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남자의 특별한 여행

장혜령 2020. 12. 11.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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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나의 인생여행>

[장혜령 기자]

 영화 <나의 인생여행> 포스터
ⓒ (주)라이크콘텐츠
 
키트(헨리 골딩)는 여섯 살 때 가족과 베트남을 떠나 영국으로 이주했다. 30년 만에 베트남을 찾은 그는 희미해진 기억을 더듬어 친구를 만나고 예전에 살던 동네를 돌아다닌다. 자신과 부모의 흔적을 찾아보지만, 기억나는 것도 없을뿐더러 상전벽해가 된 도시를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세월의 괴리감을 좁히며 천천히 호치민과 하노이를 체험한다. 마치 관광객처럼 호치민 구석구석을 제3자의 시선으로 걷는다.

강산이 세 번 변하는 긴 시간 동안 호치민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옛날 건물이나, 자주 놀던 연못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개발이란 미명 아래 높은 빌딩 숲이 들어섰다. 전통과 현대가 뒤섞인 모습은 오래전 영국 문화와 역사를 몸에 익혔지만 영국인도 베트남인도 아닌 키트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겉모습은 비슷하지만 모국어를 하지 못하는 키트는 낯선 공기와 분위기, 언어가 혼란스럽기만 하다. 부모를 잃고 혼자만 덩그러니 남은 고아처럼, 고국에서도 그저 이방인일 뿐이다.

가족은 30년 전 전쟁이 끝난 후 남북으로 갈린 베트남 역사의 산증인이다. 남부 관리 쪽에서 일하던 아버지 때문에 베트남 통일 후 의심을 받아 부랴부랴 영국으로 떠났었다. 그래서일까. 베트남에 대한 작은 기억마저도 조심스럽고 생경하다. 다행히 일주일 후면 형의 가족이 도착한다. 그때까지 키트는 부모님의 유골을 모실 적당한 곳을 물색하며 호치민에서 하노이까지 짧은 여행을 하기도 했다.
  
 영화 <나의 인생여행> 스틸컷
ⓒ (주)라이크콘텐츠
 
한편, 그 사이 미국인 루이스(파커 소여)를 만나며 급격하게 친해진다.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후 호감을 쌓아 갔다. 하지만 루이스의 아버지가 참전 군인이었던 사실을 알게 된 후 서먹해져 버린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후손으로 만난 두 사람. 운명의 장난은 참으로 가혹했다.

나와 가족, 국가의 역사의 연결성

영화는 30년 전 베트남의 역사와 개인의 역사를 동일선상에 놓는다. 베트남 전쟁은 같은 민족끼리 남과 북으로 갈려 싸운 전쟁이다. 미국의 참견으로 라오스, 캄보디아까지 확대되어 큰 피해를 보았던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은 역사다. 그래서 30년이란 시간 차이처럼 이를 잊지 못하는 세대와 이를 알 길이 없는 세대 간의 간격은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다. 영화는 키트의 눈과 목소리를 통해 두 세대의 화합을 꿈꾼다. 이념 대립, 세대 갈등, 전통 보존과 미래 개발 사이에서 적절한 화해가 이루어지기를, 엉킨 실타래를 풀어나갈 방법도 모색하고 있다.

따라서 원제가 'Monsoon' 계절풍인 것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계절에 따라 대륙과 해양의 온도 차이로 풍향이 바뀌는 몬순처럼, 어지러운 키트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하다. 이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부감 쇼트의 인상적인 오프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소음으로 뒤덮인 도로는 차와 오토바이가 어지러이 맞물리나,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부딪히지 않고 질서정연하게 이동한다. 서로 다른 모습과 정체성을 가지고 있더라도 한데 섞이고 녹아들 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영화 <나의 인생여행> 스틸컷
ⓒ (주)라이크콘텐츠
 
<나의 인생여행>은 2014년 <릴팅>으로 데뷔해 선댄스 영화제,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 노미네이트되는 등 기대되는 '홍 카우'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다. BBC 필름이 6년간 공들여 제작 지원했다. 캄보디아계 중국인인 홍 카우 감독은 영화를 위해 실제 30년 만에 어린 시절 살던 나라를 방문했고, 그때 겪었던 느낌을 녹여내 영화를 완성했다. 문화, 성(性) 정체성, 디아스포라를 주제로 한 잔잔한 로드무비다.

무엇보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부탁 하나만 들어줘>, <라스트 크리스마스>, <젠틀맨>으로 유명한 '헨리 골딩'의 색다른 얼굴을 만날 수 있다. 아픈 과거를 가진 섬세한 내면 연기가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베트남의 현 모습과 잘 어울린다.

또 다른 관전포인트는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와 말레이시아계 영국인인 헨리 골딩의 문화적 정체성이 반영된 소속감의 부재다. 우리와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베트남, 연꽃차를 만드는 장관까지 더해져 실제 베트남에 다녀온 것 같은 착각을 들게 만드는 분위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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