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겹지만 질기게 코로나 봉쇄 우한 민낯 추적

김현길 2020. 12. 31.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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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우한일기 / 팡팡 지음, 조유리 옮김 / 문학동네, 444쪽, 1만6500원
‘우한일기’의 저자 팡팡(65·본명 왕팡)은 코로나19로 봉쇄된 중국 우한의 실상을 글을 통해 세상에 알린다. 당국의 삭제와 차단이 이어지고, ‘매국노’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60일 동안 꿋꿋하게 글을 이어간다. 60일간 그의 일기를 묶은 우한일기는 한국을 비롯해 미국, 독일 등 15개국에 판권이 팔렸으나 정작 중국에선 출판되지 못했다. 영국 BBC는 ‘2020년 여성 100인’에 정은경 질병관리청장과 함께 팡팡을 포함시켰다. 큰 사진은 봉쇄 나흘째이자 춘절 연휴 기간인 2020년 1월 26일 중국 우한 시내 모습. 신화뉴시스


“‘사람 간에는 전염되지 않는다. 막을 수 있고 통제 가능하다(人不傳人 可控可防)’ 이 여덟 글자가 도시를 피와 눈물로 적셨다. 끝없는 비통함과 슬픔으로 바꿔놓았다.”

문학동네 제공


중국 소설가 팡팡(사진)이 우한에서 코로나19 초기 대응에 실패한 이유로 주목한 것은 믿음이다. 공무원들이 사람 목숨과 관련된 사안을 무책임하게 처리하지 않을 거란 믿음, 수천수만 인민의 생명에 영향을 미치는 일을 정치적으로 판단하고 음모로 몰아가지 않을 거란 믿음, 상식을 무시하지 않고 판단 능력이 그렇게 떨어지지 않을 거란 믿음 말이다.

책 ‘우한일기’는 믿음의 둑이 터져 버린 뒤 맞닥뜨린 참혹한 재난 현장에 대한 기록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인간 사회로 빠르게 전염된 후 봉쇄된 우한에서의 60일을 담았다. 책의 저자이자 루쉰문학상 수상자인 팡팡은 우한 봉쇄 사흘째인 2020년 1월 25일부터 봉쇄 해제일(4월 8일)을 발표한 같은 해 3월 24일까지 단 하루의 공백 없이 온라인에 글을 썼다.


먼저 저자의 성실함과 함께 두드러지는 것은 뾰족함이다. 저자는 사태 초기 새로운 바이러스가 퍼지는 상황을 뭉개고 20여일이나 대응이 늦어진 것에 대한 진실 규명, 관련 책임자들에 대한 처벌을 집요하게 요구한다. “전염병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온 것은 분명 여러 권력이 힘을 합친 결과”라는 말처럼 비판 대상도 정부 공직자는 물론이고 의료전문가, 기자 및 언론, 동료 작가를 가리지 않는다.

일례로 진상조사를 위해 우한에 파견됐던 전문가들에 대해 “천벌을 받을 만큼 큰 죄를 범했다”고 비판한다. 두 번째 전문가 지원팀에 속했던 왕광파에 대해선 실명으로 거듭 목소리를 높인다. 저자는 그가 사태 초기 ‘코로나19가 퍼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가 처벌 받은 의사 리원량과 함께 코로나19 예방 표창 수상자로 결정되자 “리원량이 지하에서 이 소식을 듣는다면 울까, 웃을까?”라며 어이없어 한다.

저자의 날선 비판은 검열이라는 또 다른 벽에 부딪힌다. 웨이보, 위챗 등에 올린 글은 자주 삭제되거나 차단된다. “오늘 이 글 역시 삭제될까?”처럼 일기 곳곳에서 검열에 대한 우려가 묻어난다. 이에 대한 저자의 감정은 분노와 무력감이 뒤섞여 절절하다. “친애하는 인터넷 검열관들이여, 어떤 말들은 그냥 우한 사람들이라면 할 수 있도록 내버려달라. 말을 뱉어야 조금이나마 견딜 수 있지 않겠나.” “어제 위챗으로 올린 글이 또 삭제되었다. 어쩔 수 없는 와중에 정말 어찌할 방법이 없다. ‘우한일기’를 이제 어디다 올려야 하나, 안개가 자욱한 강 위에서 시름에 잠긴다. 생각하고 깨닫고 기록하는 게, 그게 진정 잘못이란 말인가?”

각종 검열에도 저자는 후배의 계정으로 글을 올리는 등 우회로를 택해 연재를 이어간다. ‘매국노’라는 인터넷상에서의 비판 역시 글을 멈추게 하지 못했다. ‘글 쓰는 이의 사명’과 함께 독자들의 호응이 컸기 때문이다. “우리 마음의 산소호흡기”라는 어느 독자의 평가처럼 그의 글은 독자들의 숨통을 틔워주고, 독자들로부터 생명력도 얻었다. 위챗에 본인 및 후배 작가의 계정으로도 글을 올릴 수 없게 된 어느 날 글을 살린 것은 독자들이었다. 여러 노력에도 글이 올라가지 않거나 차단되자 후배 작가는 “최선을 다했어”라는 글만 남겼다. 그러자 독자들이 댓글 창에 그날의 일기를 한 단락씩 복원시켜 전문을 완성했다. 저자는 “너무나 놀랐고, 또 마음이 따뜻해졌다”라고 적었다.

봉쇄된 도시에서 꿋꿋이 삶을 이어가려는 인간의 가없는 노력 역시 글 곳곳에 담겨 있다. “전쟁 혹은 재난이 일어나면 인간의 본성에 내재한 거대한 선과 악이 전부 드러난다”는 저자의 말처럼 참혹한 일상이 펼쳐지는 와중에도 “위대한 선”을 행하는 이들은 어김없이 있었다. 인적이 끊긴 도시의 바닥을 묵묵히 쓸던 환경미화원, “우리가 여기서 버티고 있어야 당신들도 버틸 수 있잖아요”라고 무심히 말하는 상인은 일상의 굳건함을 표상한다. 황급히 봉쇄돼 ‘밑 빠진 독’ 같았던 도시의 깨진 부분을 메워준 자원봉사자들의 노력도 컸다. 이들은 의료진들을 위해 다른 성에서 날아와 도시락을 만들거나 봉쇄 첫날부터 도시 곳곳에 채소를 옮겨주거나 노인들을 위해 음식을 배달했다.

책은 바이러스와 정부에 의해 이중으로 봉쇄된 저자의 생존기이면서 생생한 관찰기다. “이번 역병의 재난에서 가장 독특하고 세밀한 기억이자 문학”이라는 중국 소설가 옌렌커의 말처럼 재난의 한가운데를 현장감 있게 전달한다. 최근 확진자가 급증한 국내에 시사하는 점 역시 적지 않다. 그중 저자의 다음 문장은 바이러스 종식 선언까지 우리가 곱씹어야 할 말처럼 들린다. “적은 바이러스뿐만이 아니다. 우리들 역시 스스로의 적 혹은 공범자이다. 사람들은 지금에서야 절실하게 깨달았다고 말한다. 매일 말로만 ‘대단하다. 우리나라’라고 떠들어 대봤자 아무 의미 없다는 것을…상식이 부족하고 객관성과 정확성이 결여된 사회는 말로만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사람을, 심지어 수많은 사람을 죽인다는 사실을 말이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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