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미래 세대에게 부끄럽다

2020. 12. 31.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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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8개월 만에 민주화세대는 비아냥의 대상이 됐다.

지난 4월 총선 직후만 해도 이른바 '조국 사태'의 여진에도 불구하고 민주화세대는 존경의 대상이었다.

민주화세대와 미래 세대가 뭉쳤으니 산업화세대를 설득할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8개월이 지난 지금 민주화세대는 어떤 모습으로 비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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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훈 사회부장


불과 8개월 만에 민주화세대는 비아냥의 대상이 됐다. 지난 4월 총선 직후만 해도 이른바 ‘조국 사태’의 여진에도 불구하고 민주화세대는 존경의 대상이었다. “그들이 엄혹한 현실 속에서도 싸워 줬기에 오늘 같은 날이 왔다” “희생에 감사를 보낸다”는 목소리가 넘쳤다.

많은 이들이 통합을 꿈꿨다. 청와대와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국회에까지 압도적으로 표를 몰아주면서 기대한 것이었다. 우리 사회 갈등의 근원이었던 지역의 벽을 넘어 민주화세대가 주축인 당에 전국 정당의 꿈을 실현토록 해줬다. 오래도록 보수 정당의 대변자였던 50대도 힘을 실었다. 민주화세대와 미래 세대가 뭉쳤으니 산업화세대를 설득할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8개월이 지난 지금 민주화세대는 어떤 모습으로 비치고 있나. 능력은커녕 성찰하고 반성할 줄 모르는, 편법과 불공정으로 스스로의 이익만을 좇는 탐욕스러운 꼰대가 돼 있다.

기회가 될 때마다 후배들에게 민주화세대의 미덕을 읊었다. 엄혹했던 시절 다들 움츠려 있을 때 일어나 싸우다 사법처리되고 불이익을 받았던 이들을 인정해줘야 한다고 강변했다. 앞에서 싸웠던 이들만 있는 게 아니라는 얘기도 했다. 그들 세대는 앞에서 싸우지 못했던 이들도 뒤에서 자신의 이익을 양보하고 포기해 가면서 이 사회의 발전을 위해 힘썼다고 설명했다.

누군가는 온갖 편법을 동원해서라도 자식에게 물려주려 했던, 누군가는 오로지 그것만으로 많은 혜택을 받았던 번듯한 대학 졸업장을 지니고서도 농촌으로 공장으로 철거 대상 지역으로 달려가 새로운 삶을 개척했던 이들을 얘기했다.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구속됐고 그 전력 탓에 이리저리 전전하다가 쓰러져 흙이 된 이의 얘기도 전했다. 중견기업에 취직한 뒤에도 환경운동에 미력이나마 보태겠다며 자동차 없이 살다 임원이 돼 처음으로 회사 제공 승용차를 타게 된 이가 딸이 등교할 때 태워 달라고 하자 ‘공사는 구분해야 한다’고 나무라고서 벗에게 “나 제대로 살고 있는 거 맞지?”라며 울먹이더라는 얘기도 해줬다.

이제 더 이상 군사정권과 맞서 싸웠던 그들의 무용담을, 가족보다 동료와 사회를 앞세웠던 그들의 헌신을 후배들에게 말하지 못하겠다. 국가보안법 위반의 당위를 설명하고, 집시법 위반의 불가피성을 해명하고,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앞으로는 얘기하지 못하겠다. 음주운전 전력이 추가된 국가보안법 위반자의 고통은 상상 이상이라고, 사기 혐의 확정 판결이 확인된 집시법 위반자의 내막은 따로 있다고 떠들지 못하겠다. 대상 영속성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영아들의 까꿍놀이처럼, 한꺼풀만 벗겨도 드러날 거짓말로 변명하는 이들의 과거가 더 이상 그들의 오늘을 설명해주지 않음을 반백이 넘어서야 인정하게 됐다.

“여당이 원한 법안은 다 통과시키지 않았느냐”는 고(故)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의 힐난을 듣고서도 노동계와 산업계 모두 가소롭게 여길 만한 반쪽 법안을 내놓는다는 얘기가 들린다. 검찰총장 징계 절차에 대한 법원의 고언을 듣고서도 과정을 뉘우치기보다 되레 목청만 높인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후배들을 끌어주고 선배들을 설득하기보다 스스로가 주축이라는 이유로, 지금 무언가를 맡고 있다는 이유로 ‘내가 옳다’고 강변하며 꼰대가 돼 버린 자화상을 보는 듯해 부끄럽다.

그러지 말자고 다짐하고 확언했던 모습이 재현됨을 보면서 그동안 내뱉었던 말들을 주워 담을 수 없음에 아득해진다. 민주화세대의 꿈을 곁에서 듣고, 실천을 지켜봤다는 이유로 겨우 한 뼘만큼 남은 미련을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는 스스로가 미래 세대에게 퍽 민망해지는 2020년 마지막 날이다.

정승훈 사회부장 s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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