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라커룸부터 피땀 튀는 피치까지..한 시즌 그대로 담고 싶었어요"

조효석 2021. 1. 1.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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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UTD '비상 2020' 연출 공명운 감독
30일 공개된 6편까지 1년 대단원 막 내려
"한계 있지만 유의미한 기록..다음 '비상'도 희망"
인천 유나이티드 다큐멘터리 '비상 2020'을 연출한 공명운 감독이 15일 인천 중구 인천축구전용경기장 라커룸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촬영은 사회적 거리두기 방역수칙을 준수해 이뤄졌다. 인천=권현구 기자

프로축구 K리그는 요즘 ‘스포츠 다큐’ 열풍이다. 각 구단은 그간 찍어놓은 영상으로 한 시즌을 갈무리하는 다큐멘터리를 앞다퉈 내놓고 있다. 과거와 달리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을 통해 상시로 구단을 둘러싼 영상이 공개되고 있는 만큼 이런 흐름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이들 중에서도 시즌 시작부터 일찌감치 스포츠 다큐를 내놓은 곳이 있다. 올해도 극적으로 1부 잔류에 성공한 ‘잔류왕’ 인천 유나이티드다.

인천 구단의 6편짜리 연작 다큐멘터리 ‘비상 2020’은 십수 년 차 K리그 팬들이라면 들어봤을 2006년작 다큐멘터리 ‘비상’의 이름을 따왔다. 당시 독립영화로 개봉한 ‘비상’은 관객 4만명을 동원하며 국내 다큐 영화 흥행 최고 기록을 깨뜨렸다. ‘비상’의 소재였던 2005년 시즌 당시 중학생에 불과했던 공명운(29·사진) 감독은 인천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이자 골수 인천 팬이다. 이번 작품은 그에게 영화인으로서도 대중에게 공개하는 첫 작품으로 의미가 컸다. 국민일보는 마지막 편이 공개되기 전인 지난 15일 인천의 홈구장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공 감독을 만났다.

한국판 ‘죽어도 선덜랜드’?

스포츠 다큐가 ‘대세’가 된 건 최근의 일이다. 2018년에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명문이자 과거 기성용과 지동원이 뛰었던 구단 선덜랜드를 다룬 ‘죽어도 선덜랜드’가 넷플릭스에서 화제를 일으켰다. 코로나19로 세계 프로스포츠가 한꺼번에 멈춘 올해 초에는 마이클 조던과 시카고 불스를 다룬 ‘라스트 댄스’가 선풍적 인기를 끌었고, 손흥민의 소속팀 토트넘 홋스퍼를 다룬 ‘올 오어 낫띵’ 역시 아마존이 배급해 주목을 받았다. 공 감독은 “인천이 토트넘처럼 우승을 다투는 구단은 아니다 보니 접근 면에서는 아무래도 ‘죽어도 선덜랜드’를 모델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다만 ‘비상 2020’은 일반적으로 다큐에 등장하는 제삼자의 자막이나 해설 등 개입은 최대한 없앴다. 덕분에 선수단, 감독이나 팬, 직원들의 목소리가 다른 요소의 방해 없이 비교적 온전하게 담겼다. 공 감독은 “영상 미학적으로도 되도록 군더더기를 줄이고 싶었다”면서 “다소 불친절하다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작품이 목표로 삼는 관객이 일반 관객이 아닌 인천 팬들이라는 이유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외부에 재미를 위해 보여주는 콘텐츠라기보다 인천의 팬들이 진지하게 함께 보면서 ‘우리’라는 소속감과 결속을 다지도록 하는 데 더 중점을 뒀다는 설명이다.

한계도 많았다. 넷플릭스나 아마존의 경우처럼 외부 거대 자본이 아니라 구단의 지원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보니 이적시장이나 구단 내 복잡한 속사정 등 찍을 수 없거나 찍어도 담을 수 없는 이야기가 있었다. 작업을 종합해 극장에 내걸 수 있는 장편도 제작을 시도했지만 스포츠토토에서 받은 지원금으로 제작하다 보니 수익사업을 아예 할 수가 없어 무산됐다. 예산이 부족해 제작진은 공 감독 외에는 없다시피 했고, 카메라도 동원할 수 있는 게 최대 2대 정도였다. 모델인 ‘죽어도 선덜랜드’는 물론 과거 ‘비상’만큼의 다양한 면면을 담지 못한 건 그래서다.

공 감독은 “카메라 자체가 1~2대에 불과했기 때문에 대부분 촬영은 감독과 코치진이 있는 벤치 옆에서 이뤄졌다”면서 “3대 이상은 경기장에 들어가야 벤치, 잔디, 관중석과 프런트 등 곳곳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다양한 모습을 담을 수 있을 텐데 그런 점이 아쉬웠다”고 말했다. 중요한 경기가 있는 날은 올해 문을 닫은 경기장 매장 직원에게 부탁해 고정 카메라를 한 대 더 맡겨 찍었다. 분량을 채우기에 부족한 경기 영상은 한국프로축구연맹 미디어센터에서 도움을 받아 빌려오는 수밖에 없었다.

‘역대급 롤러코스터’ 시즌의 기록

한계에도 불구하고 ‘비상 2020’은 재미 면에서 팬들에게 나름의 호평을 받았다. 일단 인천의 올 시즌이 그 자체로 들쑥날쑥한 ‘롤러코스터’였기 때문이다. 공 감독은 “팬으로서는 팀이 안정적인 시즌을 보냈으면 하는 게 당연한 마음이지만 감독으로서는 위기가 없이 이야기 구조를 만드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면서 “전지훈련부터 시즌 초반을 다룬 1~2화는 갈등 구조를 캐치하는 일이 어려웠지만 3화부터는 팀이 극적인 부침을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물론 결과적으로 인천이 잔류에 성공했기에 할 수 있는 이야기다.

인천은 전반기 연패 부진에 빠지면서 임완섭 감독이 물러났다. 이후 이임생 전 수원 삼성 감독 부임설과 유상철 명예감독 복귀설, 이천수 전력강화실장의 사임 등 구단 안팎으로 시끄러웠다. 순위는 최하위로 떨어졌다. 이번 시즌이야말로 강등당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구단을 감쌌다. 구단 안팎에서는 ‘비상 2020’의 ‘비상’이 ‘비상(飛上·날아오르다)’이 아닌 ‘비상(非常·위급하다)’이라는 농담 아닌 농담까지 나돌았다. 정말 강등이라도 당했다면 ‘죽어도 선덜랜드’처럼 암울한 이야기를 담을 뻔했다.

‘비상 2020’은 시즌을 마치고서야 나오는 보통의 스포츠 다큐와 달리 시즌을 진행하면서 에피소드가 하나씩 공개됐다. 지난달 30일 나온 마지막 편까지 총 6편이다. 그렇다 보니 각 편을 언제 내놓을지 팀의 부침에 따라 고민이 많았다. 실제로 3편은 임중용 당시 감독대행 지휘로 8연패가 끊기고서야 나올 수 있었다. 공 감독은 “각 편에서 이야기의 기승전결이 있어야 하는데 연패만 가지고는 완성된 이야기를 만들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연패가 끊길 때까지 기다렸다”면서 “물론 연패하고 와중에 다음 화가 공개됐다면 뭘 내놔도 욕을 먹을 것이란 걱정도 했다”면서 웃었다.

시즌의 하이라이트이자 ‘비상 2020’의 가장 극적인 순간은 5편에서 다룬 부산 아이파크와의 홈경기였다. 관중 입장이 일부 허용된 이 경기에서 인천은 강등권 경쟁팀이던 부산에 2대 1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면서 잔류의 불꽃을 살려냈다. 앞선 두 차례 유관중 홈경기에서 모두 승리를 거두지 못했기에 더욱 가치 있는 승리였다. 공 감독의 카메라에는 당시 눈물을 쏟는 선수단과 코치진, 환호하는 관중들의 벅찬 감정이 여과 없이 담겼다. 진부한 문자 표현 그대로 ‘각본 없는 드라마’였다.

공 감독은 “전반을 0대 1로 뒤진 채 마친 뒤 함께 촬영을 하던 직원과 밖에 나가 담배를 피며 ‘아 이거 망했다’고 한탄했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에 단순히 팬의 입장에서 경기를 볼 때는 팀이 위기에 빠져도 감정기복이 심하지 않았는데, 그날만큼은 뭘해도 너무 떨렸다”고 털어놨다. 그는 “후반 들어 김대중 선수가 갑자기 골을 넣고 나서 어딜 찍어야 하나 하고 카메라를 돌리고 있는데 제대로 잡을 새도 없이 금방 골이 또 들어갔다. 벤치에서 우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복기했다.

기억을 남기는 일

시즌과 함께 진행된 ‘비상 2020’은 다른 다큐보다도 더욱 1년을 그대로 남긴 기록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인천의 잔류를 이끈 조성환 감독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조 감독은 “부산전에서 이겼을 때 당시에는 안 울었는데 집에서 5화를 가족들 있는 데서 보다가 울어버렸다”고 6화 인터뷰를 준비하던 중 공 감독에게 털어놨다. 조 감독은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준우승 했을 때는 기억은 남아있지만 자세한 기록이 남지 않았는데, 이렇게 남겨주니 너무 좋다”고 공 감독에게 고마워했다.

작품에는 시즌 중 전달수 대표이사가 사직하려 했던 일, 이를 만류하는 선수단의 모습도 그대로 담겼다. 연출이 아닌 날것 그대로의 상황이었다. 공 감독은 “당시 경기가 끝나고 감독 기자회견을 촬영하던 중 직원들이 하나씩 빠져나가는 걸 보고 따라갔더니 그런 상황이 일어나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구단에 있는 모든 일을 실시간으로 알고 현장을 따라가는 일이 쉽지 않다”면서 “아무리 민감한 일이더라도 이슈가 된 일을 다큐 제작자로서 아예 모른 척하고 지나갈 수는 없었다. 미처 화면에 담지 못한 일은 보도된 기사를 활용하는 식으로 보충했다”고 설명했다.

공 감독이 ‘비상 2020’에서 가장 의미가 있었다 생각한 건 5화에 등장한 팬들의 현수막이었다. 당시 인천 선수단 버스가 FC 서울과의 리그 최종전을 치르러 원정을 떠나는 고속도로 진입 길목에 선수단을 응원하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각 현수막에는 인천 팬들이 직접 보낸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공 감독은 “올해 대부분 경기가 무관중이었던지라 관중들의 모습을 많이 담지는 못했다”면서 “그럼에도 그 장면이 인천 구단이 존재하는 이유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아직 인천 구단과 공 감독은 다음 시즌 다시 다큐를 찍을지 계획을 세워놓지 않았다. 공 감독은 “인터뷰를 위해 임중용 기술이사와 대화하다가 관련 이야기가 나왔다”면서 “2006년작 비상이 인천이 창단 뒤 좋았던 시절에 나왔고, 이번에는 힘들 때 찍었으니까 다음 편은 팀이 더 안정 궤도에 올랐을 때 찍어서 3부작으로 하면 좋지 않겠나하는 얘기를 막연하게 나눴다”고 말했다. 공 감독은 “어려운 시즌이었지만 구단 관계자들과 주변인들이 도와준 덕에 무사히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어 고맙다고 인사하고 싶다”면서 “다음 번에 또 3편을 만들 기회가 있다면 시즌 뒤 장편으로, 다른 눈치를 보지 않는 환경에서 만들고 싶다”며 웃었다.

인천=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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