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복귀엔 입 싹 닫았다, 파워 페부커 이재명 침묵 왜

하준호 2020. 12. 28.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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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측 전면전 치달은 10월말 이후
102건 페북 글에 추·윤 언급 안해
정치권 "중도층 흡수 전략" 분석

이재명 경기지사는 지난 성탄절(25일) “예수께서 오실 수 있다면, 이 순간에도 방역 일선에서 분투하고 계신 모든 분들의 곁으로 오시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페이스북에 걸었다. 격정적 메시지가 많던 그의 SNS는 이날 윤석열 검찰총장의 직무 복귀로 들끓던 여권 전반과는 동떨어진 분위기였다. 주말 사이에도 26일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의 소비 진작 효과를 저평가하는 기사에 대한 반박성 글 한 건만 올라왔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하루에도 많게는 4건의 페이스북 글을 올리는 '파워 페부커'지만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갈등과 관련한 이슈에는 침묵을 유지해 왔다. 이 지사가 지난 21일 경기도청에서 코로나19 3차 대유행 확산 방지를 위한 긴급방역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이 지사는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페이스북에 글을 쓰는 ‘파워 페부커’다. 페이스북은 정치·경제·사회를 넘나드는 현안에 대한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풀어내는 창구다. 그러나 올 하반기 정치권 최대 이슈였던 이른바 ‘추미애(법무부 장관)·윤석열(검찰총장) 사태’에 대해서만큼은 이 지사는 일언반구도 없다. 추·윤 갈등이 전면전으로 치달았던 국회 대검찰청 국정감사(지난 10월 22일) 이후 이 지사가 올린 총 102건의 글 중 ‘검찰’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건 8건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범의 필요성을 언급한 글을 빼면 4건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의 실형 선고나 자신의 무죄 선고 등을 들며 여권이 주장하는 ‘검찰개혁’의 당위성을 제도 차원에서 지지하는 내용이었다. 검사들이 추 장관의 인사권·수사지휘권 행사가 부당하다고 반발하던 시기에 검찰을 향해 “잘못된 특권을 지키려 하느냐”고 일갈한 게 추·윤 갈등 국면에서 보인 가장 적극적인 개입이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左), 윤석열 검찰총장(右). 뉴스1

이 지사는 ▶추 장관이 윤 총장 징계를 청구하면서 직무정지를 명령했을 때(11월 24일) ▶법원이 직무정지에 대한 집행정지를 결정해 윤 총장이 복귀했을 때(12월 1일) ▶법무부 검사징계위가 윤 총장에게 정직 2개월을 처분했을 때(12월 16일)에도 침묵을 택했다. 이 지사와 가까운 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지사도 법률가다. 윤 총장 징계 과정의 법적·절차적 정당성 측면에서 나름의 생각이 있지 않았겠느냐”며 “제도적 차원에서 공수처 설치나 검찰개혁에 동의하면서도 추·윤 갈등엔 말을 삼갈 수밖에 없던 이유가 거기에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치권에선 법률가적 소신이라기 보단 ‘전략적 침묵’이란 분석도 나온다. 향후 당내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주류인 친문 진영과의 화학적 결합을 기대하기 어려운 이 지사 입장에선 문재인 정부에 비판적인 중도층과 진보층(정의당 지지층)을 흡수해 본선 경쟁력을 확인시키는 게 친문 극성 지지층(문파)의 호응 얻는 것보다 우선 과제일 수 있다. 민주당의 한 전략통 의원은 “문 대통령이 이미 사과와 함께 절제된 검찰권 행사라는 원론적 입장으로 정리를 한 마당에 이 지사가 무슨 메시지를 내놔도 이 지사에게 득될 게 없다”고 말했다. 법원이나 검찰에 날을 세워도 문파들의 호응을 얻을 시긴 지났지만 자칫 잘못하면 중도층이나 반문(反文) 지지층이 등을 돌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낙연vs이재명.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실제 리얼미터가 추 장관 사의 표명(12월 16일) 이틀 뒤인 지난 18일 실시한 추 장관과 윤 총장 동반사퇴 관련 여론조사 결과 ‘윤 총장의 사퇴가 필요하다’는 응답은 민주당 지지층에서 78.9%로 높았지만, ‘지지 정당 없음’(21.7%)이나 무당층(22.4%)에서는 낮았다. 문 대통령 국정운영에 대해 ‘잘한다’는 응답자 사이에선 윤 총장 사퇴 주장이 83.6%였지만, ‘잘못한다’는 응답자 사이에선 22.5%였다. 이 지사 측 관계자는 “인기에 영합하려면 추·윤 갈등에 참전하는 게 가장 좋겠지만, 이제 와서 친문 지지층에 잘 보이겠다고 나설 수는 없지 않느냐”며 “이 지사도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국민 전체를 보고 가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추·윤 갈등 국면에서 대통령과 함께 하락세를 겪은 이낙연 대표와 달리 지지율을 수성해 온 것도 침묵 행보의 성과로 평가된다. 이 지사는 각종 여론조사 업체의 월간 차기 정치지도자 선호도 조사에서 이낙연 대표를 오차범위 내에서 앞서며 20% 안팎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수도권의 한 초선 의원은 “추세로 보면 이 지사는 상승 국면에서, 이 대표는 하락 국면에서 소강상태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여론조사 전문가인 이준호 에스티아이 대표는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4·7 재·보궐선거 등 중도층 여론에 영향을 줄 정치 이벤트에 따라 이 지사 지지율도 달라질 것”이라며 “그동안엔 코로나19 대응에 집중하면서 보폭을 키우지 않는 게 현명한 처신”이라고 말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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