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후임에 이해찬을" 문파는 왜 이해찬을 불러냈나
“검찰개혁의 의미를 분명하게 정리하셨다.”
지난 16일과 17일 극성 친문 지지층이 장악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높이 평가하는 글들이 무수히 올라왔다.
지난 15일 이 전 대표가 노무현재단 유튜브 채널의 ‘이사장들의 특별대담’에 출연해 “180석의 힘이 뭔지 이번에 똑똑히 보여줬다”고 말한 것에 대한 반응이었다. 이 전 대표는 “단독으로 공수처법 같은 걸 (개정)할 수 있는 의석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며 “(공수처법 통과와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로 검찰개혁의) 두 개의 축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커뮤니티에는 “이해찬 전 대표를 추 장관 후임으로 추천하자” “이 전 대표라면 검찰개혁을 반대하는 검사들을 제압할 수 있다”는 글도 이어졌다.
이 전 대표는 당 대표 시절에도 당과 진영의 의견이 흩어질 때마다 특유의 카리스마로 분란을 잠재우곤 했다. 지난해 9월 조국 사태가 불거져 의원단이 친조국과 반조국으로 갈라질 조짐이 보이자 이 전 대표는 함구령을 내렸다. 결국 “청년이 느꼈을 불공정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 좌절감을 깊이 있게 헤아리지 못했다”(지난해 10월 말)는 사과로 이어지긴 했지만 단일 대오를 유지한 게 총선 승리의 원동력이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총선 직후인 지난 5월 윤미향 의원의 정의기억연대 회계부정 의혹이 터지자 “신상털기식 의혹 제기에 굴복해선 안 된다”며 방어선을 그었다. 6월엔 여권발 사퇴압박이 시작되며 윤 총장의 정치적 존재감이 되레 커지자 “이름도 거론하지 말라”며 입단속에 나섰고 8월 전당대회까진 그 효과가 이어졌다. 익명을 원한 정치 컨설턴트는 “오랜 기간 진영 내 전략가 역할을 해 온 이 전 대표는 지지층 내부에 상황을 정의하고 목표를 제시하는 메시지를 던져 왔다”며 “이번에도 그런 효과를 일부 거둔 셈”이라고 말했다. 이 전 대표와 가까운 초선 의원은 “추 장관 후임설은 현실성은 없지만 검찰개혁이 목표에 성큼 다가가면서 이 전 대표의 과단성이 재조명받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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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가 먼저 찾은 이해찬
이 전 대표는 퇴임 기자간담회(지난 8월 28일)에서 “현역을 떠나 당원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고 말했다. 정계은퇴 선언이 아닌 게 분명했다. 동북아평화경제협회 이사장을 맡아 여의도 사무실과 국회도서관을 오가며 자서전을 집필한다는 게 이후 공개된 동선의 전부다. 김부겸 전 의원 등 사회 운동 시절부터 오랜 세월을 함께 해 온 인사들을 두루 만나며 옛 기억의 오류를 바로잡고 있다고 한다. 이 전 대표 측 인사는 “자서전 집필을 위한 활동이지만 정치적 자문을 구하는 이들에게 조언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표면적으로 일선에서 물러난 듯 보이던 그는 지난달 말 존재감을 드러냈다. 왕이(王毅)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방문했을 때다. 왕 부장은 2박3일 방한 일정 중 가장 알토란 같은 시간을 이 전 대표와의 만찬에 할애했다. 왕 부장이 만찬을 청한 건 민주당 인사 중 이 전 대표가 유일했다. 민주당의 한 다선 의원은 “이 전 대표는 왕 부장과 소통이 되는 유일한 민주당 인사”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여권 핵심 인사는 “왕 부장이 단순히 예전에 만난 적 있다는 이유로 이 전 대표를 찾았겠느냐”며 “이 전 대표의 막후 영향력이 여전하다는 걸 중국도 아는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상반기 연달아 열리는 당대표·원내대표 선거 출마 희망자들도 이 전 대표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차기 당대표 후보군에 속하는 우원식 의원은 최근 이 전 대표에게 자신의 후원회장을 부탁해 허락을 받았다. 이 전 대표 체제에서 수석사무부총장을 지내 ‘친이해찬계’로 꼽히는 김경협 의원은 차기 원내대표 선거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다. 수도권의 한 중진 의원은 “지난 전당대회에도 ‘누가 이심(李心·이 전 대표의 의중)을 얻었느냐’는 게 관전 포인트였다”며 “이 전 대표의 낙점은 상당수 친문 지지층에 좌표로 기능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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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요청 마다치 않을 분”
차기 대선 후보 선출 과정에서도 이 전 대표의 선택은 작지 잖은 변수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계속된다. 그의 선택에 따라 현재 차기 대선 후보 선호도에서 박빙의 경쟁을 보이는 이낙연 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경기지사 중 한 사람에게 힘이 실릴 수도, 아직은 지지율이 미미한 제3주자가 급부상할 수도 있다고 보는 인사들이 적지 않다.
최근 지지층 이탈이 가속화되면서 당 안팎에선 벌써 이 전 대표의 역할론을 거론하는 이들이 있다. 청와대 출신의 초선 의원은 “이 전 대표가 전면에 나설 경우는 두 가지다. 선거전략에 차질이 생기거나, 분란이 커져 조정이 필요한 경우”라며 “그런 상황이 되면 구원투수론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전 대표와 가까운 한 의원은 “정치일선에 물러난 만큼 선대위원장 등의 공식적 역할로 컴백하는 건 본인이 원치 않을 것”이라면서도 “공식직책 없이도 대선 국면엔 그의 막후 역할이 작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효성 기자 kim.hyos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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