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미 "나도 코로나 블루..하지만 작은 빛이라도 밝혀야"

김호정 2020. 12. 31.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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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라노 조수미의 새해 희망 담은 인터뷰
"가까이에서 코로나19를 겪었다"는 소프라노 조수미는 "멈춰있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이탈리아의 코로나19 확진자는 하루 1만명 이상. 사망률은 3%를 웃돈다. 30년 넘게 로마에 거주하고 있는 소프라노 조수미는 29일 전화 인터뷰에서 “여기 상황은 말도 못한다. 한국하고도 단위가 다르고 정말 겁이 난다”고 했다. “관을 둘 곳이 부족해져서 트럭에 잔뜩 싣고 밤에 이동하더라고요. 가슴이 아프면서 불안하고….”

코로나, 그리고 죽음은 그의 가까이에 있다. “크리스마스 즈음에 노래 부르는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리려고 했는데, 연습 첫날 피아니스트한테 전화가 왔어요. 코로나에 감염됐다고. 6월에 온라인 콘서트를 같이 했던 연주자 중에도 코로나 감염이 나왔고요. 친한 친구들도 부모님을 잃고….” 5월엔 친구의 죽음을 맞이했다. “정말 친한 친구가 코로나로 떠났을 때… 그때 내 상태가 정말 심각했어요. 특히 장례식에 참석한 이후로 아무 것도 못했어요.”

눈 앞에 비극적 상황이 이어졌지만, 조수미는 한 해동안 계속 노래했다. 4월엔 집에서 피아노 치며 아베마리아를 부르는 동영상을 공개하며“의료진을 응원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6월 로마 산타체칠리아 음악원에서 이무지치 실내악단과 함께 노래하는 작은 콘서트를 열어 공개했다. 7월엔 세상을 떠난 친구를 위해 새로운 곡을 만들어 불렀다. 노래 제목은 ‘삶은 기적(Life Is a Miracle)’. 숨진 친구의 아들인 페데리코 파치오티를 비롯해 참여한 연주자들이 각자의 공간에서 녹음했다. 12월에는 크리스마스 캐롤 메들리를 유튜브에 올려 사람들을 위로했다. 코로나19에 감염된 피아니스트 대신 조수미가 직접 피아노를 연주했다.

조수미가 3월 유튜브에 올린 '아베마리아' 영상. 중앙일보 독자를 위해 제공했다. [유튜브 캡처]


“내 성격 어떤지 알잖아요. 그래도 해야지. 뭐라도 해야죠.” 그는 “누가 하자고 해서 한 일은 없었다. 세상은 멈췄지만 우리도 멈춰있을 수는 없다”고 했다. 조수미가 팬데믹을 거쳐온 이야기, 발견한 희망에 대해 들었다.

Q : 코로나19를 가까이에서 본 것 같습니다.
A : “나라고 코로나 블루가 없는 건 아니에요. 불안, 스트레스, 우울증이 있어요. 근데 음악이 나를 살렸어요. 엄청 살렸어요. 근데 참 희한하죠. 이럴 때 혼자 피아노 치고, 프로듀싱도 하고 뭔가 만들어낼 수 있는 성악가가 많지는 않을텐데요. 어렸을 때 엄마가 하도 강요해서 하루 8시간씩 피아노 쳤던 게 이번에 도움이 된 거에요.”

Q : 음악이 어떻게 살리던가요.
A : “아주 중요한 문제에요. 음악을 딱 들으면 그 시대, 사회, 역사가 들리잖아요. 클래식 음악만 그런 건 아니에요. BTS, 블랙핑크도 저는 공부하면서 들어요. 현실이랑 다른 경험을 하면 편안해지죠. 마법적인 힘이에요. 그래서 온라인 콘서트를 통해서라도 사람들을 어루만져주고, ‘괜찮아, 잘될거야’하고 이야기해주고 싶었어요. 제 미션으로 생각하죠.”

Q : 1년 내내 무대 공연은 거의 하지 못했겠죠.
A : “무대에서 노래하고 싶어 미치겠어요. 저는 청중이 필요한 사람이에요. 팬이 필요하고, 박수를 받으면 그걸 생명으로 여기는 사람인데 무대에 못 서니까 버림받은 느낌이 딱 들었어요. 소외된 느낌이 무섭기까지 한거에요. 어떤 식으로든 커뮤니케이션을 해야겠다 싶었어요.”

Q : 온라인 공연, 집에서 노래하는 일은 처음이었겠죠.
A : “원래는 온라인 공연을 싫어했어요. 마이크 안 쓰고 음향 좋은 데서 노래하기 위해 평생을 공부한 사람인데 온라인으로 노래를? 에이 그건 아니지…. 근데 마음이 바뀌었어요. 친구 죽고, 가까운 사람들까지 아프면서 뭔가 해야겠다 싶었죠. 크리스마스 캐롤 녹화는 친한 친구의 갤러리를 빌려서 했는데 무대 세팅도 내가 혼자 다 하고, 손 열심히 씻으면서 피아노 치고 노래했어요.”

Q : 팬데믹이 무엇을 남겼나요.
A : “저는 혼자 사니까 더 불안했어요. 그런데 위기는 기회라고, 너무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동안 안 해본 일들을 했어요. 우선 손톱 다 깎아버리고 피아노를 엄청 연습했어요. 반려견 로리, 샤넬 밥도 직접 해주고. 또 책 읽으면서 코로나 이후의 세계에 대해 열심히 생각해보고 있어요.”

6월 실시간으로 중계한 로마에서의 온라인 콘서트. [유튜브 캡처]

Q : 온라인 콘서트를 계속할 생각인가요.
A : “음악 없는 삶은 오류에 불과하다는 말에 200% 공감해요. 코로나 아니라 코로나 할아버지가 와도, 음악을 해야죠. 나를 보고 ‘노래 잘한다’‘피아노 잘친다’ 해달라는 게 아니고, 내가 가진 탤런트로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싶어요. 이제 어떤 세상이 나타날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예술가, 음악가의 역할이 굉장히 커졌다는 점이에요.”

Q : 1986년 이탈리아에서 데뷔했으니 내년이 35주년이죠. 감회가 남다르겠습니다.
A : “첫번째 느낌은 ‘말도 안돼! 나는 아직 학생 같은 기분인데?’에요. 두번째는… 역시 말도 안된다는 생각 뿐이에요.(웃음) 강산이 세번 반이나 바뀌었는데 아직도 새로 공부하고 싶은 음악이 많아요.”

Q : 새해에 사람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요.
A : “세상이 멈췄지만 우리는 멈추면 안돼요. 어떤 식으로든 움직여야죠. 엄마한테 전화해서 사랑한다고 말하든, 자기 계발을 하든, 본인이 가지고 있는 빛을 점점 밝게 해서 주위를 조금이라도 밝히는 역할을 모든 사람이 해야해요.”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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