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상을 공개합니다"..재택근무중 카메라 켜 놓는 사람들

이민정 2020. 12. 20.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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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생명공학 연구원으로 일하는 워킹맘 다이아나 칼보 마르티네즈(35)는 재택근무를 하는 날이면 반드시 오후 8시 책상 앞에 앉는다. 육아와 집안일에 매진하느라 밀린 일 처리를 위해서다.

그런데 특이한 점이 있다. 노트북 화상 카메라를 켜고 수십 명의 낯선 사람들에게 자신이 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들은 개인 공간에서 자유롭게 일하면서 온라인 화상회의 프로그램으로 일하는 모습을 공유하는 공간 플랫폼, 온라인 코워킹(co-working) 스페이스를 사용하는 중이다.

화상 회의 플랫폼 줌(Zoom)을 이용해 비대면 모임을 하고 있는 사람들. [AP=연합뉴스]

전 세계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장기화하면서 온라인 코워킹 스페이스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온라인 공간에 모여 정해진 시간 동안 각자 일하는 모습을 카메라로 생중계하는 플랫폼인데, 인기가 꽤 높다.

2010년 중반에 등장한 이 플랫폼은 올해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늘면서 호황을 맞고 있다. 초창기 프리랜서가 주요 이용객이었다면 최근에는 기업가, 변호사 등 전 세계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찾고 있다. 2016년부터 미국 뉴욕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커브스 데이’의 경우 올해 상반기 매출이 전 분기 대비 800%가 늘었다고 한다.

온라인 코워킹 스페이스 참여 방식은 간단하다. 약속한 시간 동안 카메라만 켜 놓으면 된다. 업무는 반드시 회사 일만을 뜻하진 않는다. 가사가 될 수도 있고, 취미 생활이 될 수도 있다. 일의 능률을 올리고 싶을 때면 언제든지 참여할 수 있다.

언뜻 감시 카메라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정해진 시간에,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진다는 게 차이다. 이용객들은 “오프라인 사무실 책상에서 동료들과 마주 보고 앉아 근무하는 상황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규칙적인 생활습관 기르고, 외로움 극복
온라인 코워킹 스페이스를 이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규칙적인 생활 유지다. 봉쇄령으로 집에만 머물다보니 불규칙한 습관이 들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참가자들과 업무 시간을 맞춰 일하면 일상이 느슨해지지 않는다는 게 이용객들의 평가다.

미국의 한 스포츠 강사가 코로나19로 체육관이 폐쇄되자 집에서 아들과 함께 영상을 찍어 회원들과 공유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싱가포르의 유튜버 린디 보테스는 지난 4월 봉쇄령으로 집에 머물 때 온라인 코워킹 스페이스의 도움을 받았다.

보테스는 “온종일 집에 있다 보니 낮과 밤이 뒤바뀌었는데, 사람들과 같은 시간에 만나 업무를 하면서 봉쇄 전 생활 패턴을 되찾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고립됐다는 생각에 불안했는데, 온라인에서 만난 사람들과 소통하며 우울감도 극복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카메라와 낯선 사람이 집중력 높여
마르티네즈는 처음 이 서비스를 이용할 때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는 게 두려웠다고 한다.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업무하는 상황도 익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니 혼자 일할 때보다도 깊게 집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6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코로나19로 미용실이 봉쇄되자 한 미용사가 줌을 통해 고객에게 머리 자르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AP=연합뉴스]

전문가들은 그 원인이 카메라에 있다고 설명한다. 영국의 비즈니스 심리학자 펠리시티 리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낯선 이가 지켜보는 환경은 적당한 책임감을 만들고, 책임감은 집중력을 끌어올려 업무 효율도 올라간다”고 설명했다.

아는 사람이 아닌 낯선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윌리엄 듀건 콜럼비아 경영대학 교수는 “안면이 있는 사람과 일할 때는 평가에 민감해진다. 자신의 이미지와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이다. 하지만 서로 모르는 남일 때에는 평가에 대한 압박이 없기 때문에 일에 적극적으로 몰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능동적 업무 주기 만드는 게 중요
온라인 코워크 스페이스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효율적으로 업무 시간을 구성한 서비스 기업들도 늘고 있다. 이들은 집중력과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업무 수행 주기’ 서비스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미국에 본사를 둔 울트라 워킹은 30분 업무, 10분 휴식을 2시간 동안 반복하도록 했다. 진행자가 화상회의 플랫폼에 업무 방을 만들어 놓으면 참가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아무 때나 참석한다. 업무 시작 전에는 모두가 “사이클 온(Cycle on!)”을 외치고, 업무 시간이 끝나면 진행자가 종을 울려 다 함께 휴식을 취한다.

미국의 온라인 코워킹 스페이스 서비스 기업 '울트라 워킹'이 제공하는 업무 수행 주기 프로그램. 30분 업무, 10분 휴식을 2시간 동안 반복한다. [울트라워킹 홈페이지 캡처]

또 다른 기업 케이브 데이와 포커스 메이트는 비슷한 업무를 수행하는 참가자들을 모아 정보 교류를 돕는다.

호주 심리학자 조지 몰로나스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처럼 일정한 시간 동안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방식은 산만함과 과몰입을 막고, 심리적 피로감을 낮춰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게 한다”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온라인 코워킹 스페이스에 깊게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개인 시간을 고정된 틀에만 맞출 경우 수동성이 강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업무의 종류와 복잡성에 따라 시간 활용 방법이 달라지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능동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호주의 경영심리학자 조지 멜로나스는 “사람마다 집중력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맞는 업무 수행 주기를 찾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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