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하는 날, 남편을 잃은 여성.. 그에게 찾아온 끔찍한 존재
'안방극장'에선 처음 또는 다시 볼 만한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세월의 흔적이 묻은 작품부터 아직 국내에 정식으로 소개되지 않은 작품까지 다양하게 다루려고 합니다. <편집자말>
[이학후 기자]
▲ 영화 <바바둑> 포스터 |
ⓒ 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주) |
어느 날 사무엘은 아멜리아에게 아빠의 책장에서 발견한 동화책 '바바둑'을 읽어달라고 조른다. 그런데 동화책을 읽은 다음부터 이야기 속에 존재하던 악령 '바바둑'이 현실 속에 나타나 두 사람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영화 <바바둑>은 호주 출신의 제니퍼 켄트 감독이 2014년 연출한 작품이다. 최근 그녀가 연출한 <나이팅게일>(2018)이 극장가에 개봉하여 여성 복수 영화로 관심을 모은 바 있다. 하지만, 숱한 영화제 수상에 빛나는 <바바둑>은 안타깝게도 국내에선 영화제로만 상영한 후 극장 개봉 없이 판권 시장으로 직행했다.
▲ 영화 <바바둑>의 한 장면 |
ⓒ 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주) |
아멜리아는 동화책 '바바둑'을 접한 다음부터 현실에서 검은 코트와 모자를 쓴 긴 손톱의 남자 '바바둑'을 만나며 심리적 붕괴를 일으킨다. 영화는 '바바둑'이 초자연적 현상의 산물인지, 아니면 아멜리아의 내면이 만든 허구인지를 모호하게 다룬다. 관객은 계속 추측할 수밖에 없다.
<바바둑>은 <반항>(1965), <악마의 씨>(1968), <샤이닝>(1980), <테이크 쉘터>(2011)를 연상케 하는 심리 화법을 활용하여 정신과 망상, 현실과 꿈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동시에 해석의 방향에 따라 모든 것이 들어맞게끔 구성한 영리함도 갖추었다. <폴터가이스트>(1982), <부기맨>(2005)과 같은 장르의 관습도 완전히 벗어난다.
<바바둑>의 집은 극의 대부분을 보여주는 무대이자 아멜리아의 심리 상태를 형상한 모습이다. 텅 빈 집은 남편을 잃은 상실감을 반영한다. 화면은 회색톤에 가깝고 인물과 그들을 둘러싼 색은 극도로 제한적이다. 집 주변의 앙상한 나무들은 인물에 공허함과 고독감을 더한다.
▲ 영화 <바바둑>의 한 장면 |
ⓒ 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주) |
<바바둑>의 핵심은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이중적인 시선이다. 아멜리아에게 아들 사무엘은 기다렸던 생명의 탄생이나 남편의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리고 너무 사랑하나 육아의 고통은 적지 않기에 벗어나고 싶은 족쇄처럼 느껴질 적도 있다. '바바둑'은 그런 복잡한 감정 상태가 부른 악령, 슬픔과 우울증이 만든 괴물인 셈이다.
"어머니는 무조건 아들을 사랑해야 할까?"란 질문으로 본다면 <바바둑>은 <케빈에 대하여>(2012)의 공포 스릴러 버전처럼 보인다. 어머니가 자식에게 갖는 사랑과 미움이란 양가적 감정은 고스란히 아멜리아에게 스며들어 있다.
아멜리아가 남편의 죽음이란 트라우마를 딛고 일어서는 모습에 주목한다면 여성 영화를 대표하는 <피아노>(1993)의 다른 판본으로 볼 수도 있다. <피아노>에서 여성을 억누르던 상징이 '피아노'였다면 <바바둑>은 바로 존재 '바바둑'이기 때문이다.
2010년대 호러 장르에서 새로운 형태의 공포를 보여주며 주목을 받았던 <팔로우>(2015), <더 위치>(2015), <유전>(2018). 그 옆에 <바바둑>은 당연히 놓여야 한다. 제47회 시체스 영화제 오피션 판타스틱-스페셜 배심원상, 여우주연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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