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지옥 또는 천국에서 보낸 한 철

2021. 1. 1.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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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해 미국과 한국에서 반년씩 살았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지만 지난해 7월만 해도 코로나19 환자에 대한 신속한 치료가 이뤄지던 때였다.

생활쓰레기 처리 등 격리 생활에 대한 궁금증이 들 때면 전담 공무원 직통 전화 한 통이면 해결됐다.

미국에서 처음 학교라는 데를 가봤던 초등학교 1학년 둘째 아이는 언니에게 "왜 선생님들이 우리를 보고도 아무 말도 안 해"라고 물었고, 언니는 "한국은 원래 그래"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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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규 경제부 차장


지난 한 해 미국과 한국에서 반년씩 살았다. 1년간의 연수를 마치고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 우리 부부의 첫마디는 “살았다”였다. 미국에서 코로나19에 걸리면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감, 치료를 받더라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비싼 의료비에 대한 두려움이 한순간 사라졌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지만 지난해 7월만 해도 코로나19 환자에 대한 신속한 치료가 이뤄지던 때였다.

2주간 자가격리가 시작되자마자 주민센터 직원이 식료품이 가득 든 커다란 박스를 가족 수만큼 현관문 앞에 놓고 갔다. 생활쓰레기 처리 등 격리 생활에 대한 궁금증이 들 때면 전담 공무원 직통 전화 한 통이면 해결됐다. 운전면허 신청을 위해 마냥 줄을 서서 기다리고, 전기 신청을 위해 집에서 1시간 걸리는 사무실까지 찾아가야 했던 미국의 공공서비스와는 급이 달랐다.

그러나 자가격리가 끝나고 거리에 나서면서 불특정 미국 사람들이 문득 그리워졌다. 저 멀리서 눈만 마주치더라도 손을 흔들며 “헬로”라고 말하던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 마트에서 계산할 때 “이건 맛있다, 잘 샀다” 등 시덥잖은 농담을 던지며 웃던 계산원들. 미국 생활 초기에는 그들의 자연스러운 인사와 미소에 어떻게 반응할지 몰라 당황했지만 익숙해지고 나니 함께 웃는 법이 그리 어렵지 않고 서로 기분을 좋게 해준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습관에 젖어 한국에 돌아와 길거리에서 눈이 마주친 중년 여성에게 웃음 지으며 눈인사를 건넸다. 결과는 참혹했다. ‘저 아세요? 이상한 사람이네’라고 말하는 듯한 싸늘한 눈길을 받으며 한국에 돌아온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예전처럼 엘리베이터나 길거리에서 무표정해지고 주변 사람 시선을 피하는 법에 익숙해지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귀국 후 초등학생 두 아이의 전학 수속을 위해 학교에 갔을 때는 절망스러웠다. 딸들의 손을 잡고 교무실에 들어가 30분 동안 관련 서류를 작성할 동안 아이들에게 인사말을 건네거나 눈길을 주는 선생님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미국에서 처음 학교라는 데를 가봤던 초등학교 1학년 둘째 아이는 언니에게 “왜 선생님들이 우리를 보고도 아무 말도 안 해”라고 물었고, 언니는 “한국은 원래 그래”라고 답했다.

미국 학교는 그러지 않았다. 영어로 자기 이름만 간신히 말할 줄 아는 동양에서 온 아이들에게 미국의 선생님들은 “영어 못해도 괜찮다, 예쁘다”를 지나칠 정도로 남발했다. 또 걱정하는 부모를 위해 아이가 어떻게 적응하고 있는지 시시콜콜히 적은 장문의 손편지를 보내주기도 했다. 왜 한국 아이들이 미국에서 1년만 지내면 한국으로 돌아가기 싫다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새해다. 미국이건 한국이건 사람 사는 데는 좋고 나쁜 환경이 섞여 있다. 생활 인프라는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한국이지만 모두들 너무 바쁘게 사는 것 같다. 1년 만에 다시 출입처로 돌아온 뒤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벌써 1년이 지났어요?”였다. 한국에 근무하러 온 외국 기업인들도 “한국 사람들은 너무 열심히 사는 것 같다”는 말을 자주 한다고 한다. 지난해는 특히 코로나 사태로 생활이 팍팍해지면서 여유가 더 없어졌을 수 있다. 그래도 더 좋은 세상은 생활의 편리함 그 이상의 무엇인가가 존재해야 하지 않을까.

올 한 해는 조금 느리더라도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 주변에 대한 관심이 지금보다 많아지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나부터 코로나 사태로 한계는 있겠지만 연초 ‘집콕’ 생활을 하면서 잊고 지냈던 분들에게 전화나 문자로라도 새해 인사를 드려야겠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삶의 편리성과 맞바꾼, 그 무엇인가를 회복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도해본다.

이성규 경제부 차장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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