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능력주의와 부동산

2020. 11. 27.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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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번역·출간된 두 권의 책은 공정한 줄 알았던 '능력주의'의 그늘에 주목한다.

더 큰 문제는 정권의 대응과 현실 인식이다.

지난주 출간된 '김헌동의 부동산 대폭로'엔 정권 초기 정부 인사들의 부동산 관련 발언이 모아져 있다.

정권으로선 유동성 증가와 '빚 내서 집 사라'고 했던 전 정권을 이유로 댈 수 있겠지만 스무 번이 넘는 정책에도 그 효과가 미미한 책임은 현 정권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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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길 문화스포츠레저부 차장


이달 번역·출간된 두 권의 책은 공정한 줄 알았던 ‘능력주의’의 그늘에 주목한다. 책의 원제는 보다 직접적이다. 대니얼 마코비츠가 쓴 ‘엘리트 세습’의 원제는 ‘능력주의의 함정(The Meritocracy Trap)’이고, 마이클 샌델이 펴낸 ‘공정하다는 착각’의 원제는 ‘능력주의의 폭정(The Tyranny of Merit)’이다. 각각 지난해와 올해 미국에서 출간된 이 책들은 그 사회의 문제점을 파고든다.

책은 능력에 따른 과도한 부의 쏠림 등이 공동체에 균열을 낸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일례로 엘리트 세습은 토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에서 문제 삼은 자본에 따른 격차보다 노동 소득에 따른 격차가 더 심각하다고 지적한다. 각종 통계를 들어 부의 중심축이 상속 자본에서 소득으로 일군 재산으로 이동하고, 다시 교육을 통해 다음 세대로 이어짐을 보여준다. 소득 격차에 따른 양극화 문제는 고용 형태가 세분화되고 불안정해지는 한국 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소득 양극화가 자녀 교육 등의 격차로 이어져 능력 자체가 대물림될 가능성을 키운다는 점에서 이들의 문제의식은 국내에도 유효하다.

하지만 이들의 문제의식에 공감하면서도 현 상황에서 그리 크게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현 정권 들어 가파르게 상승 중인 집값 문제가 시야를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경실련은 지난 6월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3년 동안 서울의 아파트값이 52%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14% 올랐다는 정부와 차이가 있지만 시민이 체감하는 상승률은 경실련 발표에 더 가깝다. 이는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자료만 봐도 알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정권의 대응과 현실 인식이다. 지난주 출간된 ‘김헌동의 부동산 대폭로’엔 정권 초기 정부 인사들의 부동산 관련 발언이 모아져 있다. “부동산 투기를 용납할 수 없다는 정부 의지가 확고하다”(김동연 경제부총리), “부동산 가격을 잡아주면 피자 한 판씩 쏘겠다”(문재인 대통령), “내년 봄 이사철까지 팔 기회를 드리겠다는 의미”(김수현 청와대 수석), “정부가 내년 4월까지 시간을 드렸고, 자기가 사는 게 아닌 집은 파시는 게 좋을 것”(김현미 국토부 장관).

당시가 현 정권 집값 최저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의 호기에 쓴웃음부터 난다. 정권으로선 유동성 증가와 ‘빚 내서 집 사라’고 했던 전 정권을 이유로 댈 수 있겠지만 스무 번이 넘는 정책에도 그 효과가 미미한 책임은 현 정권의 몫이다. 잘못을 바로잡을 첫 단추인 문제에 대한 인식에서도 격차가 크다. 문 대통령은 1년 전 ‘국민과의 대화’에서 “현 정부 들어 대부분의 기간 동안 부동산 가격을 잡아왔다”며 “부동산만큼은 자신 있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영끌’은 현 정권을 규정할 주요 키워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여당이나 정부에선 ‘빚 내서 집 사라’고 한 전 정권 탓을 하겠지만 실제 ‘영혼까지 끌어 모아’ 구매 행렬에 동참한 건 현 정권 이후다. 그것도 집권 5년차를 바라보는 지금까지 그 행렬은 방향을 바꿀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사는 게 아닌 집은 파시는 게 좋을 것”이라고 한 말이 무색하게 다주택자의 자산도 눈에 띄게 늘었다. 비싸진 집은 연간 최다 증여로 그들의 자녀나 가족들에게 대물림되는 중이다(국민일보 11월 26일자 1면).

‘영끌’을 했느냐, 그것도 언제 했느냐에 따라 부의 격차가 급격히 벌어지는 현 상황에서 노동 소득이나 능력의 가치는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적당한 시점에 감당할 수 있는 빚을 지고 ‘내 집’을 마련하려던 수많은 가장들의 계획도 일그러졌다. 되돌릴 수 없다면 더 악화되는 것이라도 막을 실질적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것이 “자신 있다”는 말만 믿고 기다린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김현길 문화스포츠레저부 차장 h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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