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금' 즐기는 교도소 성범죄자들..못보게 하면 "소송 건다"

김민중 2020. 12. 20.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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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의 한 교도소 전경. 연합뉴스

“교도소에 수감한 성범죄자가 야한 사진을 돌려보며 낄낄대는 걸 두고 보기가 고통스럽네요. 막고 싶어도 방법이 없어 답답합니다. 이 현실을 피해자가 알면 어떤 심정일까요. 제 어린 딸에게 미안한 마음마저 듭니다.”(A교도관)
교도소에서 성범죄자들이 성인용 ‘19금(禁)’ 출판물(잡지·만화책 등)을 버젓이 즐기고 있다. 교정 당국에서 제동을 걸 방법도 마땅치 않다. 죄를 뉘우치고 교화되기는커녕 그릇된 성 관념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군대처럼 교도소서도 ‘맥심’ 인기
20일 법무부 교정본부에 따르면 현재 전국 교도소·구치소에서는 모든 성인 죄수에게 19금 출판물 구독을 허용하고 있다. 교도소에 선정적인 내용의 잡지나 만화책 등을 자유롭게 들여와 즐길 수 있다는 얘기다. 성폭행·성추행을 저지른 성범죄자도 예외는 아니다. 성범죄자가 아닌 범죄자가 성인용 출판물을 들여와 성범죄자에게 공유하는 경우도 많다. 수용동 한 방에선 여러 종류 범죄자가 함께 생활하기 때문이다.

소년수의 경우 성인물 구독을 차단한다. 하지만 잡지 ‘맥심’처럼 성욕을 자극하면서도 ‘전체 구독가’인 잡지는 무사통과다. 교정본부 관계자는 “맥심이 제일 인기 많은 잡지 중 하나다”라며 “성인 죄수도 맥심을 많이 본다”고 설명했다.


법원 “막을 수 없다”
2017년 말 이 문제가 불거진 뒤 교정본부는 일선 교도소에 지침을 내려 성인물 반입을 불허했다. 그러나 2018년 들어 상황이 반전했다. 대구고법은 2018년 5월 강간 등 상해죄로 징역 13년형을 복역 중이던 A씨가 경북 북부 제1 교도소장을 상대로 낸 영치품 사용 불허 처분 등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확정했다. A씨가 택배로 들여온 잡지 ‘누드스토리 2017년 5월호’에 대해 교도소가 “수용자 교정교화에 적합하지 않은 음란한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로 못 보도록 한 조치가 부당하다는 취지다.

같은 해 12월 대구지법은 A씨가 경북 북부 제2 교도소장을 상대로 낸 불허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고, 그대로 확정됐다. 교도소가 잡지 ‘스파크 2016년 11월호’ ‘스파크 2018년 7월호’, 책 ‘웰빙 나이트를 위한 101가지 색다른 즐거움-LOVE 101’에 대해 내린 불허 처분을 취소한다는 게 요지다.

두 판결 모두 형집행법 제47조 2항을 주요 근거로 삼았다. 해당 조항에 따르면 교도소장은 수용자가 구독을 신청한 출판물이 출판법에 따른 유해간행물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구독을 허가해야 한다. 간행물윤리위원회가 유해간행물로 지정하지 않으면 교정본부가 걸러낼 길이 없다는 의미다. 누드스토리, 스파크 등이 유해간행물로 지정돼 있지 않아 교도소장은 구독을 허가해야 했다.

다만 법원은 “교정본부 주장대로 성범죄자인 A씨가 다소 선정적이고 음란한 내용을 담고 있는 해당 잡지 등을 소지하는 경우 교화, 건전한 사회복귀를 해칠 우려가 있다”면서도 “그 공익은 입법을 통하여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판시했다. 입법부가 강화한 법령에 따라서만 제재할 수 있다는 취지다.

국회는 법 개정에 소극적이다. 2017년 9월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형집행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했지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교정본부가 실제 죄수들이 즐기는 19금 출판물들을 싸 들고 국회의원들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교정본부 관계자는 “의원들이 여론의 관심이 쏠리는 수사·재판 단계에만 신경을 쓰고 교정 단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수감자들 “못 보게 하면 소송”
교도소엔 정식 발행한 성인물뿐 아니라 불법 제작한 성인물을 반입하는 문제도 심각하다. 교정본부는 이를 막기 위해 지난해 11월 외부 출판물 반입을 불허하고 교도소 내에서 출판물을 구매하는 경우만 허용하도록 했다. 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가 올해 10월 “지나치게 수용자의 권리를 제한한 조치”라며 제동을 걸었다.

이런 상황은 전국 죄수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교도관들이 임의로 성인물 반입을 막으려 하면 죄수들이 “소송을 걸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경우가 많다고 교정본부는 설명했다. 교도소에 수감 중인 성범죄자를 대상으로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등의 교육을 하는 박정란 후원과책임의공동체 대표는 “성인물을 보지 말라고 이야기하면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데 왜 그렇게 말하느냐’는 반문이 돌아와 말문이 막힌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한 시민이 ‘텔레그램 n번방 성착취’ 사건 범죄자를 엄벌에 처해달라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뉴스1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성범죄자가 출판물 등 간접적인 방법으로 성욕을 충족하면 왜곡된 성 관념이 더욱 악화해 교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성과 관련된 출판물은 보지 않도록 형집행법 등 관계 법령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민중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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