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t Korea ⑧] 흔들리지 않는 '한류'를 위하여

유명준 2021. 1. 1. 09: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탈아시아 움직임 후 10년 지난 한류, BTS‧봉준호로 글로벌 폭 넓혀
엔터테인먼트 업계 남아있는 악습들, 불안요소로 남아
'숟가락 얹기'식 정책, 현장에서 '지원' 체감 못해
방탄소년단ⓒ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한류(韓流)는 원래 한국문화가 중국에서 인기를 모으는 것을 지칭했다. 1997년 중국 CCTV를 통해 방영됐던 ‘사랑이 뭐길래’로 시작해 한국 드라마가 중국의 젊은 층 사이에 퍼져나갔고, 2000년 초반 H.O.T를 필두로 한 아이돌들이 음악으로 이들을 접수하는 과정을 중국 언론이 한류로 표현한 것이다. 이후 2001년부터는 아시아권에서 한류가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가요와 드라마를 통해 한국의 패션과 음식이 관심을 모았고, 한국 연예인을 따라하는 성형수술까지 아시아에서 유행했다.


그러나 ‘한류’는 아시아 지역을 벗어나면 “누구냐 넌”이라는 반응을 접해야했다. 일본에서 콘서트를 개최하면 수만 명의 팬을 쉽게 모은 아이돌 그룹도 아시아를 벗어나면 천명 단위도 버거워했다. 배우들 역시 몇몇을 제외하고는 아시아를 벗어나는 순간 평가 수준에 오르기 힘들었다. 흔적만 남겼을 뿐, 굵은 족적이 아니었다.


2009년 초 미국 매거진 콤플렉스 온라인 사이트에서는 당시 미국 시장에 진출한 비, 보아를 비롯해 진출을 앞두고 있던 이병헌, 세븐, 전지현 등에 대해 냉정하게 평가하면서 “한국은 중국, 일본 및 동남아 국가를 석권하고 이제 미국 시장으로 진입하려 한다”고 보도했다. 한류의 탈아시아 시점이다.


이들이 조금씩 세계 곳곳에 던진 흔적들은 이제 구체적인 모습으로 드러나 세계에서 한국의 소프트 파워를 대표하게 됐다. 방탄소년단(BTS)과 블랙핑크를 비롯한 가수들이 빌보드차트를 비롯한 글로벌 차트를 휩쓸고 있고,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은 칸과 아카데미 정상에 섰다. 한국 작품들은 넷플릭스 차트 상위권을 차지한다. 적잖은 한국 가수와 배우는 이미 ‘세계적’인 인지도와 영향력을 갖게 됐다. 한국어로 된 가사를 따라하고, 한국어로 된 대사를 공부하는 글로벌 팬들을 증가하고 있다.


이런 한류의 확산은 무엇보다 촘촘하게 전 세계를 연결시킨 ‘손바닥 미디어’의 힘이다. 빠른 인터넷망을 기반으로 한 온라인 콘텐츠 플랫폼은 한국 창작자들에게는 놀이터가 됐다. 여기에 다양한 창작력과 습득력, 그리고 뭔가 ‘뜬다’하면 쏠림 현상이 일어나는 특유의 기질까지 합쳐져 한류가 폭발했다. 이런 인프라와 기질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시국에서 독특한 힘을 발휘했다. 일부이긴 하지만, 온라인 플랫폼에서 한류가 어떻게 자리매김할 수 있는지도 확인했다. 특히 하루에 수십 기가 바이트를 소모하면서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즐기는 한국 콘텐츠 소비자들은 이를 탄탄하게 받혀줬다.


그러나 한류가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을수록, 실질적으로 한류를 발전시키고 고민하던 이들은 불안해한다.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확산시키는 힘은 분명 있지만, 이를 구성하는 근본적인 토대과 시스템, 그리고 지원은 여전히 미흡하기 때문이다. 즉 콘텐츠의 외부 변수로 인해 한류가 흔들릴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기생충' 송강호와 봉준호ⓒCJ엔터테인먼트

우선 이들은 엔터테인먼트계 과거를 이끈, 그리고 현재와 미래를 이끄는 구성원들의 불안한 동거를 언급한다. 현재 한류는 과거 ‘군대식’ 문화를 바탕으로 한 시스템, 그리고 엔터테인먼트계의 낮은 인건비와 ‘의리’로 뭉쳐 굴러가는 형태 등이 아슬아슬하게 쌓여 만들어진 것이다. 몇 십 만원 수준의 월급을 받는 매니저와 ‘잘 되면 준다’며 제대로 비용을 받지 못한 안무가들, 무대 스태프들 등의 희생이 쌓여 만들어진 한류인 셈이다.


지금과 같이 체계화된 기획사들이 등장하고, 스태프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인정받는 모습은 불과 몇 년밖에 되지 않았다. 여전히 ‘과거’의 모습을 기억해 추진하는 이들과 변화된 ‘현재’의 시스템에 익숙한 이들이 섞여있는 것이다. 때문에 여전히 작품을, 곡을, 안무를, 스타일을, 공간을 만들어내는 이들 중 적지 않은 수가 화면 밖에서 강도 높은 노동에도 저임금의 상태에 놓여있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방시혁 대표는 “음악 산업이 안고 있는 악습들, 불공정 거래 관행 그리고 사회적 저평가로 인해 업계 종사자들은 어디 가서 음악 산업에 종사한다고 이야기하길 부끄러워한다. 많은 젊은이들이 여전히 음악 회사에 대해 일은 많이 시키면서 보상은 적게 주는 곳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불과 2년 전이다. 이는 비단 음악 산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엔터테인먼트 업계 전체가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다.


한류 확산의 불안요소 중 또 하나는 정책 집행자들의 ‘숟가락 얹기’와 ‘탁상 행정’이다. 문화 영역은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를 전제로 한다. 이른바 ‘팔길이 원칙’(arm’s length principle)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영국의 예술행정가 존 피크가 저서 ‘예술행정론’에서 언급한 내용이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를 바탕으로 문화정책의 기조를 수립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변형되고, 변질되기도 했지만, 큰 틀은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문제는 ‘간섭’이 아닌 ‘지원’에 있다.


특히 현재의 한류 현상을 이끈 가요, 영화, 드라마 현장에서는 ‘간섭은 안하지만, 지원도 제대로 못한다’라는 말이 나온다.


공무원의 시선에서 ‘시간’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상품을 만들어내는 문화 영역은 측정하기도, 다루기도 어려운 존재들이다. 특히 장기적이고 전문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이 분야에 순환근무식으로 잠시 머무는 비전문적 공무원들이나 일정 기간 결과물을 내고 평가해야 하는 이들이 현장과의 소통에 어려움이 존재한다. 지원의 적재적소를 찾아내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무리수가 나오거나, 기존에 무의식적으로 문화를 대해온 관습대로 움직인다.


정세균 국무총리가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함께 신한류 확산모델 미디어 전시를 둘러보고 있다.ⓒ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일례로 문화체육관광부가 한류협력위원회와 한류지원협력과를 만들어도 대중문화 현장에 있는 이들은 시큰둥하다. 무엇을 협력하고 지원하겠다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현재 추구하는 한류 협력과 지원은 대중문화를 활용한 다른 예술 영역과 음식, 패션 등 타 영역의 확산이다. 가요, 드라마, 영화를 벗어난 ‘신한류’라고 지칭하지만, 과연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세 영역은 한류의 성과에 비해 제대로 지원을 받고 잇으면서 활용되는지 의문이다. 혹자는 지난 10월 정세균 국무총리가 가진 ‘예술인들과 목요대화’에 연극, 뮤지컬, 무용, 국악, 클래식, 미술, 문학 분야 관계자들을 초대한 것을 언급하며, 문화 영역을 구분해 대하면서 ‘협력’과 ‘지원’을 이야기하는 것이 무슨 말인지 모른다는 평가까지 했다.


어쩌면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관행과 희생이 여전히 불가피하다고 말하는 이들과 정책을 만들어 지원하고자 하는 이들도 나름의 사정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정작 한류의 무대를 흔들게 하고, 일선에서 뛰는 이들을 이해시키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2021년 한류는 한번 더 도약할 것이다. 방탄소년단과 봉준호가 2020년 가요와 영화에서 이미 글로벌 정상의 길을 닦았고, 넷플릭스 등 온라인 플랫폼에서 한국 작품들이 전 세계인의 눈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숨죽였던 오프라인 판이 펼쳐지면 도약은 더 높아진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불안요소가 발목을 잡는다면, 뛰지도 못할 것이다. 반면 엔터테인먼트계의 구조가 변화되고, 정부의 지원이 ‘숟가락 얹기’식이 아닌 구체적으로 이뤄진다면 폭발력까지 가질 것이다 단, ‘제대로’ 변화되고, ‘제대로’ 지원된다면 말이다.


글/유명준 문화스포츠부장

데일리안 유명준 기자 (neocross@dailian.co.kr)

Copyright ©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