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난 10년간 한국에서 배운 것_라파엘의 한국살이 #48

김초혜 2021. 1. 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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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해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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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해가 지나갔다. 좋든 싫든 2020년은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 오랫동안 기억될 한 해다. 그리고 내가 한국에서 산 지 10년이 된 해이기도 하다. 10년이라는 긴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알 수 없다. 10년은 나를 만들었고, 변화시켰고, 과거보다 조금 더 성숙한 인간으로 발전시켰다. 그리고 이 시간을 통해 내가 한국에 대해 조금 더 잘 이해하게 되었기를 바란다.

지난 10년 과거를 돌아보면서 내가 알게 된 몇 가지를 나열하자면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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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 대해 열광하는 외국인들은 많지 않았다 」
2011년 한국에서 어학당을 다닐 때 대부분의 반 친구들은 중국과 일본에서 온 학생들이었다. 선생이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배우는 이유나 한국에 온 이유를 물으면 하나같이 K-pop 때문이라거나 동방신기를 외쳤다. 한류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당시 한류는 동아시아에 국한된 것이었다. 영국에 있는 내 친구들은 내가 굳이 한국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의문을 가졌고 심지어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 2 권위에 도전하지 마라 」
어학당을 마치고 대학원에서 한국학 석사과정을 다니면서 가장 먼저 배운 것은 서열 문화다. 교수들과 잡담을 나누거나 함께 술을 마시는 것에 익숙했던 나는 권위적인 교수의 ‘정답’을 받아 적어야 하는 환경에 당황했다. 교수’님’ 앞에서는 나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없었고 답답함을 느꼈다. 시간이 지나자 이런 서열은 사실 이 사회 거의 모든 곳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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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한국은 분열 국가다 」
한국은 물리적으로 또 정서적으로 분열된 국가다. 남북한의 지리적인 분단뿐만 아니라 남한 내 갈등도 심각하다. 정파 갈등, 남녀 갈등, 지역 갈등, 세대 갈등, 계층 갈등, 노사 갈등 등 사회 곳곳에서 분열과 대립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6.25와 냉전으로 발생한 정치적 갈등은 무한경쟁시대에 와서 다양한 지역/사회적 갈등과 겹쳐지는 모양새다.
「 4 인맥과 부패 」
갈등은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의 연대의식에서 출발해서 내 편과 네 편을 구분하는 일에서 비롯된다. 혈연, 학연, 지연과 같은 인맥과 다양한 인연을 내세워 서로가 처음 알아가는데 드는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연결과 연대의식은 갈등을 만들고 더 넓은 공동체의 통합을 저해한다. 또한 이런 연대의식이 부패의 기반이기도 하다. 부패는 비용과 노력이 상대적으로 많이 드는 정당한 절차와 과정을 ‘융통성’이라는 이름으로 약화한다. ‘아는 사람들끼리’ 빡빡하게 구는 것은 피해야 한다는 이유로… 물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위험은 전혀 관련 없는 사람들이 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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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직장 그리고 ‘워라벨’ 실종 」
회사에 다니면서 나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회사 생활에 잘 적응하려 노력했다. 삶이 일이고 일이 삶인 시간을 보내면서 어느 순간부터 내 운명처럼 여겨졌던 직장생활이 로봇의 일상처럼 여겨졌다. 자기 자신을 컨트롤할 수 없는 전혀 다른 나를 본 것처럼 느껴졌고 내 생각은 죽고 없어진 것처럼 보였다. 결국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그로 인한 불안에도 불구하고 퇴사를 결심하게 됐다.
「 6 나만의 길이 있을 뿐 정도는 없다 」
바쁜 회사생활에 지쳐가던 중 어느 날 나는 그만두고 프리랜서의 삶을 살기로 했다. 처음에는 평범한 회사생활을 벗어나서 다른 삶을 산다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시간이 지나 그 시점을 돌아보니 직장에서 벗어나는 일은 충분히 가능할 뿐만 아니라 사실 많은 이들이 자기만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 7 한국적인 것은 세계적인 것이다 」
한국이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던 시기가 있었다. 불과 10년 전의 일이다. 하지만 현재 한국은 세계적인 이슈의 중심에 서 있다. 대중문화 중심지인 미국에서 영화 ‘기생충’과 ‘방탄소년단’이 수상한 일은 단적인 예이다. 한국은 많은 세계인이 동경하는 대상이며 더 가까이에서 경험하고 싶은 나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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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문화는 상대적이다 」
영국에서 나고 자라면서 유럽의 문화와 교육방식에 익숙하지만 다문화 가정에서 자랐다. 그러므로 나를 문화 상대주의자라고 설명할 수 있다. 비서구권 국가들을 여행하면서 서양 문물은 지배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많은 이들이 나의 출생지를 대놓고 부러워했다. 한편으로 한국, 일본, 중국, 싱가포르처럼 동아시아 국가들의 눈부신 발전을 경험한 나로서는 서구사회 사회 시스템이 답답했던 것도 사실이다. 사회의 발전을 이야기하자면 많은 요소를 고려해야 하고, 나는 이를 평가할만한 위치에 있지도 않다. 그런데도 이번 코로나 사태를 보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더는 서구사회가 마냥 부러워하고 따라 할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특히 무질서와 아비규환을 자유라는 이름으로 옹호하는 사람들에게 배울 점은 전혀 없어 보인다.

나는 한국에서 살았던 매일 매 순간에 감사한다. 그리고 앞으로 맞이하게 될 10년 또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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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살이 10년 차, 영국에서 온 남자 라파엘 라시드가 쓰는 한국 이야기는 매주 금요일에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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