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패션계 거장, 피에르 가르뎅 별세..향년 98세(종합)

권재희 2020. 12. 30.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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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패션계의 거장, 디자이너 피에르 가르뎅이 29일(현지시간) 별세했다.

이날 르몽드 등 현지언론은 피에르 가르뎅이 오전 프랑스 뇌이쉬르센의 병원에서 영면했다고 전했다.

피에르 가르뎅 밑에서 일하며 디자이너로 데뷔한 장 폴 고티에는 트위터에 "나에게 패션의 문을 열어주고 내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줘서 감사하다"는 글을 올려 피에르 가르뎅을 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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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가르뎅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아시아경제 권재희 기자] 프랑스 패션계의 거장, 디자이너 피에르 가르뎅이 29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98세.

이날 르몽드 등 현지언론은 피에르 가르뎅이 오전 프랑스 뇌이쉬르센의 병원에서 영면했다고 전했다.

유족은 "피에르 가르뎅이 한 평생 보여준 끈질긴 야망과 대담함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그는 세기를 넘나들며 프랑스와 세계에 독특한 예술적 유산을 남겼다"고 추모했다.

1922년 이탈리아에서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피에르 가르뎅은 그가 2살이던 해에 부모와 함께 프랑스로 이주했다.

그는 14세때 처음으로 재단사로서 실과 바늘을 잡았고 1944년엔 패션의 도시 파리에 올라와 디자이너 밑에서 본격적으로 의상을 제작했다.

이때 그는 장 콕토 감독의 영화 '미녀와 야수'에 사용할 의상을 만들었고, 콕토 감독의 소개로 크리스티앙 디오르를 알게 돼 1947년 디오르의 첫 번째 재단사가 됐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1950년에는 자신의 브랜드를 내놓았고, 1954년에는 엉덩이 부분을 둥그렇게 부풀린 '버블 드레스'를 선보이며 명성을 얻었다. 1959년에는 디자이너 중 처음으로 프랭탕백화점에서 기성복 컬렉션을 선보이기도 했다.

1960년대에는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셔츠, 향수, 선글라스 등 수백 가지 제품을 내놓으며 1000여개가 넘는 라이선스를 보유했다.

1979년에는 중국 베이징 자금성에서 처음으로 패션쇼를 선보인 최초의 서양인이 됐고, 1991년 러시아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패션쇼를 올린 최초의 디자이너로 기록됐다.

피에르 가르뎅은 2010년 AFP 통신과 인터뷰에서 "나는 아마 북한을 제외한 전 세계를 커버하고 있고, 내가 선택하면 그곳도 갈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그는 지난 2012년 7월 90세의 나이로 작품 발표회를 가지며 노장에도 활발히 활동했다.

그는 당시 컴백 작품 발표회에서 "나는 아직 내일을 위한 에너지를 갖고 있다"면서 "이 일을 시작할 때는 가장 어렸는데 이제는 가장 나이가 많아도 여전히 이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고 밝혔다.

거장의 타계 소식에 패션계에서도 애도가 이어지고 있다.

피에르 가르뎅 밑에서 일하며 디자이너로 데뷔한 장 폴 고티에는 트위터에 "나에게 패션의 문을 열어주고 내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줘서 감사하다"는 글을 올려 피에르 가르뎅을 추모했다.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베네통을 이끄는 장샤를르 드카스텔바작은 피에르 가르뎅을 패션, 디자인, 건축에 경계를 설정하지 않는 "아주 비범한 사람이었다"고 회고했다.

권재희 기자 jayf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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