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구 칼럼] 블랙코미디 같은 검찰 특활비 논란

2020. 11. 24.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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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장 주머닛돈' 발언으로 촉발된 검찰 특활비 공방
법무부의 초법적 발상 이어 '면접 특활비'까지 불거져
윤 총장 찍어내기용 비판보다 엄중한 접근 필요

검찰 특수활동비를 둘러싼 논란을 지켜보노라면 블랙코미디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사안의 무게에 견줘 사태의 시작이 허술하고 전개 과정에서도 상식 파괴적인 일들이 잇따르고 있다. 수사 검찰의 신뢰와 권위가 걸린 사안인데 문제를 대하는 진중성이나 엄중함은 찾아보기 어렵다.

논란의 시작은 지난 5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국회 법사위 답변이다. 추 장관은 검찰 특활비가 제대로 배정되지 않는다는 여당 의원 질문에 “대검에서 임의로 집행한다. 총장 주머닛돈처럼”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법사위는 기밀 유지를 위해 용처를 밝히지 않아도 되는 특활비 사용을 점검하는 전례가 드문 현장조사를 진행했다. 결과는 대체로 특이 사항이 없다는 것이었다. 허무 개그를 연상시킨다. 논란은 오히려 수사기관도 아닌 법무부가 검찰 특활비를 왜 사용하고 있느냐로 옮아갔다.

법무부는 현장 조사 말미에 특활비 논란이 계속된다면 일반예산처럼 법무부에서 직접 배분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는 주장을 내놨다. 하지만 수사상황과 밀접하게 연관된 특활비 통제권을 법무부가 갖게 되면 수사 개입이 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다음 날 고기영 법무부 차관은 “하나의 아이디어 차원이지 그렇게 하겠다고 하는 건 절대 아니다”며 물러섰다. 법을 다루는 법무부가 초법적 발상을 국회에 보고했다가 곧바로 철회하는 건 촌극이 아닐 수 없다.

점입가경인 것은 추 장관 발언 20일 전쯤에 법무부의 검찰국장이 50만원씩의 격려금을 검찰 간부 24명에게 지급한 게 드러난 일이다. 지난달 있었던 ‘신임 검사 역량 평가’에 위원으로 참여한 차장검사와 부장검사들에게 격려금 봉투를 돌린 것이다. 법무부는 “수사 업무 지원 및 보안이 요구되는 신임 검사 선발 업무수행 지원을 위한 것”이라며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연례적인 인사 업무가 기밀을 요하는 수사나 정보 등 특활비 지급 대상 활동에 해당하는지 의문이다. 공식 면접 수당이 지급되는데 별도 현금을 지급할 필요가 있었는지도 납득되지 않는다.

검찰 특활비 문제가 정말로 심각해 반드시 바로잡을 사안이라고 봤다면 상당한 내부 조사를 진행한 후 제기하는 게 당연하다. 검찰 수사의 중립성 문제 등 예민한 사안까지 심도 있게 고려해 종합적이고 엄밀한 논의를 거쳐야 했다. 그랬더라면 엉뚱한 아이디어를 분출했다가 철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과정이 일찌감치 시작됐더라면 ‘면접 특활비’ 사태도 없었을 것이다.

사태가 이런 방향으로 치달은 것은 사뭇 다른 의도에서, 즉흥적으로 문제 제기가 이뤄졌다는 걸 방증한다. 야당에서는 윤석열 총장 찍어내기를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마녀 사냥식’으로 밀어붙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추 장관이 검찰에 대한 수사 지휘권을 연발하는 상황도 이런 맥락일 것이라고 상당수는 이해한다. 윤 총장 임명 때만 해도 여권에서는 성역 없는 수사로 검찰을 제대로 이끌 것이라는 기대를 표출했다. 하지만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윤 총장이 겨누는 칼끝에 여야가 따로 없다는 인식에 이르면서 그에게는 개혁에 저항하는 집단의 수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여권을 겨냥한 수사는 개혁에 맞선 수사권 남용으로 치환됐다. 여당 당적을 가진 법무부 장관이라면 수사 개입을 더 자제하는 게 상식적인데도 윤 총장을 겨냥해 지휘권과 감찰권을 거침없이 행사하고 있다.

검찰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 반민주적 수사와 기소가 자행됐고, 내부 감싸기 등의 잘못도 적잖았다. 검찰 인사도 편중 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치와 권력이 수사에 개입하겠다는 것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다. 가장 중요한 원칙을 무너뜨리는 일이다. 특활비의 경우처럼 수사에 문제가 있다면 엄밀하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수사와 기소에 대한 책임성을 강화하고 인사 시스템을 혁신하는 등의 제도적 접근도 가능할 것이다.

법무부와 검찰 사이에 하루가 멀다고 벌어지는 활극을 지켜보는 일에 이제 국민은 지쳤다. 일찍이 보지 못했던 비정상적 상황들이 반복되는 것에도 염증이 난다. 하지만 권력에 따라 잣대가 달라지는 검찰을 원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살아있는 권력에 눈 감고, 특정 세력엔 먼지가 나지 않도록 살살 터는 수사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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