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역사의 그늘에서 애잔함을 느끼다
[백창훈 기자]
내 고향은 부산이다. 어릴 적에는 '제2의 수도'라는 수식어가 이 도시에 썩 자부심을 느끼게 했다.
어디서든 값싸게 먹을 수 있는 활어회부터 화려한 조명을 하늘에 수놓은 광안대교, 지금도 근현대사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남포동까지. 이 모든 것들은 청소년기 나에게 애향심을 새겨 주었다. 하지만 성인이 된 현재의 나는 자부심과 애향심을 넘어 부산이라는 도시가 애잔하다.
대학생이 되고 진로를 고민한 끝에 신문기자가 되고 싶었다. 꿈을 위해서는 식견을 넓힐 필요가 있었다. '백문불여일견'이라는 생각에 한동안 무작정 부산을 돌아다녔다. 그러면서 한 가지 느낀 점이 있는데, 부산에는 '일제의 흔적'이 꽤 많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강서구 대저1동 일대에 남아 있는 '적산가옥'을 꼽을 수 있다. 적산가옥은 일제강점기 때 한반도에 살던 일본인의 주택을 말한다. 우리나라가 광복을 맞은 뒤 일본인은 그 집을 버리고 도망갔고, 한국 정부는 이를 거둬들여 우리 국민에게 매각했다. 대저 지역에는 당시 집을 매입한 이들의 자손들이 아직 그곳을 보존하며 살고 있었다. 이곳 일대를 지난해 11월 말에서 12월 초까지 찾아가 봤다.
▲ 옆에서 본 적산가옥. 외벽 중간중간에 페인트가 벗겨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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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관이 알록달록하다. 이름을 부르면 창문 틈새로 누가 나올것만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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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저1동에 도착해 가장 먼저 눈에 띈 적산가옥은 '대저중앙로 319번길'에 위치한 집이었다. 알록달록한 외관이 이목을 끌었다. 주택 소유주의 양해를 얻은 뒤 가옥의 마당으로 들어섰다.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보였던 건 돌담으로 만들어진 지하실이었다. 철문은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는지 군데군데 녹이 슬어 있었다. 지하실 안쪽은 텅 비어 있었기에 스산함이 느껴졌다. 나중에 안 사실로, 이곳은 과거에 과일 '배'를 저장하는 창고였다고 한다. 창고의 탄생 배경은 이랬다.
1900년대 초 당시 대저동 일대는 과수 농사하기 적절한 기후 덕에 배가 유명했다. 동시에 이 시기 일제는 조선의 토지 약탈을 위해 '동양척식주식회사(동척)'를 막 세운 터였다. 일제는 이 동척을 통해 빼앗은 조선의 땅을 자국 농민에게 싼값에 불하했다. 한반도 이민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기 위해서였다.
▲ 대저로 22번가길 75-9에 위치한 적산가옥의 옆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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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찾아간 적산가옥은 '대저로 22번가길 75-9'에 위치했다. 이 가옥은 3대가 잇달아 거주하고 있는 집이었다. 하지만 그에 걸맞지 않게 관리를 잘한 듯 외관이 깔끔했다. 일제식 목조 건물에 군데군데 현대 양식도 엿보였다. 셔터 소리가 집 안까지 들렸는지 주인분께서 밖으로 나오셨다. 자신의 이름을 문영화라고 소개했다. 그리고는 적산가옥 특징도 함께 설명해 주셨다.
"일본식 가옥 주위에는 기필코 소나무와 대나무가 있습니다. 적산가옥이 맞는지 아닌지 헷갈린다면 이 점을 참고하세요."
▲ 아래에서 위로 내다본 대저중앙로394번가길 146에 위치한 적산가옥을 모습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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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옥은 2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롭게 서 있었지만, 굳이 실내가 보고 싶어 삐걱삐걱 대는 계단을 밟고 2층에 올랐다. 사진 찍는 모습이 신기했는지 지나가는 동네 어르신이 말씀하셨다.
"뭐하러 찍어. 좀 있으면 철거될 건물을. 이거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어."
이 말을 듣고 사흘 뒤 다시 와보니 실제로 건물은 철거되고 없었다. 아쉬웠다. 식민지였던 부끄러운 흔적을 없애는 것보다 잘 보존해 후세에게 이 치욕스러운 과거를 깨닫게 해주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부산시 홍보 슬로건은 '피란수도 부산'인데, 잠시나마 수도였던 50년대의 영광만 기록하자는 뜻이었을까. 대저동 적산가옥이 하나씩 철거됨에 따라 부산의 근대사도 하나씩 지워지는 것 같아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이번에는 골목을 나와 큰길가로 걸었다. 멀리서 보기에도 이국적인 생김새의 새파란 지붕이 한눈에 들어왔다. 우리나라 기와지붕과는 확연히 달랐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 적산가옥이었다.
▲ ‘강서구 1309번길 17’에 위치한 적산가옥의 마당에 들어섰다. 일본식 목조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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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찾아간 적산가옥은 부산시 근대조형물로 지정된 '공항로1347번길 36'에 위치한 주택이다. 지금까지 봤던 적산가옥 간의 거리는 비교적 가까웠지만, 이번 가옥은 홀로 떨어져 있어 찾기가 여간 쉽지 않았다.
▲ 공항로1347번길 36 적산가옥의 정면 모습이다. 출입문의 오른쪽 상단 끝에 근대조형물로 지정됐다는 푯말이 걸려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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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식당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지금까지 본 적산가옥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다. 본채 1곳과 별채 2곳이 있었는데, 곳곳에 일본식 목조 건물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었다.
대저동 일대 외에도 부산에는 '일제의 흔적'이 많다. 가수 아이유의 노래 '밤편지' 뮤직비디오 촬영지는 부산 동구 초량에 있는 적산가옥이다. 정치권에서 이슈인 부산 '가덕도신공항'의 그 가덕도도 일제강점기 때는 일본군의 포진지였다. 부산은 일제의 한반도 수탈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내 고향에 애잔함을 느끼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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