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의 '슬기로운' FA시장 대처법

이준목 2020. 12. 17.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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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허경민·정수빈 계약 성사, 핵심 전력 지키는 데 성공

[이준목 기자]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는 2010년대 이후 3회의 한국시리즈 우승과 4회의 준우승을 기록하며 KBO리그를 대표하는 왕조로 군림했다. 하지만 올겨울은 두산에게 유독 힘든 시간이 될 것으로 예상됐다. 모기업의 재정난 속에 6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로 누적된 선수단의 피로, 해마다 주축 선수들의 계속된 외부 유출 등으로 탄탄하던 두산의 '화수분 야구'에도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특히 올해는 은퇴 선수를 제외하고도 무려 7명의 주전급 선수가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게 됐다. 현실적으로 두산이 이 선수들을 모두 잡는 건 무리로 보였다. 일각에서는 전통적으로 내부 FA를 잡는데 인색했던 구단의 성향으로 볼 때, 올겨울은 주축 선수들의 연쇄 이탈로 두산 왕조의 본격적인 몰락이 시작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두산의 FA시장은 예상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물론 오재일(삼성)이나 최주환(SK)처럼 다른 팀으로 떠나는 선수를 막지 못했지만, 또 다른 FA대어였던 허경민과 정수빈을 잔류시키며 다음 시즌을 대비한 최소한의 핵심 전력은 지키는 데 성공했다.

심지어 '실탄'이 부족할 것이라는 전망과 달리, 허경민에 최대 7년 총액 85억(구단 역대 FA 최고액, 국내 역대 최장 FA계약기간), 정수빈에 6년 총액 56억 원이라는 대박 계약까지 선사했다. 두 선수를 잡는 데 들인 돈만 무려 141억이다. 최근 FA시장의 거품을 줄이자던 최근의 야구계 분위기를 감안할 때 두산의 행보는 더욱 의외라는 평가다.

두산은 올해 2군구장이던 이천 베어스파크를 담보로 약 290억 원 정도를 차입했다. 두산은 이 자금을 올해 FA시장에 투자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물론 모기업의 허락이 없었다면 구단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은 결코 아니다. 허경민이나 정수빈을 잡는데 거액을 썼다는 것을 그룹 수뇌부가 모를 리 없다. 그만큼 두산이 야구단 운영에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두산이 FA시장에 임하는 자세

두산이 이번 FA시장에 임하는 자세를 살펴보면 전형적인 '낄끼빠빠(낄 때 끼고 빠질때는 빠진다)' 전략으로 요약된다. 허경민과 정수빈의 계약 규모를 보면 오버페이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올 수 있지만, 핵심은 어차피 '총액보다 계약기간'에 있다. 두 선수 국내 FA시장에서 일반적인 4년 계약이 아닌 6~7년에 이르는 장기계약을 제시받은 게 협상에서 중요한 변수가 됐다.

두 선수 모두 90년생(30세)으로 FA치고는 비교적 젊고,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이라는 메리트가 크게 작용했다. 선수들은 기왕이면 장기계약에 더 안정감을 느낀다. 이적팀들은 연봉이나 옵션은 몰라도 계약기간은 위험부담을 피해서 되도록 줄이려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3루수인 허경민과 외야수 정수빈 모두 장타력에서 아쉬운 점도 있지만, 각 포지션에서 수비나 주루 등 기타 전술적인 가치 면에서 현재 두산에게 대체불가한 전력이라는 점도 과감한 투자를 단행할 수 있었던 배경이었다.

오재일과 최주환의 경우에는 조금 상황이 달랐다. 두산에게 이들의 공백이 큰 손실임은 분명하지만 어차피 처음부터 잔류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분위기였다. 이미 FA시장 개막 전부터 두 선수를 노리는 구단들이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고, 냉정히 말해 두산 입장에서는 SK나 삼성만큼 오재일-최주환의 필요성이 무조건 잡아야 할 우선순위는 아니었다고 볼 수 있다.

나이를 감안해도 두산이 두 선수를 잡는 데 굳이 무리할 이유는 없었다. 두산은 원래 30대를 훌쩍 넘긴 베테랑 FA에 대해서는 계약에 신중한 편이었다. 오재일은 86년생으로 34세이고 이미 2~3년 전부터 장타력은 조금씩 하락세였다. 최주환은 88년생으로 32세다. 더구나 수비력 문제 때문에 두산에서 풀타임 주전으로 기용된 것은 2~3시즌 정도뿐이다.

두산 입장에서는 비록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이들을 대체할만한 자원이 당장 없는 것은 아니다. 오재일이 맡던 1루수는 김재환과 호세 페르난데스가 돌아가며 맡을 수 있다. 2루수에는 최주환과 출전시간을 양분하던 베테랑 오재원이 있으며 상황에 따라 1루수도 가능하다. 다만 오재원은 몇 년간 기량과 내구성에서 계속 하락세이고, 페르난데스는 아직 재계약 여부가 확정되지 않았다. 공격력에서 올해 32홈런을 합작한 최주환과 오재일의 공백을 어떻게 메울지도 앞으로 고민해야 할 숙제다.

이제 두산은 아직도 남아있는 이용찬-김재호- 유희관이라는 내부 FA들과의 계약 문제를 매듭지어야 한다. 관건은 김재호다. 35세로 적지 않은 나이는 두산의 FA 시장 전략을 감안할 때 걸림돌이지만, 올해 포스트시즌에서 증명되었듯 기량과 팀공헌도 면에서는 여전히 리그 최정상급 유격수다. 김재호에게 관심을 보이는 타 구단들이 있다는 소문이 나오고 있는만큼 만일 경쟁이 붙게될 경우, 두산의 자금력이 얼마나 여유가 남았을지가 변수다.

유희관은 8년 연속 10승에 성공했지만 최근 구위가 갈수록 하락세를 띄고 있는 추세가 명백하다. 장원준의 사례도 있는 만큼 두산으로서는 계약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이용찬은 올해 6월 팔꿈치 수술로 한 시즌 가량을 쉬었다는 위험 요소를 안고 있기에 역시 구단이 협상에서 좀더 주도권을 가지고 가게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는 '선택과 집중'을 바탕으로 두산은 FA시장에서 나름 선방하고 있다. 구단의 자존심과 전력유지라는 두 마리 토끼 사이에서 나름의 균형을 찾아가고 있는 두산의 올 겨울 FA시장은 과연 다음 시즌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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