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그 분은 밤의 총리"..예상 엎고 비서실장 된 유영민
“유영민 비서실장에게 (내가) 붙인 별명이 밤의 총리다. 국무위원들 사이에 삼삼오오, 그리고 전체 모임 등을 그분이 자주 주선했다. 연장자이기도 하지만 그런 일을 잘 하신다.”
이낙연 더불민주당 대표가 유영민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 발표 직후 주변에 한 이야기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대단히 유능한 분이고요. 친화력이나 일을 해결해가는 능력이 굉장히 시원시원하신 분”이라고 부연했다고 한다.
지난 30일 밤 차기 비서실장으로 유력하다는 보도가 나오기 직전까지도 유 실장은 정책실장 카드로 우선 거론됐다. LG CNS와 포스코 경영연구소 등을 거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2017년 7월~지난해 9월)을 역임한 그의 이력이 정무보단 정책과 가깝게 보여서다.
유 실장 본인도 주변에 차기 정책실장 임명 가능성은 부인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청와대의 발표 이전에도 일부 여권 핵심인사의 입에서 “비서실장이면 몰라도 절대 정책실장은 아니다”는 말이 나온 것도 유 실장 특유의 친화력 때문이다.
민주당 내에서도 문재인 정부의 장관을 지낸 인사들은 모두 그의 친화력을 기억했다. 문재인 정부 첫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낸 김영춘 전 의원은 “장관 재임 시절 유 실장에게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한번 봅시다’라는 연락이 왔다”며 “그렇게 모인 국무위원들이 술 한잔하면서 친분도 쌓고 대·소사도 논의했다”고 말했다. 유 실장이 간사 역할을 맡은 문재인 정부 1기 내각 모임은 각자 퇴임한 후에도 분기마다 한 번씩 열려 지난 6월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장관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과의 모임도 자주 만들었다고 한다. 이 자리를 목격한 한 여권 보좌진은 “유 실장이 ‘나 장관 할 때 좀 도와주지 그랬어’라며 손아래 의원들에게 반말로 우스갯소리를 하며 분위기를 띄우더라”고 말했다.
━
문 대통령의 거리 언제 좁혔나
정치권의 의문은 유 실장이 어떤 계기로 대통령과의 거리를 그렇게 가깝게 좁혔느냐다. 민주당 내엔 “불편한 사람을 비서실장에 앉히겠느냐.아주 편한 사이일 것”(청와대 출신 초선 의원)이란 말이 나왔지만 계기가 된 사건과 시점을 정확히 아는 이가 많지 않다.
정가에서 주목했던 건 유 실장의 LG전자 시절이다. 상무였던 2002년 7월 새천년민주당(민주당 전신) 대선 후보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남 노건호씨가 LG전자에 공채 입사하게 되자 유 실장은 ‘유명 정치인 자녀는 피한다’는 회사 관례에 따라 건호씨 지원 사실을 윗선에 보고했다고 한다. 유 실장은 주변에 “당시 ‘노무현은 아직 거물급은 아니다’라는 윗선의 판단에 따라 건호씨 입사가 확정됐다”고 말했다고 한다. 유 실장이 2017년 과기부 장관 후보로 지명되자 당시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은 “LG 내에서 대통령 아들 잘 챙겨 승승장구한다는 입소문이 자자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 출신의 한 여권 인사는 “사석에서 유 실장 본인이 ‘LG전자에서 건호씨를 데리고 있었는데 각별히 신경을 많이 썼다’고 말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유 실장과 당시 민정수석이던 문재인 대통령과 처음 친밀감을 쌓기 시작한 때도 이때라는 게 정치권의 관측이다. 그러나 또 다른 노무현 정부 청와대 출신 여권 인사는 “대통령 가족 및 친인척 관리는 민정수석의 업무 중 하나였고 그때 유 실장과 문 대통령의 관계는 다분히 업무적 차원이었다”며 “본격적으로 가까워진 건 2017년 대선 때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친문 성향의 한 재선 의원도 “대선 당시 문 대통령이 유 실장을 각별히 챙겼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민주당 대표 시절이던 2016년 4월 20대 총선을 앞두고 유 실장을 영입해 부산 해운대갑에 공천했다. 11번째 인재영입 대상이었다. 당시 유 실장의 선거운동을 도운 민주당의 보좌관은 “유 실장이 동래고 출신이라 당에선 부산 동래 출마를 권했지만, 동문과의 경쟁은 피하고 싶다며 표밭이 안 좋은 해운대갑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유 실장은 같은 지역구에서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에게 두번 연달아 패했다. “두번째 출마를 권한 것도 문 대통령이었다”는 게 친문 3선 의원의 전언이다.
20대 총선 낙선 직후인 2016년 9월 유 실장은 추미애 당 대표 체제에서 온·오프 네트워크정당 위원장으로 발탁돼 100만명 온라인 권리당원 모집 캠페인을 주도했다. 온라인 권리당원은 문 대통령 경선 승리의 핵심 기반이 됐다. 또 지금은 임기말까지도 당·청 일체의 분위기를 유지하는 환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유 실장과 함께 1기 내각에 참여했던 한 민주당 인사는 “유 실장이 겉으로는 부드러워 보여도 상당한 원칙주의자”라는 평가를 내놓았다. 이 인사는 “장관 재임 당시 청와대에서 자리를 옮겨 ‘실세 차관’으로 불리던 문미옥 전 과기부 제1차관이 인사에 많은 의견을 내자 ‘당신이 장관하시오’라며 경고를 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한 일화”라며 “이런 면모도 유 실장이 문 대통령과 이 대표의 신뢰를 얻은 이유였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부산 친문 사이선 존재감 미미
유 실장 임명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건 문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부산 지역의 민주당 인사들이다. 민주당 내 부산 지역구 의원들과 부산 기반의 친문그룹은 유 실장 내정 직전까지 이호철 전 민정수석을 마지막 비서실장으로 천거했지만 결국 문 대통령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부산 출신의 여권 핵심 인사는 “걱정이 태산”이라고 말했다. 정계 입문 5년차인 유 실장이 과연 퇴임까지 계속될 정치공세를 방어하고 주변 관리를 책임질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고 했다. 이 인사는 “유 실장은 동래고-부산대 출신이긴 하지만 부산에 남긴 족적이 없다”며 “4월 보선을 위한 분위기 반전 효과도 기대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부산 지역 의원들은 말을 극히 아끼고 있다. PK 지역의 한 의원은 “갑자기 나타난 분이라 잘 모른다”고만 말했다. 부산 지역의 전직 의원에게선 “중도 성향에 합리적인 분이고 친화력도 있어서 관리형으론 적합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심새롬·김효성 기자 kim.hyoseong@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박범계가 형형 거린 이유" 수사관이 쓴 윤석열 실체
- 코로나 투병 교수 "완치는 없다"···그가 겪은 5가지 후유증
- "동기가 뭔가" 체코도 물었다...'대북전단법' 비판 세계로 확산
- 서울시장 가상대결...안철수 42.1% 박영선 36.8% [조원C&I]
- 배우 곽진영 극단 선택 시도...20년째 악성댓글 고통 호소
- 문 대통령 부정평가 59.8% 또 최고치 경신···진보·호남서 등돌렸다
- 나도 그 한국 성인 35%일까···열고개로 체크하는 ‘코로나 블루’
- 삼풍·성수대교 참사 때 떴던 소방헬기, 문화재 된다
- [단독] 요양병원의 숨은 비극...비확진자가 더 많이 숨졌다
- [단독] 노영민 후임 부상 유영민, 지난주 청와대 들어가 문 대통령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