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 같은 야구인생 '데이터 야구'로 꽃피우다

배중현 2020. 11. 26.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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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프로야구 2020 KBO한국시리즈 NC다이노스와 두산베어스의 6차전는 NC가 승리, 통합우승을 차지했다. 시상식에서 NC 이동욱 감독, 양의지가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리고 있다. 고척=김민규 기자

잡초 같았던 야구인생이 '데이터 야구'로 꽃을 피웠다. NC를 창단 첫 통합우승으로 이끈 이동욱(46) 감독의 얘기다.

이동욱 감독은 '비주류'에 가깝다. 1997년 롯데 내야수로 입단 후 2003년 은퇴했다. 6년 동안 KBO리그 1군에서 때려낸 안타가 고작 60개. 웬만한 1군 백업 선수의 한 시즌 성적보다 못하다. 현역 마지막 시즌인 2003년 21경기에서 기록한 타율이 0.163(49타수 8안타)다. 홈런과 타점은 물론 도루도 없었다. 그의 은퇴 순간을 기억하는 야구팬도 많지 않다.

동아대 졸업 당시만 하더라도 그는 준수한 2루수로 평가받았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야구 대표팀 일원으로 태극마크까지 달았다. 입단 계약금만 1억8000만원. 주류가 될 뻔한 그를 비주류로 끌어내린 건 무릎 상태였다. 입단 첫해 양 무릎을 모두 수술했다. 긴 재활훈련을 거쳤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팀 2루수엔 레전드 박정태가 버티고 있었다. 무릎 상태가 좋아진 뒤에도 1군 출전 기회를 잡는 게 어려웠다. 2003년 10월 돌아온 건 구단의 방출 통보였다.

현역시절 태극마크까지 달았지만 부상과 긴 재활 끝에 일찌감치 선수 유니폼을 벗고 지도자의 길을 걸은 이동욱 NC 감독. 사진은 지난 2004년 롯데 코치 시절 이동욱 감독의 모습. IS포토

일찌감치 선수 유니폼을 벗은 이동욱 감독은 2003년 겨울 롯데에서 2군 코치로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이마저도 순탄하지 않았다. 2005년 10월 전력분석팀으로 이동했다. 2007년엔 친정팀 롯데를 떠나 LG로 팀을 옮겼다. 항상 역할은 1군이 아닌 2군, 공격보다 수비에 집중됐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그의 야구인생이 바뀌기 시작한 건 2012년이다. 당시 김경문 감독의 부름을 받고 NC에 합류했다. 아홉 번째 구단으로 KBO리그에 닻을 내린 NC창단 멤버 중 한 명. 2017년까지 김경문 감독을 보좌하며 1군 수비를 책임졌다. 수비 전문가로 입지를 넓혔다. 2018년 중반 김경문 감독이 사퇴해 사령탑 자리가 공석이 된 NC는 이동욱 신임 감독을 선임했다. 그 배경 중 하나가 데이터를 활용하고 해석하는 그의 능력이었다. 공부하는 지도자로 좋은 평가를 받았던 이동욱 감독은 수비 코치를 하면서 데이터 야구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빨리 깨달았다.

이동욱 감독 취임과 동시에 NC는 데이터 야구를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올 시즌 스프링캠프 때는 1·2군 선수단과 코칭스태프 전원에게 최신 태블릿 PC 120대를 지급했다. 태블릿 PC에서 접속할 수 있는 선수단 정보시스템인 'D-라커(D-Locker)'에는 트랙맨과 투구추적시스템(PTS) 등 트랙킹 데이터를 한 번에 볼 수 있게 정리해 담았다. 중요성이 커진 세이버메트릭스(야구 통계학)에 대한 발 빠른 대처였다. 이동욱 감독은 "지금은 과학적인 근거가 없으면 선수들이 수긍하지 않는다. 근거를 설명할 수 있는 코치가 돼야 한다"고 했다.

2020년 한국시리즈(KS)에선 이동욱 감독의 데이터 야구가 빛났다. 극단적으로 당겨치는 김재환과 오재일 타석에서 수비 시프트를 강하게 걸었다. 두 타자의 특징을 세분화해 상황에 따라 여러 덫을 만들었다. 효과는 엄청났다. 김재환과 오재일의 시리즈 타율이 각각 0.043(23타수 1안타), 0.190(21타수 4안타)에 불과했다. 잘 맞은 타구가 계속 수비 시프트에 걸렸다.

24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프로야구 2020 KBO한국시리즈 NC다이노스와 두산베어스의 6차전는 NC가 승리, 통합우승을 차지했다. 시상식 후 선수들이 이동욱 감독을 헹가래하고 있다. 고척=김민규 기자

이동욱 감독은 KS 6차전이 끝난 뒤 "아무리 좋은 데이터도 현장에서 받지 않고 사용하지 않으면 죽은 데이터"라며 "함축적으로 선수들에게 쉽게 줄 수 있는 데이터가 어떤 게 있나 고민했다. 내가 하는 야구는 선수들이 하는 야구다. 감독이 하는 데이터 야구가 아니다"라며 몸을 낮췄다.

2018년 10월 NC 사령탑에 올랐을 때 이동욱 감독은 '비주류'라는 편견에 부딪혔다. "감독을 하기엔 커리어가 너무 떨어진다"는 평가도 있었다. 하지만 불과 2년 만에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의 신념이 '데이터 야구'라는 이름으로 만개했다.

배중현 기자 bae.junghy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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