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구속 분노, 판사 향했다..묘하게 닮은 정경심·김경수 재판

이수정 2020. 12. 30.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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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일치일까, 비슷한 전략 때문일까. 지난 23일 징역 4년의 유죄를 선고받은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재판과 지난달 항소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재판은 데자뷔처럼 닮은 구석이 있다. ‘입시 비리’와 ‘댓글 조작’이라는 전혀 다른 혐의로 유죄를 받은 두 사람이지만 수사과정부터 재판까지 묘하게 닮은 이들의 지난날을 짚어봤다.


①“그런 적 없다” 혐의 전면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정 교수와 김 지사는 수사와 재판에서 핵심 혐의에 대해 전면 부인하는 전략을 썼다. 정 교수는 동양대 표창장 위조에 대해 “컴맹이라 위조를 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김 지사 역시 마찬가지다. 댓글조작 프로그램 ‘킹크랩’ 시연은 본 적도 없고, 드루킹김씨와의 관계도 “단순한 지지자와 정치인”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런 주장은 나란히 반대 증거에 의해 재판부로부터 배척을 당했다. 정 교수 재판부는 동양대 PC에서 발견된 경력증명서를 제시했다. 과거 정 교수가 근무한 기업의 경력증명서에 근무 기간을 고치고 법인 인영을 캡처해 붙인 파일을 꼽으며 “피고인은 스캔과 캡처 등의 작업을 능숙하게 할 수 있었다”고 했다. 객관적 증거와 정 교수 주장이 배치됨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면서 “정 교수는 조국에 대한 청문회가 시작할 무렵부터 이 재판 변론이 끝날 때까지 단 한 번도 자신의 잘못에 관해 솔직히 인정하고 반성한 사실이 없다”고 꼬집었다.

김경수 경남지사. 연합뉴스

김 지사의 항소심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함상훈 재판장이 김 지사에게 “사람의 말은 다 허공에 흩어지지만, 디지털 증거는 남는다”며 “디지털 자료는 김 지사에게 불리한 게 많다”고 김 지사의 주장을 탄핵했다. 수사 때는 특검에, 법정에선 재판부에 “진실을 밝혀달라”고 호소한 김 지사는 항소심에서도 댓글 조작에 대해 유죄를 받았다. 부장검사 출신의 변호사는 “대체로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 건 재판에서 좋지 않은 전략이지만 정 교수는 장관의 부인, 김 지사는 도지사라는 지위가 있어 일부라도 인정하면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② 뿔뿔이 흩어진 수사팀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 그 가족의 비리 의혹을 법정에 올린 정 교수 수사팀은 올해 초 인사에서 지방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수사를 총지휘한 한동훈 검사장은 부산과 용인, 진천으로 근무지를 옮겼다. 조국 일가 수사팀장을 맡은 고형곤 부장검사는 대구로, 수사와 재판 실무를 책임진 강백신 부장검사는 재판 중인 지난 8월부터 창원지검 통영지청 근무를 발령받았다. 수사팀은 매주 열리는 재판 때마다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여권 핵심 인사였던 김 지사를 수사하는 특검팀도 수사 초기 인력 구성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부장급 이상 검사 중에는 특검 차출에 난색을 보이는 경우도 있었고, “누군가는 해야 한다”며 참여한 검사도 있었다고 한다. 당시 특검 관계자는 “케이스마다 다르지만 일부 검사 중에서는 특검 파견 이후 불이익을 받은 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③ “X소리”에 감치 재판까지…지지자로 가득 찬 법정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지지자들이 정 교수의 1심 선고 결과를 듣자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선고까지 35차례가량 열린 정교수 재판이 열리는 날이면 다수의 지지자와 반대파가 늘 법원에 몰렸다. 일부 지지자들은 출입증을 받아 법정 방청석에서 재판을 꼼꼼하게 지켜보기도 했다. 지난달 5일 열린 정 교수의 결심공판 때는 방청 열기가 뜨거웠다. 검사가 정 교수에 대해 징역 7년을 구형한 뒤 한 방청객이 법정에서 “X소리 하네”라는 말을 했다가 임정엽 재판장으로부터 지적을 받았다. 이 방청객은 2시간 정도 구금된 뒤 법정 소란죄로 감치 재판을 받았고 선고 공판에는 나올 수 없다는 주의를 받았다.

지난 11월 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김 도지사의 지지자들이 방청권 배부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뉴스1]

김 지사 재판이 열리는 날에도 서울 서초동 법원 청사 앞에는 대형 경찰 버스들이 줄지어 서는 등 경비 인력이 보강됐다. 김 지사는 항소심 법정에 출석할 때 법정을 찾은 지지자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하고 악수를 하기도 했다. 지지자들은 김 지사가 법원 출입문을 들어오고 나갈 때 김 지사의 이름을 외치며 환호하기도 했다. 항소심 선고 때 서초동 법원 청사에서 근무하는 한 판사는 “대형 버스와 피켓을 든 지지자들을 보고 오늘 유명 피고인의 선고가 열리는지를 알았다”고 말했다.


④ 1심서 ‘법정 구속’…판사 탄핵 요구 후폭풍

지난해 10월 구속영장이 발부됐던 정 교수는 1심 중 구속 기간이 만료돼 지난 5월 석방됐다. 이후 1심 선고일인 지난 23일 법정 구속을 피하지 못했다. 재판부는 정 교수를 구속하며 “법에 따라 구속과 관련한 피고인의 의견을 말해달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변호인이 저를 대리하면 안 되겠냐”며 당황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1심에서 ‘법정구속’의 악몽을 겪은 건 김 지사도 마찬가지다. 김 지사는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다가 지난해 1월 3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2부(재판장 성창호)가 징역 2년의 유죄를 선고하며 법정 구속했다. 현직 도지사가 법정에서 구속된 파장은 상상 이상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김 지사의 법정 구속 직후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사법농단 세력의 보복성 재판”이라며 법관 탄핵을 주장했다. 성 부장판사는 당시 법원에 신변 보호 요청을 하기도 했다.

정 교수의 법정구속 이후 정 교수 재판부를 탄핵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 동의 수도 40만명을 넘어섰다. 서울고법의 부장판사는 “판결을 한 판사는 더는 말을 할 이유가 없고, 오로지 정치적으로만 판결이 해석되는 상황”이라며 탄핵 청원 후폭풍을 우려했다.

이수정·정진호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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