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그 분은 밤의 총리"..예상 엎고 비서실장 된 유영민

김효성 2020. 12. 31. 17:3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17년 10월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유영민 당시 과기부 장관이 서울 상암동 에스플렉스센터에서 열린 4차산업혁명위원회 출범식에 앞서 인공지능 로봇인 '뽀로롯'과 얘기를 나누며 웃고 있다. 연합뉴스

“유영민 비서실장에게 (내가) 붙인 별명이 밤의 총리다. 국무위원들 사이에 삼삼오오, 그리고 전체 모임 등을 그분이 자주 주선했다. 연장자이기도 하지만 그런 일을 잘 하신다.”

이낙연 더불민주당 대표가 유영민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 발표 직후 주변에 한 이야기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대단히 유능한 분이고요. 친화력이나 일을 해결해가는 능력이 굉장히 시원시원하신 분”이라고 부연했다고 한다.

지난 30일 밤 차기 비서실장으로 유력하다는 보도가 나오기 직전까지도 유 실장은 정책실장 카드로 우선 거론됐다. LG CNS와 포스코 경영연구소 등을 거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2017년 7월~지난해 9월)을 역임한 그의 이력이 정무보단 정책과 가깝게 보여서다.

유 실장 본인도 주변에 차기 정책실장 임명 가능성은 부인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청와대의 발표 이전에도 일부 여권 핵심인사의 입에서 “비서실장이면 몰라도 절대 정책실장은 아니다”는 말이 나온 것도 유 실장 특유의 친화력 때문이다.

민주당 내에서도 문재인 정부의 장관을 지낸 인사들은 모두 그의 친화력을 기억했다. 문재인 정부 첫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낸 김영춘 전 의원은 “장관 재임 시절 유 실장에게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한번 봅시다’라는 연락이 왔다”며 “그렇게 모인 국무위원들이 술 한잔하면서 친분도 쌓고 대·소사도 논의했다”고 말했다. 유 실장이 간사 역할을 맡은 문재인 정부 1기 내각 모임은 각자 퇴임한 후에도 분기마다 한 번씩 열려 지난 6월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장관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과의 모임도 자주 만들었다고 한다. 이 자리를 목격한 한 여권 보좌진은 “유 실장이 ‘나 장관 할 때 좀 도와주지 그랬어’라며 손아래 의원들에게 반말로 우스갯소리를 하며 분위기를 띄우더라”고 말했다.

31일 직에서 물러나는 노영민 비서실장(왼쪽)과 신임 유영민 비서실장이 서로 어깨를 껴안채 인사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 대통령의 거리 언제 좁혔나
정치권의 의문은 유 실장이 어떤 계기로 대통령과의 거리를 그렇게 가깝게 좁혔느냐다. 민주당 내엔 “불편한 사람을 비서실장에 앉히겠느냐.아주 편한 사이일 것”(청와대 출신 초선 의원)이란 말이 나왔지만 계기가 된 사건과 시점을 정확히 아는 이가 많지 않다.

정가에서 주목했던 건 유 실장의 LG전자 시절이다. 상무였던 2002년 7월 새천년민주당(민주당 전신) 대선 후보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남 노건호씨가 LG전자에 공채 입사하게 되자 유 실장은 ‘유명 정치인 자녀는 피한다’는 회사 관례에 따라 건호씨 지원 사실을 윗선에 보고했다고 한다. 유 실장은 주변에 “당시 ‘노무현은 아직 거물급은 아니다’라는 윗선의 판단에 따라 건호씨 입사가 확정됐다”고 말했다고 한다. 유 실장이 2017년 과기부 장관 후보로 지명되자 당시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은 “LG 내에서 대통령 아들 잘 챙겨 승승장구한다는 입소문이 자자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 출신의 한 여권 인사는 “사석에서 유 실장 본인이 ‘LG전자에서 건호씨를 데리고 있었는데 각별히 신경을 많이 썼다’고 말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작년 8월 국무회의 전 참모진과 대화하고 있다. 왼쪽 둘째부터 유영민 당시 과기부 장관, 문 대통령, 이낙연 당시 국무총리, 유은혜 사회부총리. 연합뉴스

유 실장과 당시 민정수석이던 문재인 대통령과 처음 친밀감을 쌓기 시작한 때도 이때라는 게 정치권의 관측이다. 그러나 또 다른 노무현 정부 청와대 출신 여권 인사는 “대통령 가족 및 친인척 관리는 민정수석의 업무 중 하나였고 그때 유 실장과 문 대통령의 관계는 다분히 업무적 차원이었다”며 “본격적으로 가까워진 건 2017년 대선 때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친문 성향의 한 재선 의원도 “대선 당시 문 대통령이 유 실장을 각별히 챙겼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민주당 대표 시절이던 2016년 4월 20대 총선을 앞두고 유 실장을 영입해 부산 해운대갑에 공천했다. 11번째 인재영입 대상이었다. 당시 유 실장의 선거운동을 도운 민주당의 보좌관은 “유 실장이 동래고 출신이라 당에선 부산 동래 출마를 권했지만, 동문과의 경쟁은 피하고 싶다며 표밭이 안 좋은 해운대갑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유 실장은 같은 지역구에서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에게 두번 연달아 패했다. “두번째 출마를 권한 것도 문 대통령이었다”는 게 친문 3선 의원의 전언이다.

올해 1월 민주당 소재부품장비인력발전특별위원장을 맡았던 유영민 전 과기부 장관(가운데)이 정세균 국무총리, 이해찬 민주당 대표와 함께 의원회관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20대 총선 낙선 직후인 2016년 9월 유 실장은 추미애 당 대표 체제에서 온·오프 네트워크정당 위원장으로 발탁돼 100만명 온라인 권리당원 모집 캠페인을 주도했다. 온라인 권리당원은 문 대통령 경선 승리의 핵심 기반이 됐다. 또 지금은 임기말까지도 당·청 일체의 분위기를 유지하는 환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유 실장과 함께 1기 내각에 참여했던 한 민주당 인사는 “유 실장이 겉으로는 부드러워 보여도 상당한 원칙주의자”라는 평가를 내놓았다. 이 인사는 “장관 재임 당시 청와대에서 자리를 옮겨 ‘실세 차관’으로 불리던 문미옥 전 과기부 제1차관이 인사에 많은 의견을 내자 ‘당신이 장관하시오’라며 경고를 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한 일화”라며 “이런 면모도 유 실장이 문 대통령과 이 대표의 신뢰를 얻은 이유였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부산 친문 사이선 존재감 미미
유 실장 임명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건 문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부산 지역의 민주당 인사들이다. 민주당 내 부산 지역구 의원들과 부산 기반의 친문그룹은 유 실장 내정 직전까지 이호철 전 민정수석을 마지막 비서실장으로 천거했지만 결국 문 대통령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부산 출신의 여권 핵심 인사는 “걱정이 태산”이라고 말했다. 정계 입문 5년차인 유 실장이 과연 퇴임까지 계속될 정치공세를 방어하고 주변 관리를 책임질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고 했다. 이 인사는 “유 실장은 동래고-부산대 출신이긴 하지만 부산에 남긴 족적이 없다”며 “4월 보선을 위한 분위기 반전 효과도 기대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부산 지역 의원들은 말을 극히 아끼고 있다. PK 지역의 한 의원은 “갑자기 나타난 분이라 잘 모른다”고만 말했다. 부산 지역의 전직 의원에게선 “중도 성향에 합리적인 분이고 친화력도 있어서 관리형으론 적합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심새롬·김효성 기자 kim.hyoseong@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