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상의 코멘터리] 2020년의 승자는?

오병상 2020. 12. 30.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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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훈의 주장엔 반대하나, 그의 '표현의 자유'인정한 판결 존중
정치 난장판 와중에 냉정한 원칙 고수한 사법부가 올해 승자다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모습. 뉴스1

1.
‘나는 당신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 주장을 말할 당신의 권리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겠다.’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자 볼테르가 한 말로 전해지는 명언입니다.
30일 극우 전광훈 목사가 무죄를 선고받았다는 뉴스에 떠올랐습니다.
전광훈의 주장에 전혀 동의하지 않습니다만, 그의‘표현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한다는 판결을 존중합니다.

2.
전광훈 목사가 작년말 정치집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간첩’이라 부르고 ‘대한민국을 공산화시키려 한다’고 비난한 것에 대한 판결입니다.
(코로나 확산 비난을 받았던 지난 8월 광화문집회는 별도 사건.)

무죄 이유는 전광훈의 발언이 모두 ‘표현의 자유’에 해당된다는 판단입니다.
‘간첩’이란 표현은 ‘북한에 우호적’이란 넓은 의미에서 사용될 수 있는 표현이고, ‘공산화’발언도 ‘정치적 행보에 대한 비판적 의견표명’이라 봤습니다.

3.
전광훈의 ‘표현의 자유’를 특별히 넓게 인정해준 이유는 상대가 ‘대통령’이기 때문입니다.

‘공인’(공적인 존재) 특히 대통령과 같은 막강한 공인의 경우, 정치적 권한과 책임이 크기 때문에 그만큼 많은 비판을 받을 수 있다..는 해석입니다.

4.
정치적 성향에 따라 이번 판결에 대한 평가는 완전히 다를 겁니다.
그렇지만 ‘표현의 자유’ 특히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넓게 보장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는‘양심의 자유’‘사상의 자유’‘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동시에 ‘언론의 자유’ ‘결사의 자유’로 연결되는 민주주의 기본권입니다. 광범히 인정받아 마땅합니다.

5.
그렇다고 해서 ‘전광훈이 잘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고 합니다.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일은 많지만, 그렇다고 모두 법으로 처벌할 수는 없습니다.
전광훈의 발언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합니다만, ‘표현의 자유’에 포함되기에 법적으로 처벌할 수 없습니다.

6.
법은 답답하지만 사회의 기본질서를 지키는 장치입니다.

정치적 양극화로 여론이 들끓는 와중에 차갑게 원칙을 지킨 사법부를 2020년 우리사회의 승자로 치켜세우고 싶습니다.

7.
19세기 프랑스 지성 토크빌은 ‘민주주의가 매우 불안한 정치시스템’이라 고민이 많았습니다.
지성보다 열정에 휩쓸리는 다수의 독재를 우려했죠. 이를 견제하는 장치로 토크빌이 기대한 곳이 사법부입니다. 엘리트 판사들은 로마 귀족정의 후예라 민주정에 대한 비판과 견제에 적임입니다.

올해 우리 사법부가 그 역할을 해냈습니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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