나 사법부 혹은 다른 독립 기관이 대통령이 결정한 사안에 대해 건드리면 안 된다는 식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대통령이 무오류의 존재가 아닌 상황에서 권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제 아래서는 다른 권력이 대통령의 정치적 행위를 견제하게끔 여러 장치를 둔다. 그런데 이런 식의 주장에 따르면 견제를 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둘째, 사법부가 대통령 재가 사안 효력을 정지시킨 것이 법에 의거한 행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가다. 삼권분립 위반이라든지 사법의 과잉 지배라 주장하는 것은, 사법부 행위가 법에 근거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이번 판결의 근거가 되는 법률에 문제가 있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 이런 주장에 기반해서는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를 찾기 힘들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식의 주장이 ‘내 편’에 관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집중적으로 제기된다는 점이다. 법적으로 ‘내 편’ 관련 사안에 대해 불리한 판결이 내려지면 ‘개혁 저항 세력의 조직적 반발’이라고 주장하며 개혁을 주장한다. 개혁이라는 단어가 불리함을 덮는 마법의 용어가 된 것 같다.

종합해보면, 지금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갈등은 ‘이념 갈등’이 아니라 ‘네 편 내 편’의 ‘진영 갈등’에 불과하다. 지금 나타나는 갈등이 이념 갈등의 한 형태라면 최소한 법안이나 정책을 갖고 싸워야 한다. 그런데 지금 갈등은 ‘불법적이라고 충분히 의심할 만한 사안’에 대한 판결을 두고 사법부를 공격하는 형태다.

이념 갈등이 아닌 진영 갈등일 경우 이는 치유하기 매우 힘든 사회적 문제로 변화한다. 이념 갈등은 이성적 차원의 갈등이라 어느 정도 봉합이 가능하다. 그러나 진영 갈등은 감성적 요소가 많아 봉합이 매우 어렵다. 더욱 문제는 특정 진영을 지지하는 이들이 특정 진영 혹은 특정 정치인 지지가 곧 특정 이념에 대한 지지라고 착각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보자. 코로나19 백신 문제는 이념적 사안이 아니다. 국민의 생존권과 관련된 사안이다. 그런데도 백신 문제에 대한 인식이 ‘진영’에 따라 다르다. 현 정권을 지지하는 측에서는 백신 문제에 침묵하거나 정부 쪽 말을 신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백신이 없어 불안해하면 가짜뉴스를 믿는 사람이거나 야당의 정치 공세에 호응하는 존재로 몰아붙인다.

문제는 정부 주장을 무조건 믿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데 있다. 2020년 12월 27일 청와대 노영민 비서실장은 “2021년 2월 의료진과 고령자를 대상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 백신 접종이 시작될 것이다. 세계 각국은 새해 2분기에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접종을 시작할 예정이고 우리도 비슷한 시기에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접종을 시작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이 신뢰를 얻으려면 언제, 어느 정도 양의 백신이 도입되니 국민의 몇 퍼센트가 순차적으로 백신을 맞을 수 있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말해줬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언급은 없이 외국에 비해 백신 접종이 늦지 않을 것이라고 ‘추상적’으로 얘기하면 무조건 믿기 쉽지 않다. 더구나 대다수 국민은 미국과 영국 그리고 유럽연합 국가는 물론이고 멕시코 등지에서도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됐다는 뉴스를 거의 매일 접하는 상황이다. 당연히 더욱 한국의 백신 접종이 늦지 않았다는 정부 언급을 믿지 않을 수밖에 없다.

2021년이다. 새해에는 희망을 말한다. 코로나19 때문에, 그리고 천정부지로 오른 부동산 때문에, 또 악화 일로에 있는 경제 때문에, 그리고 ‘개혁’이라는 이름의 당위성이 진영 논리에 의해 다르게 해석되는 혼란스러운 상황 때문에 대부분 국민들은 암울할지 모른다. 그래도 우리는 희망을 말해야 한다. 새해에는 진영 논리가 사라지고, 사회와 관련된 모든 단어가 본래 가치를 회복하기를 바란다. 통합까지는 아니지만, 사회적 균열 구조가 조금이라도 봉합되는 해가 되기를 바란다. 법치와 상식 그리고 민주주의가 한껏 꽃피기를 바란다. ‘국민’이라는 단어가, 대한민국에 사는 모든 이를 의미하는 단어로 본래적 가치를 회복하기를 희망한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91호 (2021.01.06~2021.01.1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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