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 불 땐 과메기? 양미리·도루묵도 제철
숯불에 구우면 감칠맛 끝내줘
도루묵은 얼큰한 찌개도 별미
“동해안 사람들은 서쪽의 웅장한 산들 중턱에 단풍이 내려오는 10월 중하순이면 은근히 입맛을 다신다. 올해 양미리가 언제쯤 나올까 기다리는 것이다.”
속초 토박이 엄경선 작가의 『동쪽의 밥상』(온다프레스, 2020)에 나온 대로 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지 강원도 동해안은 양미리 바다가 된다. 올해는 다르다. 수온 상승 때문에 양미리 어획 시기가 늦어졌다. 겨울 한복판에 들어선 요즘에야 양미리 조업이 한창이다. 고성부터 삼척까지, 강원도 바닷가 어디 가나 양미리 말리는 풍경을 볼 수 있다. 양미리 곁에는 어김없이 도루묵도 함께 볕을 쬐고 있다. 기름진 양미리와 알 그득 밴 도루묵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시기다.
알배기 양미리, 지금 맛 절정
양미리 최대 산지는 속초와 강릉이다. 강원도 환동해본부에 따르면, 올겨울 들어 12월 22일까지 강릉은 453t, 속초는 478t의 양미리를 잡았다. 어획량은 감소 추세다. 1980~90년대에는 한 해 1만t 가까이 잡았는데 최근엔 강원도에서만 1000t 정도가 잡힌다.
저렴하게 양미리구이를 맛볼 수 있는 곳은 속초 동명동 오징어 난전이다. 그러나 사회적 거리두기가 2단계로 격상되면서 모두 문을 닫았다. 올겨울 양미리구이를 먹고 싶다면 동명항, 장사항 주변 생선구이 집이나 실내 포차를 찾는 게 낫다. 동명활어센타 앞에 줄지어 선 튀김집 중에도 양미리·도루묵구이를 파는 곳이 있다. 보통 1만원에 10마리를 준다.
12월 26일 속초항 ‘양미리 부두’를 찾았다. 11월부터 3월까지 쉴 새 없이 양미리 배가 드나드는 곳이다. 아낙들은 해종일 양미리를 그물에서 떼고, 사내들은 눈삽으로 양미리를 쓸어담았다. 잠깐 쉴 때는 군불 쬐며 양미리구이로 허기를 달랜다. 주름 깊게 팬 사내가 “지금부터 보름 정도가 알배기 양미리가 제일 맛있을 때”라고 말했다. 노란 알이 그득 밴 양미리를 한입 물었다. 숯 향 덧입혀진 살은 고소했고, 단단한 알은 감칠맛이 응축돼 있었다.
1월 말이면 알 질겨져
동명항 튀김집 ‘삼진호’에서 도루묵구이를 맛봤다. 살이 보들보들한 수놈도 먹을 만하지만 겨울 별미라면 역시 알 도루묵이다. 낫토처럼 점성 강한 알이 뭉쳐 있는데, 씹을 때마다 톡톡 터지는 식감과 고소한 향이 일품이다. 찌개나 조림으로 먹는 것보다 직화로 구우면 감칠맛이 훨씬 도드라진다. 알 도루묵도 철이 있다. 이중섭 삼진호 사장은 “조금만 더 추워지면 도루묵 알이 질겨져 못 먹는다”고 말했다.
어획량이 줄고 있는 양미리와 달리 도루묵잡이는 활황세다. 국립수산과학원이 2006년부터 개체 복원 작업을 벌인 결과 80년대 수준으로 어획량이 회복했다. 강원도와 경북 바다에서 한해 약 3000t이 잡힌다. 11~12월은 도루묵 산란 철이다. 먼바다에 살다가 해초 더미에 알을 낳기 위해 얕은 바다로 온다. 이따금 해초에 안착하지 못한 알이 해변으로 밀려와 백사장을 뒤덮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도루묵찌개도 빼놓을 수 없다. 영동지방 식당이나 술집 어디 가나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심지어 여름에도 알배기 도루묵찌개를 판다. 겨울에 잡은 걸 급랭해서 한 해 내내 먹는다. 그러나 제철 맛에 비할 순 없다. 강원외식저널 황영철 대표는 “1월 말이면 도루묵의 기름기가 빠져 국물 맛도 얕아진다”고 설명했다.
속초=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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