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교감 속 작품? 반전 노린 3위 이낙연의 '사면' 승부수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 건의” 뜻을 1일 언론 인터뷰에서 밝히면서 정국을 흔들었다. 평소 신중한 성격의 이 대표가 대통령 고유 권한인 사면 문제를 먼저 꺼낸 걸 두고 “사면에 대한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을 줄이고, 한 편으론 대선 후보 지지율 3위로 주저앉은 자신을 위한 반전 계기를 만들려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날 민주당은 급작스러운 사면 주장에 크게 술렁이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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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위 추락한 李의 승부수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중앙일보에 “변하겠다는 메시지다. 올해부턴 대표가 좀 더 명확하게 자기 모습을 가져갈 것”이라면서 “통합이 원래 이낙연의 본모습이다. 국가를 위한 길이라면 이제 좌고우면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취임 후 줄곧 ‘문파(文派)’로 불리는 강성 지지층에 휩쓸렸다는 비판을 받아온 이 대표가 슬슬 제 목소리를 내는 신호라는 의미다. 이날 나온 각종 신년 여론조사에서 이 대표는 이재명·윤석열에 밀려 대선 주자 지지도 3위에 머물렀다.
하지만 순전히 이 대표 혼자의 뜻으로는 믿기 어렵다는 주장이 여권에서도 나온다. 문 대통령과 이 대표 사이에 “임기 마지막 해 화두를 국민 통합으로 가자”는 의기투합이 이뤄졌고, 4·7 보궐선거 등을 앞두고 모종의 큰 그림에 의해 이번 발언이 기획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 대표는 지난달 12일과 26일 두 차례 문 대통령과 독대했다.
특히 이 대표가 당내 의견을 듣는 과정에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을 지낸 윤영찬 의원이 참여했다는 말도 나왔다. 다만 윤 의원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나는 조언하지 않았다. 대표가 여러 의견을 교환하면서 생각한 게 아닌가 싶다”라고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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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 내 사면’ 총대 멨나
이와 관련, 이 대표가 임기 마지막 해를 맞는 대통령에게 두 전직 대통령 구속이라는 정치적 부담을 털 길을 열어주기 위해 총대를 멨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친문으로 분류되는 초선 의원도 “이제 시간이 별로 없다. 아무래도 대통령이 고민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이 대표가 이슈를 던진 게 아니겠냐”고 말했다.
당직을 맡은 또 다른 의원은 “이 대표는 원체 신중한 성격인 데다 대통령의 영역에 명확히 선을 긋는 사람이라 혼자 독단적으로 대통령 권한인 사면 이야기를 하진 않았을 것”이라며 “어쨌든 임기 내 풀어야 하는 문제인데 이 대표가 지지층 반발을 각오하고 결단한 것 같다”고 추론했다.
하지만 당내엔 부정적 여론도 들끓고 있다. 김종민 최고위원은 통화에서 “사면 결정에는 국민의 수용이 반드시 따라야 한다. 대통령의 사면권은 국민에게 위임받은 권한”이라면서 “여야가 진지하게 국정농단까지 이르게 된 정치 상황을 고민하고, 극복과 개선 방안부터 모색한 뒤에야 사면 논의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상호 의원은 페이스북에 “두 사람의 분명한 반성도 사과도 아직 없다. 박근혜의 경우 사법적 심판도 끝나지 않았다”며 “반대의 뜻”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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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반발 가시화
이 대표가 사면 명분으로 신년사에 언급한 “사회갈등 완화, 국민 통합”을 내세운 걸 두고도 비판이 분출하고 있다. 한 친문 재선 의원은 “통합이란 게 단순히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을 사면한다고 될 일은 아니다”라며 “국민적 논의도 안 거치고 당대표가 대통령을 압박하는 건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상의가 전혀 없었다”(초선 최고위원), “순전히 본인의 결단이다”(전략통 의원), “갑자기 사면이라니 놀랐다”(수도권 재선) 등 어쨌든 당내 반발이 확산하는 양상이다. 민주당 권리당원 게시판은 “대통령 도전할 생각이 없어졌나 보다”, “사퇴하라”, “왜 촛불민심 뒤통수를 치나”는 등의 비난 글로 도배됐다.
이 대표 사면 건의가 해피엔딩으로 끝날지는 문 대통령의 수용 여부에 달려있다. 문 대통령이 받아들일 경우엔 ‘통합’ 이미지를 앞세운 차기 유력 대선후보로서 확실한 힘이 실리겠지만, 만약 흐지부지되거나 청와대 반대로 좌초된다면 이 대표에겐 돌이킬 수 없는 오점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이 대표는 1일 신년인사회 모두발언에서도 김대중(외환위기)·노무현(안보 위기)·문재인(코로나19) 등 전·현직 대통령 3인의 위기 극복을 거론하며 “우리는 전진과 통합을 동시에 이루어야 한다”고 통합을 강조했다. 주변에선 “이 대표는 이미 윤석열 탄핵론을 배제하면서 친문세력들의 문자 폭탄에 시달렸다. 그 와중에 사면 문제를 꺼내면 무슨 반응이 올 거라는 건 삼척동자도 알 수 있었다”(친문 초선)는 말이 나왔다. 이 대표가 쏟아질 비난을 알고도 승부수를 던졌다는 의미다.
심새롬·김효성·송승환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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