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법무장관 반대" 14년전 김근태 흔적 사라진 민주당
노무현 정부 4년차인 2006년 7월말 8월초 여당인 열린우리당에는 큰 소용돌이가 몰아쳤다.
논란 끝에 임명된 김병준 교육부총리의 논문 표절 의혹이 불거져 여당 내에도 사퇴론이 불붙은 상황에서 노 대통령이 자신의 최측근인 문재인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차기 법무부 장관으로 마음에 뒀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여론의 총대를 멘 사람이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이었다. 김 의장은 7월28일 이병완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검사 출신인 김성호 국가청렴위원회 사무처장과 임내현 법률구조위원장 두 사람을 천정배 법무부 장관의 후임으로 추천했다. 나흘 뒤 김 의장은 기자간담회에서 “문 전 수석 개인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국민들이 적합하다고 보지는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자 당내 친노그룹이 발끈했다. “왜 (대통령의) 인사권을 갖고 이 말 저 말인가”(이광재 의원) “김 의장이 (문 전 수석 불가론을) 얘기한 것 자체가 충격”(백원우 의원) 등의 반발이 쏟아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4번째 법무부 장관 후보로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지명한 지난 30일은 고(故) 김근태 전 의장의 9주기였다. 과거 김 전 의장을 따랐던 기동민ㆍ김원이ㆍ허영ㆍ김영진 의원 등은 이날 두셋씩 짝을 지어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에 있는 김 전 의장의 묘소에 참배했다. 코로나19 여파로 매년 열리던 추모행사는 열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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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은 상황 다른 선택
지금 상황은 당시와 닮은 점이 적지 않다. 추ㆍ윤 갈등에 비견할 정도는 아니지만 당시 천정배 장관은 강정구 동국대 교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서 검찰에 불구속 수사를 지휘해 첨예한 진영 대립을 불렀다. 대선을 1년여 앞둔 시점에서 대통령 국정수행지지도와 여당의 정당 지지율의 동반 하락세가 뚜렷하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각종 조사에서 10%대 지지율을 기록하던 열린우리당보단 지금의 민주당의 여건이 훨씬 낫긴 하다. 이날 야당의 반발도 14년 전과 닮았다. “또다시 코드 인사, 오기 인사를 할 경우 국민들이 불안해하고 대통령의 레임덕만 촉발될 것” “선택적 정의, 편 가르기 인사를 후보자로 지명한 건 무법부 장관을 다시 임명하려는 것” 앞엣것은 2006년 김형오 한나라당 원내대표, 뒤엣것은 이날 최형두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의 말이다.
그러나 이날 문 대통령의 선택은 노 대통령과 달랐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 못지않은 강성 개혁론자인 박범계 의원을 후임자로 지명했다. 그는 법원 내 진보성향 법관 모임이었던 우리법 연구회 출신으로 이용구 법무부 차관과도 매우 가깝다. ‘검사출신 NO’라는 터부는 이번에도 관철됐다. 노 대통령은 김 의장이 대변한 여당의 반발에 귀를 기울였다. 그해 8월 김성호 법무부 장관이 임명됐다. 노 대통령이 여론과 혼란의 수습을 택했다면 문 대통령은 정면 돌파를 택한 셈이다. 2006년 청와대 비서관으로 일했던 한 여권 인사는 “노 대통령은 검찰개혁에 대한 자신의 구상을 가장 잘 이해하는 문재인 카드로 검찰개혁의 불씨를 살려 보려 했다”며 “당시 문 전 수석이 고사하기도 했지만 당내 반발이 너무 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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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견과 비판 사라진 민주당
문 대통령의 돌격 신호에 브레이크를 거는 민주당 인사는 없었다. “검증 문턱을 넘기 쉽지 않았다”(여권 핵심 인사)는 말도 있지만 민주당에선 “검찰 개혁의 의지와 조직 장악력을 염두에 둔 인선”(재선 의원)이라고 긍정 평가하는 분위기다. 오히려 장관 지명에 앞서 민주당은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사실상 박탈하고 기소와 공소유지 기능을 중심으로 재편하는 ‘검찰개혁 시즌 2’에 드라이브를 건 상태다.
문재인 정부 들어 민주당에선 대통령의 어떤 인선에도 집단적 반발이 분출되는 일이 없었다. 여권에 밝은 한 정치컨설턴트는 “노 대통령과 어깨를 겨루던 계파 수장들이 모두 퇴장한 데다 민주당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김근태계가 범친문 그룹에 편입된 영향이 컸다”며 “당 전체가 문 대통령의 극성 지지층에 의존하면서 청와대를 견제·견인하는 여당의 기능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지난해 조국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 직전 의원총회(8월21일)에선 이같은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있었다. 김해영ㆍ금태섭 의원을 중심으로 임명 반대 목소리가 표출되던 차에 열린 의총이었다. 김 전 의장의 보좌관 출신인 기동민 의원이 나서 “이대로 밀리면 다음이 없다”고 말하자 갑론을박은 잦아들었다. 직후 기 의원 주변에선 “김 전 의장이 대통령 인사권에 문제를 제기했다가 당ㆍ청 관계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흘렀던 과거에 대한 반성적 사고의 결과”라는 해석론이 흘렀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과거 김근태계는 사실상 범친문 그룹에 편입됐다는 평가다. 지난 5월 민주당 원내대표 선거 당시 김 전 의장의 적자로 평가되는 이인영 의원(현 통일부 장관)은 친문 핵심인 전해철 의원(현 행정안전부 장관)을 지원했다. 선거 전 두 사람 사이엔 “노무현ㆍ김근태가 이제는 함께 가자”는 의기투합이 오갔다고 한다. 지난해 원내대표 선거에서 전 장관이 이 장관을 지원한 것에 대한 보은 차원이었다.
이견과 비판이 사라진 민주당에 대해 당 밖의 시선은 싸늘해지고 있다. 김 전 의장과 가까웠던 임현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나와 다른 생각을 경청하고 그 안에서 대안을 얻는 게 김근태가 생각했던 민주주의”라며 “지금 민주당 내에서 그러면 문빠들에게 당한다. 수퍼여당이 됐는데 의원들은 대화와 타협을 허용치 않고 조급해하기만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최소한의 품격을 상실한 추ㆍ윤 갈등으로 본말이 전도되면서 검찰개혁은 이미 꼬여버렸다”고 덧붙였다.
임장혁ㆍ김홍범 기자 im.j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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