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문화 공간①] 홍대 앞 상징적 공연장들에 유독 가혹했던 코로나19

박정선 2021. 1. 1.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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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라이브홀, 코로나 이후 매출 90% 줄어
22년 청담동 지켰던 재즈클럽 '원스 인 어 블루문' 폐업 결정

2020년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장기화는 의미 있는 문화 공간들을 다수 빼앗아 갔다. 공연장과 영화관, 대학로 소극장들까지 하나, 둘 들려오는 폐관 소식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오랜 기간 대중과 함께 했던 문화 공간들이 사라지게 된 과정과, 이들 공간이 가진 의미를 되짚어본다. -편집자주


ⓒ브이홀

서울 홍대가 ‘공연의 메카’로 불리기까지, 1990년대부터 라이브 공연장과 밴드들이 자생하며 문화생태계를 형성해왔다. 하지만 모두가 함께 겪고 있는 코로나19 시대, 홍대 앞 라이브홀들은 유독 혹독한 시간을 감당해야 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에 따라 대다수의 공연이 취소되면서 음악 소리로 가득해야 했던 공간들은 적막만 감돌았다. 그럼에도 높은 임대료는 지불해야 하니 운영을 중단하는 것밖엔 방법이 없었다.


실제로 홍대의 대표적인 공연장으로 꼽히는 브이홀을 비롯해 인디라이브클럽의 상징인 DGBD(구 드럭), 객석 500석 규모의 무브홀 등 6곳이 문을 닫았고, 나머지 공연장들도 1/10 수준의 가동률로 평년 대비 90%에 가깝게 매출이 줄어들어 힘겹게 버텨내고 있다.


모든 공연장이 특별하지만, 그 중에서도 브이홀이라는 공간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신해철이 지난 2007년 개설한 고스트 시어터가 모태다. 당시 홍대 앞 라이브 공연장으로는 최대 규모로 문을 열었고, 후원사의 브랜드 등을 브이홀 앞에 붙여 운영하기도 했다. 큰 규모 덕분에 인디 밴드의 공연은 물론, 아이돌 가수들, 유명 해외 뮤지션들의 내한 공연 등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들이 찾는 공연장이 됐다.


브이홀의 운영을 맡아온 주성민 대표는 지난해 11월 라이브홀의 간판을 내리던 날, 일부러 그 곳에 가지 않았다. 주 대표는 “차마 가지 못하겠더라. 공식적으로 영업 종료를 공지하지 않았다. 차후에 누군가 맡아서 다시 브이홀이 다시 운영될 수 있게 되면…”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아쉬운 건 많은데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쉰 주 대표는 “대부분의 공연장들이 코로나19 이후 지금까지 영업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임대료는 계속 높아지는데 매출은 없는 상황이라 문을 닫는 공연장들도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브이홀도 마찬가지”라고 하소연했다.


공연장 매출은 1/10 수준, 특히 스탠딩 공연장의 경우는 사실상 공연을 아예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는데 임대료와 관리비로 매달 1600만원씩 내고, 직원 인건비 등의 지출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결국 9월 폐관을 결정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지원 방식에 대한 아쉬움도 더해졌다. 공연장 생태계를 유지하고, 민간 자영업자를 살리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수백억의 예산을 새로운 공연장 조성에 사용하기로 밝혔고, 서울시는 이미 합정역 인근에 ‘서울생활문화센터 서교’를 지난해 12월 4일 개관했다. 이 공간에는 160석 규모의 공연장도 꾸려졌다.


주 대표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수백억의 예산을 공연장 조성에 사용한다는 건 공연장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과 경쟁을 하자는 것으로 밖에 읽히지 않는다. 오히려 공연 문화 상권을 무너뜨리는 것”이라며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 단순히 새로운 공연장을 짓는 것이 아니라 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는 지원이 있어야 문화예술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고 지적했다. 또 “대출 관련 지원을 해준다는데 지금 이 상태(공연을 하지 못하는 상태)라면 갚을 능력이 되지 않는데 현실적으로 활용할 수 없는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원스 인 어 블루문 홈페이지

22년간 청담동을 지켜왔던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재즈클럽 ‘원스 인 어 블루문’도 지난해 11월 14일 공연을 끝으로 문을 닫았다. 1998년 문을 연 이 곳은 국내에 재즈클럽의 고급화와 대중화를 이룬 상징적 장소다. 유명 재즈 뮤지션들의 공연 장소로 각광을 받게 된 건 잘 갖춰진 음향 시설 덕분이다. 쇼케이스에는 재즈 애호가들이 몰려들고, 자연스럽게 커뮤니티도 형성됐다.


동시에 드라마 ‘파리의 연인’(2004) ‘내 이름은 김삼순’(2005) ‘내 딸 서영이’(2012) ‘최고의 연인’(2015) ‘마담 앙트완’(2016) 등 유명 드라마 촬영 장소로도 유명했다. 히딩크 전 한국축구 국가 대표팀 감독이 단골로,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한국 경기를 마치고 그가 클럽으로 달려온 일화는 여전히 회자된다.


‘원스 인 어 블루문’은 코로나19 사태로 올해 내내 어려움을 겪어 왔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영업 자체가 쉽지 않아 금토 공연만 해오면서도 운영을 이어왔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새 건물주가 재건축을 추진하면서 폐업을 결정하게 됐다. 결국 22년의 역사를 가진 이 건물은 허물어지고, 새 건물이 들어선다.


‘원스 인 어 블루문’ 마지막 공연에는 이정식, 웅산, 김현미, 김준 등 재즈계를 대표하는 뮤지션들이 모두 모여 서운함을 드러냈다. 창업자인 임재홍 대표는 “스물세 살 된 아들과 사별하는 느낌”이라며 “파란색 글자가 적힌 시그니처 무대는 떼어 보관했다가 언젠가 다시 문을 열 때 사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데일리안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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