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Stage] 고집불통 할아버지와 티격태격하는 사이..가족이 돼 버렸다

박병희 2020. 12. 31.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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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의 한 아파트.

경쾌한 음악과 함께 백발의 노인이 등장한다.

노인도 가고 있다며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

노인은 퉁명스럽게 "아들이 세를 놓았다"고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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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앙리할아버지와 나'
연극 '앙리 할아버지와 나'의 앙리할아버지 역 이순재(왼쪽)와 콘스탄스 역 채수빈 [사진= 파크컴퍼니 제공]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프랑스 파리의 한 아파트. 경쾌한 음악과 함께 백발의 노인이 등장한다. 왼팔에 깁스한 채 약을 챙겨 먹지만 혼자인 듯 도와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초인종이 울리고 노인은 "도대체 몇 번째야?"라며 투덜댄다. 그리고 천천히 문 쪽으로 움직인다. 걸음이 느리다. 그 사이 초인종은 신경질적으로 삑삑거린다. 노인도 가고 있다며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 여전히 느리다.

노인이 문을 열다. 이쁘장한 젊은 여자가 빼꼼 고개를 내민다. 노인은 여자 얼굴만 보고는 '쾅' 문을 닫아버린다. 재차 울리는 초인종. 노인이 귀찮아하며 다시 문을 연다. 여자가 "방 세 놓으셨죠?"라고 묻는다. 노인은 퉁명스럽게 "아들이 세를 놓았다"고 답한다. 옥신각신한 끝에 집안으로 들어선 여자. 이리저리 집안을 둘러본다. 노인은 세를 줄 생각이 없다. 화장실이 멀어 가다가 쌀지도 모른다, 욕실에 샤워기가 없다, 온수가 안 나온다, 면접 시험도 통과해야 한다 등등 계속 어깃장이다. 티격태격 노인과 여자의 실랑이로 1막이 마무리된다.

연극 '앙리 할아버지와 나(L'Etudiante et Monsieur Henri)'는 신경질적이고 고집불통인 할아버지 앙리와 밝고 쾌활한 성격의 여대생 콘스탄스가 집주인과 세입자로 함께 살게 되면서 가족 아닌 가족이 돼 가는 과정을 그린다. 앙리와 콘스탄스는 옥신각신, 티격태격하며 정을 쌓아간다. 나중에는 친할아버지와 손녀 못지않을 정도로 서로에게 깊은 애정을 보인다.

앙리가 티격태격하는 상대는 콘스탄스만이 아닌다. 아들 폴과 말다툼할 때 더 험악하고 살벌하다. 하지만 겉모습일 뿐이다. 속으로는 서로를 깊이 걱정한다. 앙리는 폴의 빨간 목도리를 챙겨주며 무안한 듯 괜히 핀잔준다. "목도리 챙겨! 감기 걸려! 그 핑계로 결근할 생각 말고."

폴도 아버지를 살뜰히 챙긴다. 폴이 아버지 몰래 세놓은 이유는 콘스탄스가 아버지 약 먹는 것을 챙겨주도록 하기 위해서다.

연극 '앙리 할아버지와 나'에서 콘스탄스 역의 박소담 [사진= 파크컴퍼니 제공]

2017년 국내 초연 후 세 번째 공연
70대-40대-20대 엮는 평범한 일상
연말에 어울리는 웃음과 공감 유발

겉으로 표현하지 못하지만 속으로는 서로 아끼고 생각하는 모습을 보면서 관객들은 가족의 의미에 대해 되새기게 된다. 70대 할아버지 앙리와 40대 아들 폴, 20대 여대생 콘스탄스가 티격태격하면서도 함께 어울려 사는 모습은 훈훈하고 따뜻하다. 연말을 맞아 가족과 함께 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연극이다.

복잡한 서사나 어려운 대사가 없다는 점도 '앙리 할아버지와 나'의 매력이다. 극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인물들의 평범한 일상 이야기로 웃음과 공감을 유발한다. 각 캐릭터의 성격도 단순하고 뚜렷해 이해하기 쉽다. 고집불통 앙리와 밝고 쾌활한 콘스탄스, 회계사 일을 할 정도로 똑똑하지만 어딘가 어리숙하고 순진한 폴, 푼수떼기 며느리 발레리까지.

'앙리 할아버지와 나'는 프랑스의 연출가 겸 극작가인 이방 칼베락의 작품이다. 2012년 프랑스에서 초연했다. 칼베락은 2015년 '앙리 할아버지와 나'를 영화로도 만들었다.

국내에서는 2017년 초연했다. 지난해 재연했고 이번이 세 번째 공연이다. 공연이 거듭되면서 배우들은 대개 바뀌게 마련이다. 하지만 '앙리 할아버지와 나'의 배우들은 많이 바뀌지 않았다.

앙리 역을 맡은 '국민 할배' 이순재와 신구는 초연 때부터 이번 공연까지 세 차례 모두 출연했다. 콘스탄스 역의 권유리와 채수빈은 재연 때부터 두 번 연속 출연 중이다. 박소담은 초연 참여한 뒤 재연에서 빠졌다가 3년 만에 다시 함께 했다. 폴 역의 조달환과 발레리 역의 김은희도 세 차례 공연에 모두 같은 역할로 참여한다. 폴 역을 맡은 다른 배우 이도엽과 김대령, 발레리 역의 유담연, 강지원도 모두 이번이 두 번째 공연이다.

배우들의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연기에서 오래 호흡을 맞춘 힘이 느껴진다. 특히 티격태격하며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에서 빛을 발한다. 공연은 대학로 예스24스테이지 1관에서 내년 2월14일까지.

연극 '앙리 할아버지와 나'의 앙리할아버지 역 신구(오른쪽)와 콘스탄스 역 박소담 [사진= 파크컴퍼니 제공]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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