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톺아보기] 기억과 상상의 자화상

박병희 2020. 12. 31. 14:27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을 모두 잃어야 한다면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기억은 어떤 움직임과 사건이 아닌, 보이지 않는 내면의 회화로 회상 속에서 새롭게 구성될 수 있는 것이다.

"일상의 사물은 그것에 실용적 의미를 부여하려는 강박적 의지에서 해방되는 순간 지성적 의미를 갖게 된다." 마그리트의 이 말대로 그의 그림 안에서 평범한 물건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보이는 세상이 보이지 않던 세상으로 변하는 것이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보라 관장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을 모두 잃어야 한다면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기억은 시간과 함께 묻혀버리곤 한다. 하지만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1871~1922)가 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인공이 홍차에 적신 마들렌 향을 맡는 순간처럼 마법 같이 되살아나기도 한다.

프루스트에 따르면 감각은 자기도 모르게 생각을 움직일 수 있다. 의도치 않게 어린 시절로 돌아간 기억은 결국 혼란스러운 현재를 극복하는 실마리가 됐다. 레오니 고모가 살던 일리에콩브레의 집은 소설의 여정이 시작되는 곳이다. 침실로 향하던 계단, 첫사랑의 설렘이 시작된 공원, 해질녘 아름다운 성당, 스완 아저씨네 꽃밭 등 유년기 추억 속으로 들어가 다시 체험하도록 한다. 이곳은 프루스트 탄생 100주년에 그의 소설대로 마을 이름을 바꿨다. 그만큼 허구와 현실을 넘나드는 신비한 장소로 지금도 곳곳에 소설 속 묘사가 그대로 남아 있다.

프루스트는 놓쳐버린 세계를 되찾아 현재의 삶을 더 풍성하게 채우고자 했다. 기억은 어떤 움직임과 사건이 아닌, 보이지 않는 내면의 회화로 회상 속에서 새롭게 구성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나를 되찾게 하고 나로 살아갈 수 있는 상상을 기르는 토양이 된다.

상상은 실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벨기에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1898~1967)의 작품은 친숙한 상상으로 가득하다.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을 예측할 수 없는 사고의 끝으로 인도한다. 영국 록그룹 비틀스의 앨범은 마그리트 작품 속의 사과로 장식됐다. 그의 작품은 영화 '매트릭스'나 영국 록그룹 롤링 스톤스의 음반에도 영감을 줬다. 또한 문학·광고·북디자인 등 현대의 다양한 문화 속에 자주 등장해 늘 질문하고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하도록 이끌었다. 마그리트의 작품으로부터 거대하고 환상적인 아틀리에를 기대할 법도 하다. 그러나 그의 상상은 의외로 작고 초라한 집에서 출발했다.

프랑스 파리의 초현실주의자들과 결별하고 벨기에로 돌아간 화가는 가장 가난한 시기를 보내게 된다. 그 집이 브뤼셀 외곽에 기념관으로 남아 있다. 그는 이곳에서 24년 동안 살며 가장 많은 작품을 제작했다.

집이 너무 좁은 나머지 마그리트는 부엌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작업 도구들을 치우고 식사했을 정도다. 같은 곳에서 종종 손님들과도 모였다. 그만큼 그에게 매우 상징적인 공간이 됐다.

그의 평전을 쓴 시인 루이 스퀴트네르(1905~1987)에 따르면 "마그리트는 이젤 한 개, 물감통 하나, 팔레트 하나, 붓 한 다스, 박스 안에 든 흰 종이 한두 장, 지우개 하나, 찰필 한 개, 재봉 가위 한 쌍, 목탄 조각 하나, 낡고 검은 연필 한 자루 등 최소한의 도구에 만족했다."

"일상의 사물은 그것에 실용적 의미를 부여하려는 강박적 의지에서 해방되는 순간 지성적 의미를 갖게 된다." 마그리트의 이 말대로 그의 그림 안에서 평범한 물건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보이는 세상이 보이지 않던 세상으로 변하는 것이다. 상상은 환경을 초월한다. 회화로 시를 썼던 마그리트에게 필요한 것은 결국 자기만의 눈과 생각이었다.

한 해가 지나가고 있다. 열심히 달려왔는데 멈춰야 했다. 그럴 듯하게 구축된 일상이라는 구조물은 완벽한 것이 될 수 없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오랫동안 빛을 따라왔지만 여전히 긴 터널의 한복판이다. 이 길의 끝은 있는 걸까. 머잖아 상실의 시기는 보내고 기억과 상상으로 가득한 자화상을 그릴 수 있었으면….

김보라 성북구립미술관장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