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진·조용신의 스테이지 도어] '오월의 광주' 그 끔찍한 비극 앞에 미사여구·변명이 필요한가

2020. 11. 28.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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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광주' 서울공연 막 내려
뮤지컬 ‘광주’의 한 장면. 이 작품은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탄생한 창작뮤지컬로, ‘임을 위한 행진곡’의 대중화·세계화 사업 일환으로 기획됐다. 서울 공연을 최근 마무리하고 광주에서 개막을 앞두고 있다. 라이브 제공


독일 작가 에리히 캐스트너는 소설 ‘날으는 교실’ 서문에서 눈물의 무게에는 어른과 아이의 차이가 없다면서도 슬픔 앞에서는 정직할 것을 단호하게 요구한다. 슬픔 앞에서 나약해지지 말라면서도 캐스트너는 한없이 다정하게, 바로 지금 슬픈 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울면 안 된다고 꿈에서조차 중얼거리는 주인공 마르틴의 이야기로 곧바로 치고 들어간다. 눈물의 무게는 공평할까? 세상에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끔찍한 비극이 있다. 고향에서 짐승처럼 사냥당해 하루아침에 백인의 노예로 전락한 아프리카 흑인들의 삶이 그러하고, 나치 시대의 유대인 학살이 그러했으며, 우리에게는 일제 시대와 6.25 전쟁이 그러했고, 더 가깝게는 1980년 오월의 광주가 그러하다.

2005년 미국 디트로이트 오페라 하우스에서는 노벨상 수상 작가인 토니 모리슨이 대본과 가사를 쓰고 작곡가 리차드 대니얼포어가 곡을 쓴 오페라 ‘마가렛 가너’가 초연됐다. 토니 모리슨의 가장 유명한 소설인 ‘비러브드’의 바탕이 된 마가렛 가너의 실화가 바탕이 됐다. 소설이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 찬 것과 달리, 오페라는 음악과 가사의 힘을 바탕으로 정공법으로 전개해 나간다.

노예제도가 서슬 퍼렇게 살아있던 시절 실존했던 흑인 노예 마가렛 가너는 자신을 성노예로 삼으려는 농장주로부터 도망치다 잡히게 되자 노예의 삶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하며 두 자식을 죽였다. 그는 자식 살인죄가 아니라 농장주의 재산을 파괴한 죄로 재판에 회부된다. 소설에서 농장주인 게인즈는 뒤늦게 자기연민과 후회에 사로잡히지만 마가렛은 그의 눈앞에서 죽음을 택한다. 토니 모리슨은 “노예 제도 그 자체보다 실제 노예가 된 인물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정서적 심리적 상황과 이를 벗어나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하는지를 밝히려 했다”고 말했다.

뮤지컬 ‘광주’가 팬데믹이라는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무대에 올라왔다. 1980년으로부터 꼭 사십 년째 되는 해라서일까, 2020년은 충격적인 ‘진실’들이 수면 위로 유난히 많이 떠 올랐다. 하지만 여전히 피해자의 기억 속에서만 뚜렷한 진실들이 말살된 증거들 속에서 단지 소문으로만 떠돌고, 책임을 져야 할 당사자는 모닝 골프를 치며 건강한 말년을 보내고 있다.

이러한 생생함 때문일까, 이 뮤지컬에는 편의대라는 편리한 설정이 등장하여 마치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함이라는 것을 군대의 ‘까라면 깐다’ 문화에 비추어 한 걸음 떨어진 듯 객관화하여 보여주려는 듯한 행동을 취한다. 이를 통해 그 당시에 광주에 투입되었던 군 장병보다 더 거대한 악이 다른 데 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의도도 드러난다. 그런데 사실상 이 작품이 가장 공을 들인 것은 편의대의 말년 병장 박한수나 악의 평범함을 상징하는 박한수의 상관 허인구가 아니라 야학교사 윤이건을 비롯한 시민군들의 구구절절한 사연들이다. 마지막까지 도청을 사수한 시민군의 정의감에 “왜?” 라는 의문을 던지는데, 죽음이 그 끝에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도청에 남았기 때문이다.

결국 뮤지컬 ‘광주’가 제시한 답은 신파다. 사연들 하나하나는 누구보다도 살고 싶은 이들인데 바로 그 이유로 먼저 간 동지를 배신할 수 없어 남았다는 것이다. 거듭 대사로 반복되는 먼저 간 동지에 대한 부채의식이 그들을 사지로 내몬다. 결국 광주와의 거리를 두기에도, 그렇다고 확 다가서지도 못한 채 의도만 떠도는 채로 뮤지컬 광주의 서울공연은 막을 내렸다.

진짜 광주에서의 공연을 앞둔 지금, 서울공연에서도 매일 매일 다른 공연인 듯 수없이 첨삭을 거듭한 과정을 생각하면 광주공연에서는 또 다른 모습의 공연을 보게 될 수도 있다. 1980년에 태어난 사람이 불혹이 되었다. 그 사이에 마흔은 흔들리지 않는 불혹이 아니라 불가분한 혹시가 너무 많은 나이가 됐다. 마가렛 가너가 도망치다 체포된 해가 1850년. 지금으로부터 170년 전이지만 마가렛 가너는 아직도 교수대의 발판을 걷어차며 격렬하게 자유를 갈망하며 자신의 목숨으로 인간임을 증명하는데 이제 40년 지난 광주에 ‘거리두기’가 필요할까? 그만큼 울었으면 됐다고, 누가, 언제, 무슨 기준으로 정해줄 것이며, 비극 앞에 어떤 미사여구와 변명이 필요한가.

이수진 공연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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