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은입니다'가 공공도서관에서 거부당한 까닭

박정훈 2020. 11. 25.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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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도서 신청 거부한 도서관 세 곳에 물어보니.. "책에 대한 여론 보고"

[박정훈 기자]

 책 <김지은입니다> 겉표지
ⓒ 봄알람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을 고발한 피해자 김지은씨가 쓴 책 <김지은입니다>가 일부 공공도서관에 비치가 거부됐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6일 서범수 국민의힘 의원은 17개 광역시도 공공도서관을 전수조사해서, 이용자가 희망도서로 신청했으나 '비치 부적합' 판정을 받은 도서들의 리스트를 공개했다. 이중에는 <검찰개혁과 촛불시민>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이 쓴 <정책의 배신>과 함께 <김지은입니다>도 포함되어 있었다.

<김지은입니다>는 김씨가 안 전 지사의 비서로서 겪은 위력 성폭력과, 미투 이후의 지난한 재판과정을 담고 있다. 나아가 그동안 자신에게 쏟아지던 수많은 음해와 2차가해의 부당함에 대해서도 고발하고 있는 책이다.

그런데 세 곳의 공공도서관에서는 <김지은입니다>에 대해서 비치를 거부했다. 서울 양천구 해맞이역사도서관에서는 '특수목적도서: 정치적/영리적/종교적'이라는 이유로, 서울 강서구 푸른들청소년도서관에서는 '영리, 정치적 신청자료'라는 이유로 '부적합' 판정을 내렸다. 울산 북구 기적의 도서관은 '광고성 희망도서 신청은 받지 않습니다'가 비치 거부 사유였다.

공공도서관에서 <김지은입니다>의 구입을 거부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시민들의 반발이 거세다. 정의당 양천구위원회는 24일 "양천구 '해맞이도서관'과 이를 관할하는 양천구청을 강력 규탄한다"라며 "위력 성폭력에 용기 낸 피해자의 고발을 담은 <김지은입니다>가 어떠한 논의를 거쳐 '금서'로 지정되었는지 해명하라"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민원 우려해서 비치 보류하거나 뒤늦게 구입해

논란에 휩싸인 세 도서관에 문의한 결과, 모두 '금서는 아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공통적으로 구내 다른 도서관에도 비치되어 있어서 '상호대차' 시스템을 통해서 빌릴 수 있고, 이미 구입했거나 신청이 들어오면 구입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양천구 해맞이역사도서관 관계자는 "정치인이나 정치에 관련된 도서를 구입할 때는 신중하게 고려를 한다. 워낙 민원들이 많기 때문"이라며 "책이 3월에 출간되어 4월에 어떤 책인지 판단할 수 있던 상황이 아니었다. 시기상으로 4월에 신청한 건만 보류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당시 관내 8개 도서관 수서 담당자들이 모여서 결정을 한 것이고, 4월 이후에 다른 도서관에서 신청 들어오는 것은 다 받았다. 현재 관내 4곳의 도서관에 <김지은입니다>가 비치되어 있다"라고 해명했다.

강서구 푸른들청소년도서관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이 난 사건이긴 하지만, (판결에)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계신다"면서 "시민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시는지 모르기 때문에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고 사도 되지 않을까 싶었고, 직원들간의 회의를 통해서 당시에는 구입신청을 거절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관계자는 "현재는 도서관에서 책을 구매한 상태"라며, 예전에 한 성폭력 고발 사건과 관련한 책 구입을 했는데 항의를 받은 적이 있어서 늦게 구매한 것이라고 밝혔다.

울산 북구 기적의 도서관은 "한 분이 여러 곳에 희망도서로 신청한 것을 보고, 당시 담당자가 '광고성'이라고 판단한 것이다"면서 "'금서'로 보도가 나가니까 난감하다"라고 밝혔다.

"2차피해 확산, 공공기관의 '판단'까지 영향 미친 것"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한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안희정 성폭력 사건은) 재판이 끝났음에도 성폭력을 부정하고, 피해자에 대한 부정 평가가 이어지는 등 2차피해가 확산됐다. 이것이 공공도서관의 판단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말했다.

김 부소장은 "하지만 성폭력에 대한 편견들에 영향을 받아 어떤 결정을 하는 것은 공공도서관 지식을 유통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서 '책임감 있는 자세'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김지은입니다>는 출간 당시에 대형 온라인 서점에 광고를 하려고 했으나 부적합하다는 회신이 돌아오기도 했다"라며 "사서나 온라인 서점 MD들이 내용을 보고 이 책의 가치를 판단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그 전에 성폭력에 대해서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라고 밝혔다.

김 부소장은 "다른 종류의 도서들에 대해서는 출간한 지 얼마 안 됐다고 비치를 보류하거나 거부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는 성폭력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는 피해자의 노력을 사회적으로 배제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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