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 대중화.. 영화 배우·감독을 드라마로 불러들인다

박민지 2020. 12. 26.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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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해외 진출 발판 넷플릭스 방송사선 현실화 못한 장르 도전
넷플릭스 대중화 등을 이유로 스크린에서 활약했던 배우들이 안방극장으로 돌아오고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JTBC ‘허쉬’에 출연 중인 황정민, 드라마 ‘카지노’로 24년 만에 드라마행을 택한 최민식, 드라마 ‘인간실격’ 출연을 검토 중인 전도연,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수리남’으로 돌아오는 하정우. 각 제작사 제공


“내가 무슨 기사를 써.” 뒷방 고인물 신세가 된 한준혁은 이런 말을 아무렇게나 내뱉으며 당구장을 전전한다. 그는 펜대보다 큐대를 잡는 게 자연스럽고, 노트북보다 술잔을 더 아끼는 기자다. 하지만 그에게도 잘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기사도 장사고, 언론사도 회사지.” 한준혁의 대사가 유독 뼈아프게 다가오는 건 배우 황정민의 연기 내공 덕이다. JTBC ‘허쉬’는 8년 만에 안방에 돌아온 황정민의 드라마 복귀작이다.

1000만 관객을 모으며 스크린에서 활약했던 배우들이 안방극장으로 반경을 넓히고 있다. 지난달 전해진 최민식의 드라마 복귀 소식은 업계를 흔들었다. 1997년 드라마 ‘사랑과 이별’ 이후 무려 24년 만이다. 그의 차기작으로는 드라마 ‘카지노(부제)’가 물망에 올랐다. 배우 전도연은 드라마 ‘인간실격’ 출연을 검토하고 있다. 확정하면 tvN ‘굿와이프’ 이후 5년 만의 복귀다.

이런 변화는 배우만 겪는 게 아니다. 영화감독도 드라마를 눈여겨보고 있다. 드라마 ‘카지노’는 영화 ‘범죄도시’로 이름을 알린 강윤성 감독이 메가폰을 잡는다. 드라마 ‘인간실격’도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를 만든 허진호 감독의 작품이다. 영화 ‘부산행’ 연상호 감독은 차기작으로 드라마 ‘지옥’을 선보일 예정이고, 영화 ‘수상한 그녀’의 황동혁 감독은 드라마 ‘오징어 게임’으로, 영화 ‘악마를 보았다’를 만든 김지운 감독은 드라마 ‘미스터 로빈’으로 돌아온다.

변화 이유는 OTT 대중화로 설명할 수 있다. 그 중심은 넷플릭스가 받치고 있다. 현재 한국 드라마는 넷플릭스를 발판으로 세계에 진출하고 있고, 그 성과도 상당하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의 경우 까다로운 심의 기준 등으로 방송사에서는 현실화하지 못했던 장르에 도전할 수 있다는 강점을 지닌다. 영화 ‘미쓰 홍당무’ ‘비밀은 없다’를 만든 이경미 감독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을 공개한 후 “극장용 상업영화로 만들었다면 절대 시도하지 못했을 장면이 많다”고 전했다. 이런 이유로 대표적인 1000만 배우 하정우가 출연하는 드라마 ‘수리남’도 얼마 전 넷플릭스에 둥지를 틀기로 했다고 알렸다.

방송사 드라마도 OTT 덕에 경쟁력이 높아졌다. OTT를 통한 동시 스트리밍이 가능해졌고, 그 덕에 업계 경쟁이 치열해졌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건 영화나 드라마 같은 장르가 아닌 콘텐츠 자체의 질이라는 점이 명확해졌다. 작품의 완성도가 최우선 과제가 되면서 공고하던 16부작 관행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의 경우 최대 10부작으로 제작하고 이후 반응에 따라 시즌을 이어가는 식이다. 방송사도 흐름을 이어받았다. tvN 8부작 ‘산후조리원’이 흥행에 성공하기도 했다.

여러 시도와 도전 덕에 지금의 드라마가 영화 못지않은 소재의 다양성과 표현의 확장성을 지니게 된 상황에서 코로나19 여파로 올해 영화 산업이 사실상 붕괴됐다는 시대적 배경이 맞물렸다. 영화의 경우 드라마보다 해외 로케이션 촬영 등이 많아 제약이 있었고, 영화관에 갈 수 없던 사회 분위기상 개봉이 취소·연기되는 상황이 지속했다. 계획했던 작품들이 경제난, 코로나19 상황 등을 이유로 줄줄이 제작 중단됐다.

따라서 영화배우나 감독으로서는 밀도나 완성도를 이유로 영화를 굳이 고집할 이유가 없어졌다. 허진호 감독은 “긴 호흡의 드라마를 통해 서사를 더 깊고 세심하게 풀어 보고 싶었다”며 “현시대가 원하는 콘텐츠의 방향성은 영화와 드라마라는 장르보다는 신선하면서도 사회적인 공감과 인문학적 깊이가 통하는 웰메이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백창주 씨제스 대표는 “플랫폼이 다양해지고 드라마 형식 또한 자유로워져 영화감독들이 드라마에 진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넷플릭스가 영화보다 드라마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도 장르의 경계를 느슨하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 OTT 수익은 구독자 수에서 비롯된다. 2시간 분량의 영화 한 편으로는 투자한 제작비 대비 구독자 유치에 한계가 있다. 따라서 넷플릭스는 방송사 드라마보다 짧고 영화보다는 긴 시리즈물로 연재하면서 새로운 경험과 풍부한 볼거리를 선사하는 방식을 택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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