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산책] 브런치·커피가 있는 생활밀착형 동네 슈퍼

임주형 2020. 12. 31.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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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용품 편집숍 목표 2014년 탄생
입소문 타고 이태원 단지 앞 2호점
식당+슈퍼마켓+베이커리 공존
동네사람들 필요한 부분 채워줘
일회용쓰레기 줄이는 방법 고민
텀블러·반찬통 사용땐 일정액 반환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앞 보마켓 2호점 / 사진=임주형 기자 @skepped

[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슈퍼마켓(supermarket)'은 원래 거대한 할인매장을 뜻하는 영단어다. 한국 최초의 슈퍼마켓으로는 1968년 서울 서대문구에 설립된 '뉴서울슈퍼마키트'가 꼽힌다. 지하ㆍ지상을 합쳐 총 12층 규모의 매장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국내에서는 슈퍼마켓이 다른 의미로 변질됐다. 아파트 단지나 주택가의 한 구석을 차지한 작은 상점에 슈퍼마켓이라는 명칭이 붙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 같은 상점들을 '슈퍼'라고 부른다.

주택가 인근이면 어김없이 한두 곳이 눈에 띌 정도로 슈퍼는 한국인의 삶에 가장 밀착한 공간 중 하나가 됐다. 집에서 50~100걸음 사이에 지어진 경우가 많고, 각종 생활용품부터 식재료, 레토르트식품에 이르기까지 일상생활에 필요한 제품을 취급한다. 그야말로 ‘생활밀착형 공간’인 셈이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 주공아파트 단지 앞에 자리 잡은 '보마켓'은 생활밀착형 편집숍이 되겠다는 목표를 품고 2014년 탄생했다. 한남동 남산맨션의 작은 상점이던 존재가 이제는 이태원에 2호점을 내며 종합 가정용품 슈퍼마켓으로 각인될 정도로 성장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자주 인증 사진 대상이 되는 독특한 판매공간이다.

유보라 대표가 이런 보마켓을 설립한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자동차 사용자경험(UX) 디자이너로 일하던 그는 ‘집 바깥으로 차를 몰고 나가지 않아도 생활용품을 구할 수 있는 환경이 됐으면 좋겠다’라는 생각 끝에 보마켓 1호점을 냈다고 한다. 영업 경험이 쌓이고 사람들의 다양한 욕구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면서는 생활용품 외에도 이색적인 제품을 들여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보마켓에서 판매하는 울, 비누 등 친환경 제품 / 사진=임주형 기자 @skepped

유 대표는 "어렸을 때 부모님과 가끔 '미제 마켓'에 들렀다"며 "미국에서 들여온 제품을 판매하는 슈퍼마켓이었는데, 항상 그곳에 있는 제품에서 나는 냄새나 빛깔 등에 끌리곤 했다. 최초의 보마켓은 그때의 추억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유 대표가 직접 고른 독특한 가정용품과 식재료 덕분에 보마켓은 금세 입소문을 타며 성장했고 이태원 주공아파트 단지 앞에 2호점을 세우게 됐다. 2호점은 상점의 성격이 강한 1호점과 달리 '복합적인 생활공간'을 추구한다. 유 대표가 아파트 인근 공터에 있던 창고를 개조해 만든 상점 안에는 브런치ㆍ커피를 파는 식당, 슈퍼마켓, 베이커리 등이 공존한다. 순전히 지역 주민들에게 필요한 부분을 채워주면서 성장해왔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예를 들어 해당 아파트 인근에는 반려견을 산책시키는 견주가 적지 않다. 그래서 만든 것이 견주가 산책을 하다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다. 반려견을 위한 펫푸드를 갖추게 된 사연이기도 하다. 이런 방식으로 점차 취급 품목을 확대하다 보니 보마켓은 어느새 다양한 필요를 충족하러 온 손님들이 한데 어우러져 북적거리는 공간이 됐다.

유 대표는 "슈퍼마켓이라고 하면 보통 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을 취급하는 상점이라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라면서도 "내가 생각하는 생활밀착형 편집숍은 그중에서도 사람의 삶을 여유롭고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슈퍼마켓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유 대표는 사람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요소로 세 가지 기준을 들었다. 그는 "우선 실제로 삶에 유용해야 하고, 둘째로 미학적으로 아름다워야 하며, 마지막으로 의미가 있어야 한다"며 "이 기준을 통해 물건을 엄선해 판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유보라 보마켓 대표가 직접 엄선한 해외 생활용품, 와인 등이 진열돼 있다. / 사진=임주형 기자 @skepped

유 대표가 현재 가장 공 들이는 부분은 '의미'에 관한 부분이다. 특히 유 대표는 환경 친화적인 사업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가장 '의미 있는' 행동이라고 본다. 그는 "최근 영업을 하면서 가장 고민이 되는 점은 플라스틱 등 일회용 쓰레기가 많이 나온다는 것"이라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로 우리 업체도 배달 서비스를 추진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일회용 쓰레기 배출량이 더욱 늘어날 것 같아 줄이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일환으로 텀블러·반찬통 등을 가져와 업체 내 포장 쓰레기를 줄여주는 고객에게 금액 일부를 돌려주거나 플라스틱 제품 일부를 종이로 대체하는 등 작은 부분부터 차근차근 실현해나가고 있다. 유 대표는 "사실 저희처럼 작은 업체 입장에서 500원, 1000원 등을 돌려주는 것도 결코 사소한 비용은 아니다"면서도 "먼저 어떤 사업체가 될 것인지 확고한 의미를 세우고 나아가야 미래가 더 지속 가능할 것 같다"고 굳은 의지를 보였다.

앞으로 어떤 정체성을 가진 공간으로 성장시킬 것인지 궁금해졌다. 유 대표는 "보마켓은 열렬히 응원하고 사랑해주는 지역 주민들 덕분에 성장할 수 있었다"며 이내 '지역과의 상생'을 강조했다. 그는 "동네 주변의 다른 슈퍼마켓과 경쟁할 생각이 없어 일부러 일반 슈퍼마켓과 겹치는 물품은 들여놓지 않고 있다"면서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기보다는 주위에 거주하는 분들에게 의미 있는 공간으로서 지속 가능하도록 유지하는 것이 지금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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