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준의 한의학 이야기] 참새와 쑥

최문갑 2020. 12. 31.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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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은 콩의 싹을 먹어 오두(烏頭)의 독을 해독하고, 참새들은 쑥의 잎을 물어다가 제비 둥지를 빼앗는다. 이렇게 동물들은 의서(醫書)를 본 적이 없음에도 약의 성질을 분별하나니, 이를 누가 가르쳐 주었는가."

이렇게 참새가 쑥을 가져다 둥지를 짓는 것도 해충으로부터 자신들의 새끼를 보호하기 위한 예방의학적 목적일지 모른다는 가설이 존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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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준(묵림한의원 원장, 대전충남생명의숲 운영위원)
▲박용준 원장
"豆苗鹿嚼解烏毒
艾葉雀銜奪燕巢
鳥獸不曾看木草
譜知藥性是誰敎"         唐代 白居易(772年-846年)

"사슴은 콩의 싹을 먹어 오두(烏頭)의 독을 해독하고, 참새들은 쑥의 잎을 물어다가 제비 둥지를 빼앗는다. 이렇게 동물들은 의서(醫書)를 본 적이 없음에도 약의 성질을 분별하나니, 이를 누가 가르쳐 주었는가."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가 지은 시의 일부이다. '독화살을 맞은 사슴은 콩의 싹을 먹어 해독하고, 참새는 제비가 쑥 냄새를 싫어함을 알기에 제비집에 쑥을 물어다가 제비를 떠나게 만들어 그 집을 취한다'는 내용이다. 실제로 외국 학술지에 실린 자료들을 보면 제비와 참새가 둥지를 놓고 영역 다툼을 벌이는 장면들이 소개되고 있다.  

그런데 정말 백거이의 시에서처럼 사슴과 참새가 약초의 효능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던 것일까? 

제비는 알을 낳아 새끼를 키울 둥지를 만들 때, 살균력을 지닌 자신의 타액이나 소화분비물, 그리고 황토 성분의 진흙 등을 이용한다. 이렇게 살균력이

강한 천역 성분으로 지어진 제비의 둥지는 전염병을 옮기는

파리나, 새끼들의 피를 빨아먹는 진드기, 모기 등의 해충들을 막는 역할을 한다.

이에 비해 참새는 작은 나뭇가지나 풀잎 등을 이용하여 둥지를 짓는데, 풀잎들 중에 쑥잎도 뜯어다가 둥지를 만든다. 이렇게 참새가 쑥을 가져다 둥지를 짓는 것도 해충으로부터 자신들의 새끼를 보호하기 위한 예방의학적 목적일지 모른다는 가설이 존재해왔다.

그런데 최근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에 발표된 연구에서, 참새가 둥지를 만드는데 쑥을 가져다 쓰는 것이 실제로 둥지에 기생하는 진드기를 퇴치하기 위한 일종의 예방의학적 행동이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참새가 둥지에 물어다 놓는 쑥의 특정 성분이 진드기 등으로부터 아기새들을 보호하여, 건강하게 자라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제비와 영역 다툼을 하는 참새(왼쪽)와 쑥을 물고 있는 참새. 사진출처: https://www.treeswallowprojects.com/spardam.html(왼쪽).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에 실린 내용을 보면, 중국의 어느 지역에 사는 섬참새(russet sparrows)는 쓴쑥(wormwood)을 둥지를 만들 때 섞어 쓴다. 섬참새가 둥지를 만드는 시기에,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도 용선제(龍船節)라는 축제를 연다.

이때 쓴쑥을 집 문에 걸어놓는 전통이 있다. 이는 쓴쑥이 병으로부터 자신들의 건강을 지켜준다는 믿음에 근거한 전통이다. ‘벌레(worm)를 다스리는 풀(wood)’라는 뜻을 가진 쓴쑥(wormwood)의 이름처럼 실제로 쓴쑥이 진드기 등의 기생충을 퇴치하는 효과가 있음이 이번 연구로 밝혀진 것이다. 

순하고 착한 외모로, 보면 볼수록 귀엽고 예쁜 우리나라 참새는 초가집의 처마 밑이나 기와집의 기왓장 사이 등에 알을 낳아 둥지를 튼다. 번식 때 둥지를 보면 향기가 강한 쑥을 물어다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쑥의 독특한 향기는 치네올(cineol)이라는 성분인데, 대장균과 디프테리아균을 억제하는 효능이 있다. 

강한 면역력과 살균력을 지닌 쑥을 뜻하는 한자 애(艾)는 풀초'(艸)밑에 ‘벤다’, ‘자른다’는 뜻을 지닌 예(乂)로 이루어진 글자이다. ‘병을 베서 다스린다’는 의미가 있다. 살균 효과를 지닌 지혈작용도 있어 상처에 약쑥을 찌어 붙여 사용하며 쑥을 태워 모깃불을 지펴 해충을 막는데 사용해 왔다.

쑥국을 끓이면 다른 채소로 끓인 국에 비해, 잘 변하지 않기에 우리 선조들은 쑥에는 살균력과 항균력이 있음을 알고 이를 이용해왔다. 각종 배앓이 증상들, 특히 세균성 이질에 쑥국으로 영양을 공급하면서 치료 효과를 누려왔다. 쑥은 초여름 이전의 부드러운 잎만 식용으로 사용하고, 그 이후엔 채취하여 말려서 약재로 이용해왔다. ‘초여름 이후엔 독성이 강해지니 먹지 말라’는 말이 있는데 이 독성이 곧 강한 살균, 살충력을 의미한다.

또한, 공동으로 관리하는 우물을 청소할 때 우물 안에다 쑥을 태워 연기를 오랫동안 피우기도 하였는데 이 또한 쑥의 살충력과 살균력을 이용한 것이었다. 새로 지은 집이나 오랫동안 비워놓았던 집에 새로 사람이 거주하려고 할 때는 방과 부엌, 집의 그늘진 귀퉁이에 말린 쑥을 태워 그 연기로 살균과 소독을 겸하는 예방의학의 위생적 목적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작은 참새도 이렇게 둥지를 지을 때 쑥을 물어와 새집을 단장하여 새끼들의 건강을 지켜내듯이, 우리도 집과 사무실 등 우리들의 공간을 깨끗이 청소하고 잘 정리하며, 더 건강하고 밝은 분위기의 새해를 맞이해보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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