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경의 '시코쿠 순례'] (1) 108 사찰 돌며 神과 함께 걸어볼까요

2021. 1. 1.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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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과 함께 세계 2大 순례길로 손꼽히는 시코쿠 88 사찰 순례길(헨로미치)은 시코쿠 사람이자 일본 불교 진언종 창시자인 코보대사(弘法大師, 774~835년)의 수행을 위한 첫발자국부터 시작됐다. 그 후 수많은 사람이 코보대사 뒤를 이었고 12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매년 순례자 20만명 이상이 시코쿠를 찾는다고 한다.

코보대사는 시코쿠 순례길을 처음 개척한 인물이다.
일본은 수많은 섬으로 이뤄져 있지만 크게는 4개의 섬인 홋카이도, 혼슈, 규슈, 시코쿠로 나뉜다. 시코쿠는 가장 작은 섬으로 도쿠시마, 고치, 에히메, 가가와 네 개의 현으로 돼 있다. 일본 내해 세토나이카이를 뒤로 하고 태평양을 마주 보고 있는 아름다운 섬이다.

각 현에 흩어져 있는 88 순례 사찰과 번외 사찰 20개까지 모두 108개 사찰을 도는데, 이는 불교의 108 번뇌와 닿아 있다. 사찰 순례다 보니 산속을 걸어야 할 때가 많고 또 섬인 만큼 아름다운 해안을 따라 걷기도 한다. 섬 전체를 발 도장 찍어가며 도는 것을 ‘아루키 헨로’라고 하는데 노숙을 해야 할 때도 꽤 있다. 대부분 순례자는 가벼운 배낭을 메고 사찰 중심으로 민박을 하거나 절에서 제공하는 무료 숙소나 저렴한 숙소를 이용하면서 걷는다. 이동 거리가 멀고 험할 때는 버스나 기차를 이용한다. 일본인은 단체 순례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시간 되는 대로 현 하나를 도는 식 또는 다른 방식으로 몇 차례씩 나눠 하기도 한다.

순례자들은 일종의 명함이라고 할 수 있는 오사메후다(納札)라는 종이를 사용한다. 이 종이에 이름, 순례일, 소원 등을 써서 본당과 대사당에 올린다. 순례자끼리 명함처럼 교환하기도 한다. 오사메후다는 순례를 몇 번 했느냐에 따라 색깔이 달라진다. 1~4회는 흰색, 5~6회는 녹색, 7~24회는 빨간색, 25~49회는 은색, 50~99회는 금색, 100회 이상은 비단으로 만든 후다를 사용한다. 순례 중 금색이나 비단 후다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다. 후다상자에 자신의 후다를 넣다 금색이나 비단후다를 발견하게 되면 가져가도 된다.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고 방법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나는 순례길에서 총 33일을 보냈다. 아시즈리 미사키에서는 풍광에 반해 하루 더 머물렀고, ‘봇짱열차(일본 소설 ‘도련님’에 나오는 열차로, ‘도련님이 탄 열차’라는 의미의 애칭)’의 도시 마쓰야마(松山)와 ‘아와오도리(매년 8월 12~15일 일본 도쿠시마(德島)현을 중심으로 열리는 민속 무용 축제)’의 도시 도쿠시마에서는 작정하고 더 머물렀다.

하루 순례를 마치면 숙소에서 다음 날의 목적지를 위해 매일 길 공부를 해야 했다. 필요한 숙소는 미리 일주일이나 최소한 2~3일 전에 예약을 해야 낭패를 보지 않는다. 순례를 시작할 때는 우선 순례자의 표식을 갖춘다. 스게가사라는 삿갓과 하쿠이라는 흰옷 그리고 콘고즈에라 불리는 지팡이가 기본이다. 그리고 향과 초, 납경장, 불경과 염주를 넣는 즈타부쿠로를 메면 완벽한 차림새가 된다.

12번 쇼산지에 있는 에몬 사부로와 코보대사.
흔하게 볼 수 있는 일본 단체 순례객들의 모습.
▶산티아고 스탬프처럼 참배한 사찰 확인받는 ‘납경장’ 있어

납경장은 산티아고 스탬프처럼 참배한 사찰의 확인을 받는 것인데, 각 사찰마다 납경소가 있고 납경을 해주는 스님이 따로 있다. 순례자는 오헨로상(お遍路さん, ‘오’는 사람을 부를 때 붙이는 경어)이라고 부르는데, 내가 걷다 만난 헨로상들은 두 가지 이유로 순례를 하고 있었다. 먼저 간 가족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거나 어딘가 아픈 자신을 위해서였다.

시코쿠에는 ‘오셋타이(お接待)’라는 아름다운 전통이 있다.

코보대사가 수행할 때 에히메 사람인 에몬 사부로를 만났다. 코보대사가 에몬 사부로 집에 가서 탁발을 청했는데, 에몬 사부로는 공양은커녕 문전박대했다. 그 다음 날부터 에몬 사부로 자식이 하나둘 죽더니 결국 8명의 자식 모두를 잃게 됐다. 그제야 에몬 사부로는 후회하면서 코보대사에게 사죄하기 위해 순례를 시작했다. 그러니까 시코쿠 88 사찰 첫 번째 순례자는 에몬 사부로였던 셈이다. 에몬 사부로는 시코쿠를 20번이나 돌았는데도 코보대사를 만나지 못하다 혹시 거꾸로 돌면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품고 21번째 순례를 시작하지만, 그만 병에 걸려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 순간 홀연히 나타난 코보대사가 죄를 용서해주며 에몬 사부로 왼손에 작은 돌 하나를 쥐어주자 에몬 사부로가 편히 눈을 감았다고 전해진다.

에몬 사부로가 죽은 곳이 바로 12번 쇼산지(燒山寺)다. 쇼산지에는 코보대사와 에몬 사부로의 동상이 있다. 다음 해 에히메현 영주인 야스토시 집에 사내아이가 태어나는데 그 아이의 왼손이 펴지지 않았다. 야스토시는 51번 안요지(安養寺) 주지스님에게 아이를 데려가 기도를 부탁했고 스님의 기도 후 아이 손이 펴지더니 작은 돌이 굴러 떨어졌다. 그 돌에는 ‘에몬 사부로의 재래(衛門三郞再來)’라고 쓰여 있었다. 그때부터 51번 절의 이름은 안요지에서 ‘이시테지(石手(손 안의 돌)寺)’가 됐다.

순례자를 박대하면 안 된다는 풍습은 여기서 시작된 게 아닌가 싶다. 시코쿠 사람들에게 헨로상에게 하는 보시는 의무인 것도 같고 즐거움인 것도 같았다. “힘내라”는 말 한마디부터 차 한잔, 요기를 도와줄 간식거리, 길 안내, 기념품, 심지어 돈까지! 줄 수 있는 것이면 그들은 아끼지 않았다.

때로 곤경에 빠진 헨로상에게 그것은 기적과도 같았다. 오셋타이는 국적, 인종,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 그 길 위에서 만난 길동무들도 내게는 오셋타이였다. 헤어지면서는 “인연이 있다면 또 만나자(엔가 앗다라 마타 아이마쇼우!)”는 인사를 나눈다.

사찰을 하나씩 지날 때마다 우선 건강해졌고, 마음은 편안하고 경건해졌으며,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진심으로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게 됐다. 그러다 “나에게 상처 준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할 수 있을까?”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납경을 받고 돌아설 때마다 화두처럼 나를 물고 늘어진 질문이다.

만약 그들을 용서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게 된다면 이 순례는 성공이라고 생각하며 걷고 또 걸었다. 시코쿠 사람들의 조건 없는 오셋타이가, 코보대사의 불심이 나를 마지막까지 이끌었다. 시코쿠의 아름다운 풍광은 덤이었다.

[최현경 한국방송작가협회 부이사장]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90호 (2020.12.30~2021.01.0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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