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대입제도 공정성과 교육 공정성

2020. 12. 31.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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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을 발표한 지 13개월이 지났다.

공정성 강화 방안의 핵심은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의 공정성 강화, 대입전형의 합리적 비율 조정, 사회통합전형 신설 등 세 가지였다.

학종에서 부모 배경이나 사교육 등 외부 요인의 영향을 차단하기 위해 모든 비교과활동을 반영하지 않고 자기소개서는 폐지하도록 했다.

교육부가 야심찬 계획을 내놓고, 재정지원사업 연계를 통해 대학을 강하게 압박했음에도 기대에 못 미친 원인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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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을 발표한 지 13개월이 지났다. 공정성 강화 방안의 핵심은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의 공정성 강화, 대입전형의 합리적 비율 조정, 사회통합전형 신설 등 세 가지였다.

학종에서 부모 배경이나 사교육 등 외부 요인의 영향을 차단하기 위해 모든 비교과활동을 반영하지 않고 자기소개서는 폐지하도록 했다. 출신고교의 후광효과를 차단하기 위해 면접에만 적용하던 블라인드 평가를 서류평가까지 확대했다. 소득ㆍ지역별 합격률 격차를 줄이기 위해 사회통합전형도 도입하기로 했다.

대입제도 예고제 때문에 대부분의 정책은 아직 시행을 예고한 상태며, 일부 정책만 이번 학종에 적용했을 뿐이다. 이번 서울대 수시전형 결과만 보면 일반고 합격률이 개선되지 않았고, 내가 재직하고 있는 대학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교육부가 야심찬 계획을 내놓고, 재정지원사업 연계를 통해 대학을 강하게 압박했음에도 기대에 못 미친 원인은 무엇인가.

교육부는 대입 공정성을 해치는 근본적 원인 해소보다는 눈에 보이는 결과를 차단하는 데 중점을 뒀다. 학생들은 이미 불공정한 결과를 가지고 학종에 지원한다는 점을 외면한 채 전형요소와 전형과정의 공정성 확보에 주력했다. 전형요소와 전형과정의 공정성은 대입 공정성의 필요조건일 뿐이며,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점을 교육부가 몰랐을 리 없으나, 정책은 그랬다. 학종에서 일반고 학생들이 불리했던 것은 대학이 일반고 출신을 불리하게 평가했기 때문이 아니라 일반고 출신이 다른 고교유형 출신보다 역량이 낮았기 때문이다. 고교유형별 합격률 차이의 가장 큰 원인이 학생 역량의 차이라면 블라인드 서류평가에도 고교유형별 격차가 줄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소득 수준별ㆍ지역별 격차가 발생한 것도 대학이 소득계층이나 출신지역에 따라 학생을 차별했기 때문이 아니라 소득 수준별ㆍ지역별로 역량의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고교유형별ㆍ소득계층별ㆍ지역별로 역량의 차이를 발생시키는 근본적 원인을 찾았어야 했다. 학생 역량의 차이는 선천적 능력의 차이와 관계가 깊지만, 정책적으로 그 차이를 메울 수 없기 때문에 정책은 환경의 영향력 차이를 줄이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입제도 개선을 통한 공정성 제고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바뀐 제도에 적응하는 능력이 부모의 소득 수준과 밀접히 연결돼 있어 개선된 제도의 효과는 예고 기간이 끝남과 동시에 소득 수준 효과로 흡수되고 만다.

대입제도의 공정성을 논하기 전에 고교교육의 공정성이 확보돼야 하나, 고교교육의 공정성은 부모 소득의 영향력을 어떻게 통제하느냐에 달렸다. 과거에는 교육에 대한 소득의 영향력이 작았기 때문에 교육이라는 사다리를 통해 계층 상승이 가능했다. 교육이라는 사다리가 지금도 계층 상승의 통로 역할을 하지만, 과거와 차이가 있다면 소득 수준별로 구입하는 사다리의 가격에 따라 사다리의 넓이, 높이, 강도가 달라졌다는 점이다.

고소득층이 구입하는 값비싼 교육 사다리는 튼튼하고 넓고 길어서 빨리, 쉽게, 높이 올라갈 수 있지만 저소득층이 구입하는 값싼 교육 사다리는 약하고 좁고 짧아서 빨리, 쉽게 올라갈 수 없을 뿐 아니라 올라갈 수 있는 높이도 제한적이다.

교육에 대한 소득의 영향력이 커지면 교육은 계층 세습의 수단으로 전락한다. 교육 공정성을 회복하려면 소득의 영향력을 최소화한 공정한 교육 사다리를 제공하는 정책과 함께 계층별 소득 격차를 줄이는 경제정책이 필요하다. 대입제도 개선으로 달성되는 공정성은 부차적이다.

근본적으로 소득 양극화를 개선하는 경제정책의 뒷받침 아래, 새해에는 양적인 교육 기회 균등을 넘어 교육 기회를 질적으로 균등화하는 교육 공정성 강화 방안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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