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황인범이 꿈꾸는 '강아지와 어린이가 행복한 2021년'

김정용 기자 2021. 1. 1.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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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때로 세상은 불공평하다. 황인범은 통화하기로 약속한 시간에 "잠시만요, 배달 앱으로 주문만 하고요"라고 말하고 잠시 후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러시아에서 귀국한 뒤 자가격리 중인 그는 가족과도 완전히 분리돼 혼자 생활하고 있다. 황인범은 누구보다 방역수칙을 잘 지키고, 코로나19 관련 기사를 챙겨본다. 인터뷰 말미에 개인적인 새해 소망을 물었을 때 "백신이 얼른 들어왔으면"이라고 말할 정도다. 그럼에도 황인범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심지어 집도, 해외 거처도 아닌 호텔에서.


황인범은 생각하길 즐기는 편이다. 그의 생각이 늘 옳은 건 아니지만, 자신이 부딪치는 수많은 일에 대해 늘 고민하고 의미를 찾는다. 어떤 질문을 받든 고민을 거친 대답을 즉시 뱉을 수 있다. 그래서 황인범과의 인터뷰는 다소 두서없더라도 순서 편집 없이 그대로 전하기로 했다. 대화는 2020년 12월 31일 진행됐다.

Q 근황은?
A 격리 중이다. 방금 우동 주문했다. 대전 집에 혼자 있고, 나를 위해 부모님과 형이 모두 따로 떨어져 있다. 다만 강아지가 나랑 둘이 지내는데 얘는 산책이 필요하다. 그래서 강아지 산책 준비를 다 마치고 현관에 데려다준 뒤 방에 들어가면, 형 또는 엄마가 데리고 나간다. 사실 이 정도로는 강아지에게 부족한 산책 양이다. (황인범의 개 쿠버는 인터뷰 도중 옆에서 짖으며 에너지를 분출하려 했다.)


Q 반려견 쿠버도 꽤 유명한데
A 벌써 3개국을 여행했다. 첫 강아지다. 어렸을 때부터 개 키우고 싶었는데 부모님이 털 때문에 안 된다고 하셨다. 밴쿠버에서 형과 둘이 지내게 되면서 몰래 저질러 버렸다. 그러고 나서는, 다른 집처럼 됐다. 정작 데려오니까 부모님이 더 예뻐한다. 특히 아빠는 먹을 걸 너무 많이 주려고 한다. 내가 쿠버와 닮았다고? 쿠버가 훨씬 인물이 좋지. 얘가 한 미모 하는데. 캐나다는 개 천국이라 집 앞에 나가면 목줄 풀고 놀 수 있는 곳이 있었는데 한국은 그런 문화, 그런 시설이 없으니까 철저하게 조심하면서 산책 시킨다. 소개해 주고 싶은 친구는 (김)민재네 강아지. 한 번 강아지끼리 만나게 해주고 싶은데 아직 기회가 없었다. 민재가 대전에 올 성격이 아니니까 내가 서울 가면 가능할 것 같다.


Q 미국프로축구(MLS) 밴쿠버화이트캡스에서 러시아프리미어리그 루빈카잔으로 이적한 뒤 반 시즌이 지났는데
A 캐나다에서보다 축구를 더 재밌게 하고 싶었다. 캐나다에서는 우리 팀 전력이 수비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수비에 힘을 다 썼다. 러시아에서는 (레오니드 슬러츠키) 감독님이 매 경기 하프타임마다 그런다. "너에게 달려 있다. 네가 잘 하면 우리 팀 잘 된다"고. 믿음에 보답하려고 노력하니까 공격포인트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선수들 실력도 실력이지만 너무 빡세다. 경합 상황에서 그 누구도 피하려고 하지 않는다. 솔직히 러시아에 나보다 기술 좋은 선수는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투쟁심, 수비력은 다들 좋다. 그래서 내겐 도움이 된다. 거친 압박을 견디는 법을 항상 고민하고 연구하게 만든다. 성장할 수 있는 곳이라 좋다. 나도 타이밍을 잘 잡으면 더 큰 선수와 부딪쳤을 때 밀리지 않을 수 있더라. 또 어떻게 하면 나보다 큰 선수를 쉽게 제치는지도 연구 중이다. 그게 경기장에서 구현될 때마다 자신감이 생기고.


Q 카잔으로 간 건 슬러츠키 감독의 적극적인 구애 때문이라고 들었는데
A 아시다시피 디나모자그레브(크로아티아) 이적으로 이야기가 잘 되고 있는데 카잔에서 갑작스럽게 영입을 추진했다. 나, 감독님, 단장님 셋이 페이스타임을 했다. 그런데 내 장점만 계속 이야기하더라. 오히려 내가 물어봤다. '제 피지컬로 러시아리그에서 잘 할 수 있겠냐'고. 그랬더니 감독님이 '피지컬 좋은 리그에서 네가 잘 해낸다면 성장하는데 좋은 스텝이 될 수 있다. 너의 피지컬 수준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나는 알다시피 혼다 게이스케를 지도해 봤다. 혼다가 조금 더 좋긴 하지만 너와 큰 차이가 없는데, 러시아에서 아주 잘 하지 않았냐. 판단력만 빠르면 된다. 그래서 널 원하는 것이다'라고 하시더라. 단순히 영상통화를 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날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고 있다는 게 큰 믿음을 줬다.


Q 카잔에서 제일 마음에 든 장면은
A 일단 데뷔골이다. 워낙 타이밍이 좋았고 운 좋게 멋진 첫 골(발리슛)을 일찍 넣어 적응도 빨랐다.
두 번째는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마지막 경기였는데 눈이 엄청 왔다. 사실 내가 못 하는 것 중 하나가 문전 침투다. 아버지가 늘 조언하시는 부분인데도 그 움직임이 잘 안 됐다. 그날은 눈이 많이 와서 빌드업보다는 일단 상대방 페널티 박스로 공을 넣어야 했다. 그래서 내가 박스 안으로 굉장히 자주 들어갔다. 골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경기 후 스스로 돌아볼 때 박스 안에 자주 들어갔다는 생각이 들더라. 내 장점을 늘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눈 쌓인 곳에서 경기한 건 처음이었다. 러시아 아니면 어디서 경험하겠나.


Q 러시아 중에서도 타타르스탄 공화국에 속하는 카잔에서의 생활
A 해외 생활은 밴쿠버에 이어 두 번째인데, 밴쿠버는 환경이 좋고 교민도 많아서 영어를 못 해도 상관없을 정도다. 카잔도 괜찮은데 밴쿠버와 직접 비교가 되니까 솔직히 조금 불편한 게 있었다. 나는 한식을 먹어야 하는 사람인데 카잔에는 한인마트가 없다. 눈이 자주 오니까 나갈 생각도 안 든다. 쿠버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산책을 위해 의무적으로 나갔으니까.


Q 러시아에서 실감하는 한류
A 처음 갔을 때 다들 이야기하는 건 아직도 '강남스타일'이었다. 그리고 러시아에서는 블랙핑크 인기가 엄청 많은가보다. 또 한국 화장품의 인기가 좋다. 다들 '내 아내가 궁금해 한다'며 블랙핑크와 화장품 이야기를 묶어서 물어본다. 내가 뭘 바르냐고 물어본다니깐.


Q 11월 대표팀 소집 당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는데
A 처음 걸렸을 때 열도 없었고, 불편한 증상은 없었다. 다만 후각은 잃었다가 나중에 점차 돌아왔다. 미각은 잃지 않았다. 난 어디서나 진짜 조심하면서 지냈다. 그런데 대표팀에서 양성이 뜨니까 믿어지지 않더라. 처음 (권)창훈이 형, (이)동준이와 함께 걸렸을 때 너무 어이가 없었다. 차라리 집에서 걸리면 내 집에 격리될텐데 오스트리아 호텔에 10일 격리라는 게 무슨 소리인지. 그래도 그 전까지는 행복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1년 만에 소집됐고, 대한민국 대표로서 훈련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 훈련 하면서 몸이 가벼웠고 다들 분위기도 좋았는데.


Q 카잔행을 결정하면서 조언을 구한 사람이 있나
(김)인성이 형. 슬러츠키 감독님과 함께 있었으니까. 많은 도움이 됐다.
그리고 김동진 선배님이 러시아 경험이 많으시지 않나. 아무 인연이 없는데, 내가 인스타그램 DM(개인 메시지)을 보내서 '실례를 무릅쓰고 조언을 구한다'고 엄청 긴 글을 보냈다. 그런데 정말 감사하게도 더 긴 답장이 왔다. 러시아의 장단점, 캐나다보다 생활이 힘들 거라는 점, 내가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 등등. 너무 친절하게 이야기해주셨다. 그 메시지를 캡처해서 가족 단톡방에 올린 뒤 우리 모두 김동진 선배님의 팬이 됐다.


Q 잠깐, 아들만 둘인 충청도 가족인데 가족 단톡방이 있다고?
A 원래 있었는데? 요즘은 쿠버 사진 공유하느라 활성화 돼 있고.


Q 2021년은 어떤 해가 될까?
A 2020년은 어이가 없었다. 개인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그렇다는 거다. 지금 격리돼 있는 집이 9층인데, 밖을 내다보면 마스크 쓴 어린애들이 어떻게든 밖에서 놀아보겠다고 흩어져서 썰매를 탄다. 너무 딱하다. 난 어렸을 때 마음 편히 놀았는데. 다들 방역수칙 잘 지켜서 원래의 삶을 되찾았으면 한다. 그게 축구보다 중요하다. 개인적으로는 우리 팀이 유로파리그 진출권과 승점 5점 차인데 끝까지 따냈으면 좋겠고, 새해는 대표팀 경기가 다 이뤄졌으면 좋겠다.


사진= 황인범 제공, 루빈카잔 공식홈페이지 및 인스타그램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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