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행렬 성탄 이벤트로 우울한 도심 축제 장으로

2020. 12. 31.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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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시대 이제는 문화전도다] 창의적 목회 <1>
이수훈 당진 동일교회 목사가 지난 25일 충남 당진 시내 상가 문에 크리스마스 선물을 걸고 있다.


지난 20일 오전 9시 대예배를 비대면으로 마치고 11시 예배를 준비하고 있었다. 공무원이 목양실로 찾아왔다. 일종의 예배 통제를 위한 방문이었다. 교회가 어쩌다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됐나 생각하니 울분이 났다. 결국, 언성이 높아지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사람이 없는 허공을 향해 설교하는데 이걸 설교라 할 수 있겠는가. 비대면 예배는 말만 그럴듯하다. 하나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 경배드리는 것보다 더 영광스러운 일이 이 땅에 있겠는가.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상의 경건한 행위가 문제가 되는 이 비극을 뒤집을 방법은 없을까.

현실을 생각할수록 민망하고 분이 치밀었다. 모이지 못하며 힘을 다해 방역 당국의 조치에 따르고 있지만, 전염병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코로나19가 돌고부터 그리스도인은 소통 불능한 이기적인 사람들이자 전염병을 옳기는 집단으로 호도되기까지 했다.

코로나 위력 앞에 소리 없이 문을 닫고만 있으면 되는 것인가. 설득조차 못 하는 교회를 생각할수록 가슴이 답답했다. 억울했지만 이렇게 추락하는 분위기를 반박할 만한 당위성마저 잃어버렸다. 하나님을 향한 죄송함이 폭발해 밤잠을 이룰 수 없었다.

골똘히 생각했다. ‘하나님께서 못하실 일이 없으신데 이대로 숨죽이고 성탄절을 보낼 수 없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주눅 들어 있어야 한단 말인가. 홍해가 갈라지고 여리고성도 무너졌다. 이 상황 속에도 분명 돌파구는 있을 것이다.’

고민하다가 성탄절을 활용한 이벤트를 열기로 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통해 같은 라인에 사는 이웃을 위로하기로 했다. 아이들은 손편지에 성탄절 그림을 그려 놓고 그 옆에 사탕을 붙였다. 어느 가정에선 70대 부부가 길가에 성탄 메시지로 위로의 바구니를 내놨다.

어린이들이 엘리베이터에 성탄선물을 부착하고 사진을 촬영했다.


한 가정 한 가정 아이디어를 사진으로 찍고 보내줬다. 밴드에서 서로의 아이디어를 보면서 좀 더 나은 방법으로 발전해 가는 모습이 보였다. 초등학교 아이는 30분마다 엘리베이터 안을 기웃거리면서 신이 나서 펄쩍펄쩍 뛰었다고 한다. 자기가 달아놓은 사탕을 누군가 떼어 가는 게 신기했던 것이다.

이웃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한 시간도 안 됐는데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다. “세상인심이 다 사라진 줄 알았는데 아, 감동입니다. 힘이 나네요. 살 맛이 납니다.” “우리 아파트에 이런 착한 어린이가 살고 있다니 정말 행복합니다.” 칭찬을 담은 아저씨의 편지가 매달려 있기도 했다. 어느 분은 사탕 바구니를 대신 채워놓았다. “나도 감동 릴레이 따라 우리 아이들과 함께 흉내 내 봅니다.”

24일 오전에 시작했는데 곳곳에서 참여하는 성도가 시간이 갈수록 늘어났다. 퇴근 시간이 되자 140가정이 넘었다. 밤 8시부터 방송 예배를 통해 교구별로 한 가정씩 추천해서 대학부 학생들이 선물을 들고 천사 심방을 갔다.

제비를 뽑는 과정도 영상으로 생중계했다. 뽑힌 가정을 소개하면 천사가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가는 퍼포먼스를 했다. 그리고 아파트 입구에서부터 생중계했다. 단체 카톡방과 밴드가 난리가 났다.

“제 평생에 이런 감동적인 성탄절은 처음입니다.” “역시 예수님이 최고이십니다. 이렇게 멋진 감동을 누가 줄 수 있을까요.” 새벽 2시가 넘어가도록 메시지가 그치지 않았다.

25일에는 지역 맘 카페, 마을 카페, 회사 카페에 수많은 글이 올라왔다. 교회 이름을 밝히지 않았는데도 “동일교회에서 시작한 감동 드라마가 우울한 연말을 행복하게 해주셨네요”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등의 글이 올라왔다.

어떤 분이 “또 교회인가요”라며 불편한 글을 올렸다. 순식간에 “교회면 어떻습니까” “너무나 감동입니다. 이런 일이라면 저는 적극 응원합니다” “제발 그러지 마세요” 하면서 교회를 응원하는 글이 올라왔다.

25일 교회 주차장에서 성탄예배를 드린 성도들이 줄지어 당진 시내를 돌며 크리스마스를 축하하고 있다.


25일 성탄예배는 주차장 차량예배로 대치했다. 돌아가는 길에 모든 성도가 한 줄로 서행하면서 성탄절 퍼포먼스를 펼쳤다. 12㎞의 길고 긴 행렬이 비상등을 켜고 캐럴을 울리며 행진했다. 시내에선 난리가 났다. 구경을 나와 손을 흔들고 춤을 추며 환호성을 지르는 시민들도 있었다.

감동이었다. 창문을 열고 어린이들이 소리 높여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쳤다. 시민들도 따라서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치며 손을 흔들었다. 우울했던 도심이 일순간에 축제 분위기로 바뀌었다. 행렬을 따라가다가 문득 이 땅에서 버림받으신 예수님의 얼굴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손 세정제를 한 가정 당 3~5개를 준비했다. 상가를 돌면서 성탄 인사를 하며 위로했다. “고맙다. 살맛 난다. 희망이 보인다”며 눈물을 흘리며 손을 잡아주시는 분들도 있었다.

행사를 마친 후 모인 스태프들의 얼굴에는 벅찬 감격이 있었다. 해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

이 행사는 강원도 춘천과 경기도 안성에서도 함께 나눴다. 성탄이 우울한 도심을 이렇게 감동의 물결로 바꿔주실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역시 주님은 살아계셔서 역사하신다.

이수훈 당진 동일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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