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디오스!!" 마라도나 추모객 100만 인파..주니어 불참

김태훈 2020. 11. 27.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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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오스 디에고!"'아르헨티나 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를 떠나보내기 힘든 추모객들이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통령궁 앞으로 쏟아져 나왔다.

신의 곁으로 떠난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 축구 전설을 넘어 펠레(브라질)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축구 스타로 꼽히는 선수 중 하나다.

1960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주 빈민가에서 태어나 1976년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에서 프로에 데뷔한 마라도나는 보카 주니어스(아르헨티나), FC바르셀로나(스페인), 나폴리(이탈리아) 등을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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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궁 안치된 마라도나 찾은 추모객 긴 행렬
아들 마라도나 주니어, 폐렴으로 이탈리아 병원 입원
디에고 마라도나 관 위에는 유니폼이 덮여있다. ⓒ 뉴시스

“아디오스 디에고!”


‘아르헨티나 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를 떠나보내기 힘든 추모객들이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통령궁 앞으로 쏟아져 나왔다.


27일(한국시각) AP통신 등에 따르면, 추모객들은 새벽부터 대통령궁 카사 로사다의 중앙 로비 앞에 안치된 마라도나와의 작별을 위해 수km 길게 도열했다. 추모객은 100만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라도나가 잠든 관 위는 아르헨티나 국기와 등번호 10번 유니폼이 덮였다. 추모객들은 마라도나 사진과 유니폼을 들고 마라도나의 이름을 연호했다.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대통령도 마라도나 관 위에 그의 유니폼과 셔츠를 올려놓았다.


추모 행사에 앞서 유가족들이 고인을 먼저 배웅했다. 전 부인과 자녀들을 비롯해 1986 멕시코 월드컵 당시 멤버들도 일부 참석했다. 하지만 이탈리아에 머물러있는 아들 마라도나 주니어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팬데믹 속 폐렴 증세로 입원, TV를 통해 아버지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마라도나는 지난 26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위치한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이달 초 만성 경막하혈종 진단 아래 뇌수술을 받았는데 퇴원한 지 2주 만에 세상을 떠났다. 향년 60세.


아르헨티나의 어떤 인물도 이런 지지를 받은 적이 없다.


마라도나는 이날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9대의 구급차가 도착해 응급처치에 나섰지만 이미 숨진 상태로 전해졌다.


1986 멕시코월드컵 우승 이끈 마라도나. ⓒ 뉴시스

신의 곁으로 떠난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 축구 전설을 넘어 펠레(브라질)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축구 스타로 꼽히는 선수 중 하나다.


1960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주 빈민가에서 태어나 1976년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에서 프로에 데뷔한 마라도나는 보카 주니어스(아르헨티나), FC바르셀로나(스페인), 나폴리(이탈리아) 등을 거쳤다.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출전한 A매치는 91경기(34골)에 이른다. 1979년 세계청소년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를 우승으로 이끈 마라도나는 1986 멕시코월드컵에서는 아르헨티나를 정상에 올려놓으며 MVP로 선정됐다. 마라도나는 10개의 공격포인트(5골·5어시스트) 기록을 남겼는데 이는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리오넬 메시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위업이다.


‘신의 손’으로도 기억되는 그 대회를 통해 마라도나는 ‘축구의 신’으로 올라섰다.


마라도나를 떠올릴 때, 잉글랜드와의 8강전은 두고두고 회자된다. 하프라인 부근에서 50m 이상 드리블 돌파하며 수비수 6명을 제치고 환상적인 골을 터뜨린 마라도나의 득점은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골로 남아있다. 지난해 12월 EPL 번리전에서 70여m를 질주하며 수비수 6명을 제친 손흥민(토트넘) 골과 비교되기도 했다.


클럽 축구에서도 마라도나는 영웅이었다. 마라도나는 1984년부터 1991년까지 6시즌을 이탈리아 프로축구리그 세리에A 소속 SSC나폴리(188경기 81골)에서 활약했다. 이탈리아 남부의 가난한 도시인 나폴리를 두 차례나 '세리에A' 우승으로 이끌었다. 1989년에는 유럽 최고의 무대에서 유러피언컵(현 UEFA 챔피언스리그)을 안겼다. 2017년 나폴리시로부터 명예 시민증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나폴리 시절 마피아와 얽혀 마약에 빠져든 마라도나는 1997년 10월 30일 은퇴 이후 각종 기행을 저지르며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하기도 했지만, 아르헨티나 국민들 가슴 속에 영원한 영웅으로 잠들었다.

데일리안 김태훈 기자 (ktwsc28@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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