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조금쯤 새로워질 기회
페이스북 앱을 켜면 종종 몇 년 전 오늘의 모습이라며 과거의 게시물을 다시 보여준다. 매일 비슷한 일상인 것 같은데 10년 전, 5년 전의 모습이 더 즐거워 보이고, 풋풋해 보여, 잠시 그리움에 젖기도 한다. 특히 지난 몇 년은 개인적으로도 어려운 과제가 많았던 기간이었는데 그 와중에도 좋은 시간들이 있었음을 상기시켜줬다. 힘든 시기는 평온한 날들의 소중함을 알게 해준다.
며칠 전부터 ‘과거의 오늘’이라며 뜨는 사진들의 계절은 여름이다. 조카가 태어나고 지난 몇 년 동안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뉴질랜드에 사는 동생네 집에서 보냈다. 일흔이 넘은 엄마와 일 년에 한 번, 남반구의 따뜻한 나라로 가서 조카와 동생 부부를 보는 일주일 남짓은 평화와 휴식의 시간이었다. 평소에는 엄마와 나도 자주 볼 수 없기에 그때만큼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고, 서로의 미래를 무조건 응원해 줬다. 이를 연례행사처럼 치렀다. 코로나19만 아니었으면 올해도 그랬을 텐데, 엄마는 이렇게 아쉬워하기보다 그때 너무 좋았다고, 행복한 추억이라고, 데려가줘서 고맙다고 한다.
얼마 전 화상 시스템을 통해 열린 연말 행사에서는 50명 정도의 참석자들이 간단히 올해의 소감을 얘기하게 됐다. 문화예술 종사자 또는 기업의 사회공헌 담당자들이 대부분이라 코로나 때문에 힘들었다는 얘기들이 나오지 않을까 했는데, 의외로 다들 감사한 일이 많았다고들 했다. 가족이 다 건강해 감사하고,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서 좋았고, 일에서 새로운 기회에 도전했고, 앞으로의 방향을 찾게 됐고, 무엇보다 한 해 무사히 잘 보내서 감사하다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간절하게, 조심스럽게 한 해를 잘 보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내 마음이 밝아졌다.
12월 31일과 1월 1일은 365일 중에서도 특별한 날이긴 하다. 시곗바늘은 같은 속도로 숫자를 통과하지만 사람들은 이날들을 기준으로 많은 것을 정해왔으니까. 30대가 40대가 되기도 하고, 밀레니엄이 오기도 한다. 지난 1년을 정리하고 새로운 1년을 계획하기도 하고, 10주년을 맞은 사람들은 지난 10년을, 누군가는 인생 전체를 돌아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이 특별한 날들의 가장 좋은 점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온다는 것이다. 싫어도 다 같이 한 살 더 먹는 거다.
누구나 새로운 시간을 받은 김에 새로운 마음도 가져볼 수 있다. 평소에는 새로운 마음을 갖는 일이 그리 쉽지 않지만 신기하게도 1월 1일에는 조금 수월하다. 조금 거창한 계획을 세우기에도 적당한 타이밍이다. 돌아보면 할 수 있을 때 미루지 않고, 피하지 않고 행동에 옮긴 것들에는 후회가 없다. 하다가 힘들면 그만둬도 괜찮다. 누구나 다 그럴 테니까. 우리에겐 작은 것도 감사하는 마음과, 내년 1월 1일이 있다.
물론 나도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여러 결심을 하며 새해를 맞을 준비를 했다. 며칠 후면 창업 10주년이 다가오는데 어떻게 사회적기업으로서 역할을 더 잘 할 수 있을까 고민해 본다. 내 주변의 예술가, 자영업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일들을 하고 싶고, 동시에 작은 우리 회사의 근무 환경부터 바꿔 나가고 싶다.
며칠 전 종무식 때는 호기롭게 내년부터 하루 7시간씩만 근무하자고 선언했다. 내가 직장생활을 할 때나 대표를 할 때나 8시간이라는 숫자 자체의 의미가 큰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7시간으로도 우리가 할 일을 잘 해낼 수 있는지 도전해 보기로 했다. 중요한 건 시간보다 마음이니까.
개인적으로는 집에서 처음으로 식물을 키워볼 마음이 들어 ‘히말라야 등불’이라는 식물도 데려왔다. 이게 바로 1월 1일 효과라고 할까. 앞으로 몇 번의 1월 1일을 더 맞게 될까, 이 날짜에 기대어 조금씩 과감한 결심과 시도를 해보며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페이스북 앱에서는 언젠가 지금 이 순간을 ‘과거의 오늘’이라며 보여줄 것이다. 조금쯤 새로워질 기회다.
정지연 에이컴퍼니 대표·아트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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