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없는 자취생, 이번 연말은 '너'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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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누리 기자]
▲ 보드게임 |
ⓒ Nintendo Switch |
51가지 보드게임을 샀다. 정확히 말하면 51가지 보드게임을 할 수 있는 디지털 게임팩을 샀다. 코로나로 인해 홀로 연말을 보내야 하는 자취생의 선택이었다.
학생일 때는 화려한 이펙트가 나오는 온라인 액션 게임을 많이 했다. 하지만 성인이 되면서 게임을 멀리 하게 되었다. 직장인이 되니 힘이 부치기도 하고, 캐릭터의 역동적인 움직임에 눈이 금방 피로했다. 부모님께 취미 삼아 할 만한 귀여운 게임을 보여드렸을 때, 복잡하다며 손을 절레절레 흔들던 것이 생각났다. 게임도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닫았다.
▲ 만칼라 |
ⓒ 닌텐도 스위치 |
누구 한 쪽의 칸들이 모두 비워지면 차지한 구슬의 개수를 세서 많이 가져간 쪽이 승리한다. 구슬을 이동시키는 것이 전부인 단순한 게임이지만, 1수, 2수 앞을 미리 내다보지 않으면 한순간에 역전될 수 있어 집중해야 한다. 고대 아프리카 일부 부족들이 이 게임으로 족장을 뽑았다고 한다.
▲ 도트앤박스 |
ⓒ 스위치 |
도트 앤 박스(Dots and Boxes)도 자꾸 손이 가는 게임이다. 학생 때 이미 수도 없이 해 본 게임이었다. 수능을 치고 난 고3 2학기, 가장 한가하다는 시기에 교실은 조용했다. 학생의 반은 담요를 뒤집어쓰고 잠을 자기 바빴다.
심심했던 찰나, 친구와 눈이 마주쳤다. 우리는 펜을 들고 종이에 점을 여기저기 찍었다. 그리곤 번갈아 가며 선을 그려 삼각형을 많이 만드는 대결을 했다. 그러다가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펜과 종이를 버리고 급식실로 질주했다.
그 단순한 게임이 이 게임팩에 들어 있었다. 심지어 그때는 우리가 발명했다 생각했는데, 발명가는 따로 있었다. 19세기 프랑스 수학자 에두아르 뤼카다. 원래 이 게임은 삼각형이 아닌 사각형을 그리는 게임이다.
번갈아 가며 직선을 그려 정사각형을 많이 만든 사람이 우승이라는 단순한 게임이지만, 오묘한 수학적 법칙이 들어 있다. 격자가 상자 고리로 채워졌을 때, 더블크로스 개수 합에 격자의 점 개수를 더한 값을 알면 승패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조금의 법칙만 알면, 무조건 이길 수 있는 패턴이 있다는 얘기다.
▲ 보드게임 |
ⓒ 정누리 |
보드게임은 마치 인생의 축소판 같다. 당장 부루마불처럼 게임머니가 오고 가는 게임도 그렇고, 장기와 체스처럼 전쟁의 역사를 담아 놓은 게임도 있다. 더 단순하게 들어가자면, 어릴 때 나뭇가지 하나를 모래 성에 꽂고 나뭇가지가 쓰러지기 전까지 모래를 뺏아가는 게임도 그렇다. 처음엔 과감하게 모래를 확보하다가, 위기 상황이 닥치면 너도나도 신중하게 적은 자원을 최대한 긁어낸다. 나뭇가지가 쓰러지면 한쪽은 탄식하고, 한쪽은 환호한다.
게임만큼 단순하고 솔직한 것이 있을까. 삶도 때로는 게임처럼 과감하게 주사위를 던질 필요가 있다. 어차피 전진만 하는 말은 없기 때문이다.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며 긴장감을 느끼는 것도, 삶의 묘미가 아닐까.
부모님께 보드게임 하는 모습을 사진 찍어 보냈더니, 웬일로 관심을 보이셨다. 저거라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아, 엄마아빠는 게임을 싫어하는 게 아니었다. 할 수 있는 게임을 찾지 못한 것이었다. 코로나가 끝나면 부모님과 보드게임부터 한번 해야겠다. 영원하라, 클래식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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