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임 당하지 않고,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정예솔 2021. 1. 3.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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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다큐멘터리 영화 <어른이 되면>

[정예솔 기자]

 
 <어른이 되면> 스틸 컷
ⓒ 시네마달
 
"만약 누군가 열세 살의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면 나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너는 이제 가족들과 떨어져서 외딴 산꼭대기의 건물에서 지금까지 한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과 평생을 살아야 해. 그게 네 가족들의 생각이고 너에게 거절할 권리는 없어. 이게 다 네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이야."

발달장애가 있는 장혜정씨는 열 세살이 되던 해 장애인 수용시설로 보내졌다. 그리고 18년의 삶을 시설에서 보냈다. 2017년 6월, 언니 장혜영 감독은 발달장애가 있는 동생을 시설에서 데리고 나와 둘만의 일상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은 어린 시절부터 살았던 시설에서 나온 동생과 함께 사는 한 언니의 적응 과정을 기록했다.

감독은 일상의 이야기로 한국사회 속 발달장애인의 삶을 조명한다. 그는 유튜브, 다큐멘터리, 단행본 등 형식과 매체에 상관없이 장애인의 삶에 대해 다뤘다. 작년엔 21대 국회에 입성해 그의 '1호 법안' <장애인활동 지원에 관련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장애인활동지원법)>을 통과시켰다. 그렇다. 정의당 장혜영 국회의원이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이다. 

장혜영 의원이 '생각많은 둘째언니'로 유튜브에서 활동했던 때를 기억한다. 나 또한 '생강마늘(구독자를 부르는 별명)' 중에 한 명이었다. 둘째언니를 실제로 본 건 2018년 2월 종로 대한극장에서 열린 <어른이 되면>의 시사회였다. <어른이 되면>은 '텀블벅'이라는 소셜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제작비를 마련했고, 영화가 완성되자 후원자들을 첫 상영회에 초대했다.

너와 내가 발명한 시간들
 
 장혜정, 장혜영 자매가 함께 웃고 있다.
ⓒ 시네마달
 
어린 시절,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면 혜영은 언제나 혜정과 함께였다. 혜영은 다른 사람이 알아채지 못하는 동생의 작은 웅얼거림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혜정이 시설로 간 후, 자매의 관계는 많이 달라졌다. 혜영은 '혜정의 언니'가 아닌 '장혜영'으로 살고자 했다. 대학생 때는 일본 교환학생을 다녀온 뒤, 자신의 또 다른 길이 있음을 직감하고 세상을 떠돌기로 마음먹었다.

혜영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명문대 타이틀을 내던지고 2년 간 자유를 누리던 그였다. 하지만 늘 마음 속에 '언젠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는 시설에서 일상적인 인권침해가 일어나고 있음을 알게 된 후 동생과 함께 살기로 결심했다.

영화는 두 자매가 공존하면서 발생하는 시간들의 조우를 다룬다. 친구들의 말처럼 '안정적 삶'에 대한 기대가 없는 언니와 인생의 절반 이상을 시설에서 보낸 동생이 다시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터를 꾸리는 건 큰 도전이었다. 장혜영 감독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사한 집에서 처음 자고 일어났는데, 막막하더라고요. 아침밥 먼저 해야 하나, 아니면 씻는 것부터 해야 하나. 우리는 그런 일상생활을 하나하나 '발명'해 나가야 했죠"라고 말했다.

탈시설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혜영은 자신이 몰랐던 혜정의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덜컥 겁이 났다. 적절하게 개입해야 할 순간을 매번 판단해야 했다. 혜정이 '노들 야학'에 처음 문을 두드리던 날은 더욱 힘들었다. 집회와 시상식 자리에서 노래만 나오면 신나게 춤을 추던 혜정이 아프리카 댄스 수업엔 집중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윤정민 촬영감독은 혜정의 새로운 모습을 봤다고 전했다. 혜정이 '춤을 추는 것은 좋지만 이 노래는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고.

자매에겐 순탄치 않은 삶만 있는건 아니었다. 두 자매는 따로 또 같이 시간을 나누며 '자립'이라는 일기장을 발견하고 매일의 기록을 써내렸다. 혼자 있을 수 없던 혜정은 혜영 없이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친구이자 음악 선생님인 인서에게 틈틈히 노래를 배워 소중한 사람들 앞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 [어른이 되면] M/V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 시네마달

활동보조인 심사를 받기 위해 기관에 갔던 날, 혜영은 이날의 심사가 모든 것을 결정할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심사자는 "혼자 전기 밥솥으로 밥 할 수 있냐?", "혼자 라면 끓여먹을 수 있냐?" 등의 질문으로 혜정의 자립성을 판단했다.

결과적으로 혜정이 얻은 활동보조시간은 월 94시간. 하루에 세 시간 만이 허락됐다. 그러나 바로 활동보조인을 구하지 못했다. 딱 두 명의 보조인이 관심을 보이고 면접을 봤지만 나중에 두 사람 모두 거절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24시간에서 평균적인 수면시간 8시간을 제외한 16시간. 이 시간 안에 보호자가 장애인의 모든 책임을 담당하면서 개인의 삶을 살 수 있을까? 하루 세 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마저 보조해줄 사람이 없다면 보호자는 자신의 삶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편의를 위해 장애인을 시설에 보낸다고 말한다. 장혜영 감독의 부모도 혜정이 장애인 수용시설에서 더 보호 받을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그러나 그 곳은 혜정에게 스스로 살아갈 힘을 빼앗았다. 혜정이 무언가 하고 싶다고 말할 때마다 시설은  "어른이 되면 할 수 있고 지금은 할 수 없다"고 답하기만 했다.

시설에서 발생했던 수차례의 인권 침해 사건이 내부고발로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나 사회의 '어른'이자 비장애인인 시민들은 크게 동하지 않았다. 장애인을 '배려'해야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장애인의 삶에 대해 관심없는 이중적인 마음이 드러났던 때였다. 

장혜영 의원의 1호 법안으로 장애인이 무사히 노인이 될 수 있는 길은 조금 열렸다. 기존에 중증장애인들은 만 65세가 넘으면 제도상 '노인'으로 분류돼 시간이 대폭 줄어든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았다. 하지만 이번 법안으로 활동지원서비스의 연령제한조항이 삭제돼 만 65세 이상 장애인도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됐다. 
 


또 다른 혜정이 시설에서 나왔을 땐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죽임 당하지 않고 죽이지도 않고서, 굶어죽지도 굶기지도 않으며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노래를 함께 연주하고 불러줄 '어른'의 어깨가 더 필요하다. 상냥함을 잃는 것이 두려운 장혜영 의원 같은 어른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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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해당기사는 'Sol의 쏠쏠한 블로그(https://blog.naver.com/yesol1994)'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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