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통 따라도 개혁" 문 대통령, 검찰에 경고
윤석열 감찰·징계위 앞두고 발언
검사들의 집단행동 겨냥한 듯
야당 "대통령, 검찰 백기투항 종용"
여권 고위 관계자 "정 총리 발언에
문 대통령, 고민 많습니다고 답해"
총리실 일각 "윤 총장 퇴진만 건의"
문재인 대통령은 30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소속 부처나 집단의 이익이 아니라 공동체의 이익을 받드는 선공후사의 자세로 위기를 넘어, 격변의 시대를 개척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또 “진통이 따르고 어려움을 겪더라도, 개혁과 혁신으로 낡은 것과 과감히 결별하고 변화하려는 의지를 가질 때 새로운 미래가 열릴 것”이라고도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4일 ‘윤석열 직무배제’ 이후 관련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날도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나 윤석열 검찰총장을 직접 거론하진 않았다. 하지만 이날 문 대통령은 “공직자들의 마음가짐부터 더욱 가다듬어야 할 때”라면서 “과거의 관행이나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급변하는 세계적 조류에서 낙오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그동안 개혁 대상으로 검찰을 지목했던 점을 고려하면, 이날 ‘선공후사’ ‘관행’ ‘낙오’ 등의 발언은 추 장관의 검찰총장 직무배제에 반발해 집단행동에 나선 검찰을 향한 우회 경고라는 관측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또 “어느덧 (한국이) G7(주요 7개국) 국가들을 바짝 뒤쫓는 나라가 되고 있다는 것을 국민들께서도 느끼고 계실 것”이라며 “혼란스럽게 보이지만 대한민국이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고,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는 자신감을 국민들께서 가져주시기 바란다”고 했다. 추 장관과 윤 총장의 갈등이 이어지고 있지만, 검찰 개혁이라는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다.
공교롭게 문 대통령의 메시지는 윤 총장 거취를 좌우할 운명의 한 주 첫날에 나왔다. 이날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재판장 조미연)가 윤 총장 직무배제 처분 효력 정지 여부 심문을 했고, 법무부 감찰위원회의 윤 총장 감찰 타당성 논의(12월 1일), 법무부 징계위원회의 윤 총장 징계 여부와 수위 결정(2일)이 이어진다.
박명호 동국대 교수(정치학)는 “이미 대통령의 입장이 나와야 할 시기는 놓치고 절차를 통한 윤 총장의 거취를 결정하는 수순에까지 돌입하게 된 상황”이라며 “특히 이날 발언이 향후 법원의 판단과 감찰위·징계위의 결정 직전에 나왔다는 점에서 향후 방향성을 시사한 발언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배준영 국민의힘 대변인도 구두논평에서 “오랜 침묵 끝에 나온 메시지는 결국 검찰을 향해 스스로 정권 앞에 굴복하고 백기투항하라는 종용”이라며 “윤 총장의 직무배제 집행정지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시점이기에 더욱 위험하다”고 비판했다. 문 대통령의 발언이 관련 절차들에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같은 당 조수진 의원도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문 대통령은 오랜 침묵 끝에 유체이탈식 발언만 내놨다”고 꼬집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페이스북에 “슬슬 본색을 드러내죠? 이게 탁현민(청와대 의전비서관)의 화장에 감추어져 있던 그(문 대통령)의 민낯입니다”라고 썼다.
“정세균, 문 대통령 만나 추미애·윤석열 동반퇴진 건의”
문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 앞서 정세균 총리와 주례회동을 갖고 추 장관과 윤 총장의 갈등 및 윤 총장의 징계 문제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여권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정 총리는 문 대통령에게 “두 사람의 갈등으로 정국 운영에 큰 부담이 이어지고 있다. 윤 총장의 자진 사퇴가 바람직하지만, 물러나지 않는다면 추 장관과의 동반 사퇴 방안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저도 고민이 많습니다”라고 답했다. 다만 총리실 일각에선 “정 총리가 얘기한 건 윤 총장이지, 절대 동반 사퇴가 아니었다”는 주장도 있다. 이처럼 전언이 엇갈리는 걸 두고 여권에선 “청와대에서 추 장관까지 함께 물러나게 할 의사가 없다는 걸 확인한 때문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추·윤 갈등’을 둘러싼 정치권의 대리전은 이날도 이어졌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검란(檢亂)으로 불리는 검사들의 집단행동은 여러 번 있었는데, 검찰의 반성과 쇄신보다는 조직과 권력을 지키려는 몸부림으로 국민의 기억에 남아 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에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추 장관과 민주당 일각에서 윤 총장을 꼭 내쳐야겠다고 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국민에게 소상히 설명해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 초선의원들이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에 들어간 지 74시간 만인 이날 최재성 청와대 정무수석과 면담이 이뤄졌다. 윤 총장 직무배제에 대한 문 대통령의 입장을 묻는 이들 의원의 질의서가 문 대통령에게 전달됐느냐는 질문에 최 수석은 “전달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윤성민·김기정·이병준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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